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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거(11, 마지막회)


BY 개망초꽃 2007-10-29

개는 생리를 끝마쳤다. 개복숭아만하던 생식기는 살구 씨만 해졌다. 하루 종일 핥아주던 은밀한 곳을 생리가 끝나니 오줌 누고 난 뒤에만 핥아준다.  붉은 꽃잎이 으깨진 흔적을 빨다가 휴가철은 끝나있었다. 


올 여름도 그 해 여름처럼 비 내린 날이 더 많았다. 비가 내리면 개와 함께 운동을 할 수 없다. 개는 생리를 끝내고 바깥바람이 그리워 창 열린 틈에 코를 바짝 대고 벌름벌름 거렸다.


혼자 나가는 게 싫어 개를 기르기로 했다. 혼자가 되기 전에는 혼자 쇼핑도 다니고 공원도 거닐었는데, 혼자되고부터 혼자서는 쇼핑도 안다니고 호수공원도 가지 않았다. 누가 너 혼자 살지? 손가락질도 하지 않는데 혼자 가는 길이 길거리에 버려진 붕어빵 포장마차처럼 쓸쓸하다못해 청승맞아 보였다.


집 앞 공원엔 버려진 붕어빵 포장마차가 있다. 붕어빵에 ‘어’자가 먼지로 지워져 있고, 주황색 지붕은 푹 꺼져 빗물이 고여 있었다. 주인은 붕어빵을 팔지 않아도 생계가 유지 될 남자를 구했을지 모른다. 혼자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다가 책임질 남자를 만나 더 이상 붕어빵 장사를 안 해도 되기 때문에 가난했던 과거를 버렸을 것이다.  나처럼 혼자 다니는 게 쓸쓸해서 남자를 만났게 됐을지도 모른다. 나는 남자를 구하지 못하고 개를 한 마리 구해왔다. 개는 포장마차 뒷바퀴에다 오줌을 찔끔 쌌다. 공원 잔디밭에 영역표시를 듬뿍해서 포장마차 바퀴에는 찔끔거리기만 했다.

여자 개는 남자 짓을 한다. 아파트 화단에도 나무 밑에도 오줌을 찔끔거린다. 남자가 여자와 자고 싶은 것처럼 여자도 남자와 자고 싶다. 남자만 여자 품이 그리운 것이 아니고 여자도 남자와 같이 남자 냄새가 그립다. 


혼자 산다는 것은 남자 품에서 떠난다는 것이다. 그게 자신이 없으면 혼자 살지 말아야한다. 일회용 남자를 취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혼자 지낼 용기와 참음과 빈자리를 채울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그 자리를 글로 채웠다. 나는 그 자리에 꿈을 품고 잔다. 나는 그 자리에 개를 품고 잔다. 지지난 겨울 생후 이개월된 갈색푸들이 내 품에 안겼다. 꼽슬꼽슬한 털이 인형 같았다.  처음부터 버릇을 들인다고 손바닥만 한 강아지를 침대에서 재우지 않았다. 개는 나보다 더 외로움을 탄다.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볼 때도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해도 개는 내 무릎에 누워 있다.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부엌바닥에 앉아서 일이 끝날 때까지 올려다본다. 샤워를 하고 나올 때까지 문밖에 엎드려 있다. 외출을 하면 소파에 앉아 현관문만 쳐다보고 있다고 한다.  개의 전생은 나처럼 혼자 사는 여자였었나 보다.

불쌍해서 끌어안고 자기로 했다. 순전히 동질감 때문에 개를 침대 속에 놔두기로 했다.


혼자 산다는 것은 편하기 위해 혼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고 나는 없었다. 혼자되었어도 나는 없다. 혼자된다는 것은 그리 두렵지 않았다. 이래도 혼자였고 저래도 혼자였으니까. 가장이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 혼자 먹고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 말고 딸린 가족을 책임진다는 것이 제일 두렵고 지금도 그것이 제일 힘들다.


혼자되고부터 가끔은 남자를 기대해 본다. 나와 눈을 마주치는 남자. 나와 떠드는 남자. 나와 꽃을 보는 남자. 나와 꿈을 얘기하는 남자. 나와 밥을 먹어주는 남자. 나와 같은 침대에서 자는 남자. 나와 공원을 거닐 남자. 나와 싸우는 남자. 나 때문에 삐지는 남자. 나 때문에 투정부리고 화내는 남자. 나 때문에 웃는 남자. 나 때문에 집에 들어오는 남자. 나 때문에 행복을 느끼는 남자. 내가 옆에 있어서 외롭지 않다는 남자. 그런 남자를 기다려 본다.


기다림은 길고도 지루하다. 막연한 기다림은 겨울 들판처럼 횡하고 춥고 고독하다. 글 쓰는 것도 기다림의 시간 때우기다. 자연을 좋아하는 것도 기다림 뒤의 소박한 꿈 때문이다. 부질없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도 기다림의 끝이 허무로 끝날까 두려워서다. 외로움에 우는 것도 기다림에 지쳐 포기할까봐 눈물로 호소하는 것이다. 내 기다림은 딱 하나 꿈이 있기 때문이다.


내 꿈은 작고 소박하다. 아담한 시골에 아담한 황토 집을 짓고 창 넓은 거실을 갖고 싶다. 마당엔 잔디를 심고 잔디 가장자리로 사시사철 들꽃을 피게 하고 싶다. 일층은 방 하나만 만들고 거실에 앉아 있어도 풀밭에 앉아 있는 것처럼 창을 넓게 만들고 싶다. 작은 이층을 올려 벽엔 책을 가득 채우고 싶다. 세모난 창엔 침대를 놓아야겠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가엔 한들한들 흔들리는 꽃을 심어야겠다. 느티나무 밑엔 의자를 놓고, 둔덕이 있는 마당엔 소나무 두어 그루, 울타리 없이 과실나무와 꽃피는 나무를 심고 나무 사이사이 꽃을 자연스럽게 심고 싶다. 야생초 차를 만들고 싶고, 시골 생활을 글로 쓰고 싶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푸성귀 조촐한 밥상에 야생차 한 잔 대접하고 싶다.


부자이길 바라지 않는다. 부자로 살아봤고 가난하게도 살아봐서 두 가지 심리를 알고 있다. 너무 가난하면 사랑이 문틈으로 새어 나가지만 부자는 헛튼 짓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벌지 않아도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자연에 묻혀 사는 걸 좋아하는 남자였으면 한다. 밖에 나갔다가도 밤이면 들어오는 남자면 좋겠다. 쓸데없이 외박을 안 하면 좋겠고, 나를 의지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뜰을 같이 가꾸는 사람, 야생초 차를 마셔주는 사람, 글 쓰는 걸 싫어하지 않는 사람, 내 감성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한다.


계속 혼자라면 도시에서 멀지 않은 시골, 자식들이 자주 찾아 올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고 싶다. 돈이 많지 않으니 시골집을 개조를 하던지 조립식 주택을 마련해야겠다. 마당엔 충직한 큰 개를 두 마리 키워야겠지. 여자 혼자 살면 나쁜 놈들이 기웃거릴지 모르니까. 혼자 살면 편하긴 할 거야. 아침 늦게 까지 빈둥거려도 되고 새벽까지 컴퓨터에서 놀아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내 세상일거야. 반찬 대충 해 먹어도 되고, 밥 먹기 싫으면 빵 먹어도 되고 말이야. 바람피우고 싶으면 바람 맞아도 되고, 정처 없이 나들이를 떠나도 되고 말이야. 치우가 싫으면 안 치워도 되고, 씻기 싫으면 안 씻어도 되고 말이야. 나간 사람 들어오던지 말든지 신경 안 써도 되고, 남편에게 딸린 시집 식구들 신경 안 써도 되고 말이야. 말이야, 말이야. 히히히


생리를 끝마친 개는 내 다리를 붙들고 엉덩이를 흔들어댄다. 남자 품이 간절한가보다. 그러나 어쩌겠냐, 나도 혼자니 너도 혼자일 수밖에…….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그게 아니다, 주인을 잘 만나야 개도 팔자가 핀다. 헛다리에 본능을 흔들어대는 개, 고독한 주인 팔자를 닮아 너도 고독하구나. 그래도 꿈을 잃지 말그라, 나도 꿈을 부여잡고 흔들고 있단다. 그게 비록 헛꿈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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