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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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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자 될거야


BY 정자 2007-11-28

<사채업자>는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닌 듯하다.

\"나중에 니는 뭐 할겨? 허구헌 날 만화책방에 머리 쳐박고 앉아 있으면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잉? 아 말 좀 혀 봐?\"

울 엄마 하도 다구쳐서 엉겁결에 대답한다는 게 \"사채업자!\" 이랬다.

울 엄마 뒤로 넘어지신다.
아예 한 참 벌러덩 넘어진 것처럼 천장을 한 참 올려 보시더니

\"야! 니 만화 너무 봐서 미친 거 아녀? 애고 내가 다아 기도가 부족 한거여..
딸 하나 있는 게 어쩌면 지지리도 못 생겨 가지고,  할 것 다 할 게 없어서..응? 그려, 사채업자가 뭔지 아나? 니 뭐여? 아? 빨리 야기 안 혀?\"

하도 닥달하시는데 나야 두 말 않고, \"돈이 젤 많은 부자잖아?\"

\"뭐여? 야, 누가 니보고 돈 많은 부자 될려면 사채업자가 되라고 하데? \"

가슴이 답답하신가 메아리도 울리지 않는 가슴팍만 팍팍하게 두둘겨 패신다.

내가 왜 사채업자가 될려고 했냐면,
만화책 볼려면 돈이 부족하지 않을 만큼 늘 넉넉하게 지갑에 두둑하게 있을 것 같고...
엄마 친구는 계주인디, 그 아줌마는 늘 구슬로 엮은 큰 지갑에
푸른 돈이 빽빽하게 숲을 이룬 것을 보고 난 한 번은 엄마에게 물었다.

\"저 아줌마 뭐하는 아줌마야?\" 했더니
울 엄마는 단 한마디, \"사채업자!\" 했다.

난 그 이후로, 그 사채업자들은
두꺼운 가방에 늘 돈다발을 그득하게 넣고 다니는 사업가처럼 보였다.

저 돈이면 난 학교에 안 가고 만화방에 있는 책 다 사가지고
다 본 책은 애들 일렬로 세워 빌려주며 또 돈 받고...
재미있겠다 하는 상상에 꿈꿔온 직업이었는데,
울 엄마 억장 무너지게 할 직업인 줄은 전혀 눈치를 못챘다.

아, 그래도 만화책을 볼려면 돈이 필요한데,
교회 가라고 준 헌금도, 중간에 슬쩍 한 것이 들켜서 이젠 헌금도 안 주신다.
대신 십일조로 몽창 계산해서 엄마가 대신 내신다나...

거기다가 또 그나마 만화책방이 있는 동네에 멀리 떨어져
교회 바로 옆 집 단칸방으로 옮기니
참 내 사는 게 사는 게 이게 아니다 싶었다.
재미가 도통 없으니.

그래서 궁리 궁리를 짠 게 바로 \"글을 쓴다\"고 했다.
하도 만화책을 많이 봐서 이젠 질렸다고, 이제부터 청계천 헌책을 사다가 봐야 되겠다고 울 엄마를 살 살 구슬렀다.

\"아! 진짜랑께..그러니까 돈 오백원만 줘라..응?\"

울 엄마, 나 만화책에 질렸다는 말에 감동을 하셨나, 그 돈을 주시고 이러신다.

\"그려 그려. 사람은 책을 읽어야 되는 거여..
그러고 니 어디 가서 사채업자가 될려고 했다고 입도 뻥끗 했다간
다리 몽둥이 분질러지는 줄 알어?\"

참내,  다리 몽둥이 부러질 일을 뭐하러 하나..
그렇게 그 돈을 들고 울 집에서 한 참 떨어진 만화책방에서 한나절 봐도 돈이 남았다.
배도 고프고, 이래 저래 울 엄마에게 보여 줄 헌 책은 사야 되는데...

도통 무슨 책을 사야 되는지 감이 안 잡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국어시간에 문학이네 뭐네 할 때 제목이라도 외워둘 걸 .

그래서 할 수 없이 동네 근처에 구멍만한 헌책을 뒤적 뒤적해도
눈에 뛰는 게 또 만화책이다.
뭐 눈에 뭐 밖에 안 보인다고 하더니..

그려, 할 수 없다.
속은 만화책이고 겉표지는 문학동네인지.. 뭔 문학인지
그걸 껍데기로 싸서 가면 울 엄마 그걸로 넘어 갈 것 같은 꼼수를 부렸다.

몇 번을 그렇게 했는데, 세상에 울 엄마 나 학교 간 사이에 이 책을 들여다 보고는
득달같이 한 출판사 월부장수한테 백 권이나 되는 문학 전집을 사서
단칸방 윗목 책장에 칸칸히 세워 놨다.
덕분에 좁은 방에서 동생 셋하고 나하고 울 엄마는 칼 잠을 잤다.
무슨 감옥에 갇힌 죄수들처럼.

나..그 날 이후로 만화책 한 권도 못 봤다.
괜히 문학을 팔아먹었나 보다 했다.

그런데 아직 그 때 산 그 책들이 울 엄마 방에 있다.
그 후로 이사를 열 번 더 다니셨는데도 굳이 그 책들은 끼고 다니신다.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것처럼.

내가 문학인가 뭔가 한 거라고.

언젠가 뜬금없이 그러신다.

\"야! 근디 문학이는 어디에 있는 거여?\"

에구..내 참. 난 그냥 글을 쓴다고 했지, 언제 문학한다고 했어?
안다고 했어? 이러고 싶은데.

핑계도 변명을 댈려니 그렇게 세월이 너무 후다닥 가버렸다.
무정하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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