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영화 보기를 즐기던 난 그 날도 어김 없이 마음 속 친구가 이끄는 대로 그들을 보기 위해 애써 극장을 향했다. 다소 쓸쓸한 햇살과 무심히 개인 하늘이 낯설지 않은 날이었다.
첫 장면은 역시 단편 영화가 주는 신선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연의 두 남자가 심연 속으로 질주하듯 뛰어드는 순수의 모습 그 자체였다. 거침 없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던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가식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누구보다 맑은 사람이고 싶었던 수민과, 남부럴 것 없어 보이는 풍요 속에서 정작 자신을 오롯이 기댈 곳이 없었던 재민이 만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아니 사랑 속에서 쉼없이 호흡한다. 빛깔을 알 수 없는 간절함은 그들을 결코 떼어 놓질 않는다.
남자와 남자는 미친 듯이 서로의 육체를 갈구한다. 돈을 위해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어둠이 오히려 편안하던 호스트바의 수민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잘 다려진 셔츠 속에 마치 한없이 나약한 자신을 애써 감추고 있는 듯한 재민, 이 두 남자는 다른 듯 하지만 참 많이 닮아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서로를 알아갈수록 외로움에 목말라 한다. 아니 두려워 한다.
많이 가진 자가 진정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쩜 많이 잃은 자가 작은 행복에도 누구보다 크게 행복해할 수 있음을 퇴폐와 실리에 찌든 세상의 버려진 구석 속에서 나지막하게 들려 주는 이 영화가 막을 내릴 때가지도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과연 우리는 행복한 것인가, 아님 행복을 행복으로 느끼지 못하는 무감증에 걸려 버린 것인가.
여성들의 언어를 흉내 내며 마음 안의 아기자기한 속내 깊은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던 호스트바의 다소 건강한 마담 형, 아니 언니도 기억 속에서 오래 남을 것 같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그 모습 그대로.....
그들이 보여준 건 그저 통속적인 사랑이라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난 말하고 싶다. 우리 안의 수민과 재민은 언제고 갈망하고 있음을...... 외로움은 외로움으로 아름답고, 어울림은 어울림으로 아름다운 것임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그들은 우리에게 가슴으로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내내 흐르던 정돈되지 않은 듯한, 조금은 지리한 느낌마저 감도는 보사노바풍의 음악 또한 인생이 한 편의 몽환적인 유화 같은 그들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인상적이었다. 또 그들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그 잔향이 에스프레소의 그것처럼 나를 취하게 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피날레를 지켜보며 난 그들에게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었다. 이젠 더 이상 아파하지 말라고,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으라고.
<<주홍글씨>> 처럼 강렬한 느낌으로 먼저 다가온 이 영화를 쉬이 잊지 못할 것 같다.
카멜레온처럼 하루에 몇 번 씩 종잡을 수 없이 찾아드는 내 감정의 파도를 그저 일상 탓이라 얼버무리기엔 가끔은 나를 세상 속에 내준 부모와 또 절대자 앞에 송구스러울 뿐이었는데...... 이 영화는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 주었다. 세상과 삶에 조금은 관대해지라고.
평범을 거부하지 못한 사람들은 얼굴을 붉혀 가며 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영화를 만드느냐고 최대한 목청껏 조소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난 그럴수록 더더욱 소외 받은 그들에게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어릴 적 원치도 않았는데 늘상 반복되던 가위눌림의 불가항력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