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을 치고 싶었다. 수없이 많은 밤을 남편을 기다리다보면 도망보따리를 챙겨들고 어디로든 도망을 치고 싶었다. 도망자라는 전과자가 되더라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 순간 이 집에서만 벗어나면 억지로 막아 놓은 심장 혈관을 쇠꼬챙이로 뚫은 것 같이 피가 통하고, 여러 갈래로 빠개질 것 같은 머리통이 호수처럼 고요해질 것 같았다.
나의 변덕은 양은 냄비였다. 나의 의지는 종이컵의 커피처럼 일회용이었다. 도망치자고 입술을 꼭 다물고 머리를 돌처럼 굳혔다가고 새벽이 오고 아침 햇살이 자는 아이들 얼굴로 내려올 때면 도망이고 지랄이고 없이 쌀을 씻고, 국을 데우고 아이들을 깨워 유치원으로 학교로 내 보냈다. 아이들이 빠져 나간 자리로 기어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내일 도망가야지, 하며 얕으면서도 깊은 잠속으로 깊으면서도 얕은 잠속으로 휘휘적거리며 헤매고 다녔다.
딱 한번 도망을 친 적이 있었다. 신발장에 보따리를 숨겨 두고선 남편이 일찍 들어오는 날 쓰레기 버리고 오겠다고 하고 그 길로 도망을 쳐버렸다. 쓰레기 봉지를 국방색 아가리 속에 던져 놓고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남의 집에 침입해 귀중품을 훔친 도둑년처럼 뒤를 슬쩍슬쩍 돌아보며 정류장으로 향했다. 남쪽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미리 알아보고 그 시간에 맞춰 도망을 친 것이다.
서울역으로 향한 버스 안은 텅 빈 드럼통 같았다. 국방색 쓰레기통 속처럼 썰렁하고 낯설고 오래 묶은 냄새가 버스에서 났다.
미리 멀미약을 준비했다. 손가락만한 약 병을 따고 한 모금에 마셨다. 달면서도 알싸하면도 밍밍하면서도 들척지근한 약 냄새가 입을 돌아 식도를 지나 위장으로 머물면서 약은 도둑년 같은 나를 진정 시킬 것이다. 심장을 달래 줄 것이고, 머리를 안 아프게 할 것이며, 졸음을 오게 해서 기차 안에서 잠을 자게 해 줄 것으로 믿었다. 약 기운에 잠을 자고 일어나면 나는 남쪽 어느 마을에 도착해 도망 년이 되어 정처 없이 떠돌게 해 줄 것이라 믿었다.
서울역에 많은 사람들이 들끓었다. 나처럼 도망 년 도망 놈들이 이리 많은가 하는 동변상련의 동질감에 안심이 되었다. 평일이라서 마지막 기차는 널널했다. 창가자리로 주세요, 이 말을 붙여서 돈을 내 밀었다. 몇 장의 돈이 낙서도 할 수 없는 작은 종이로 바뀌어서 내 손에 쥐어줬다. 계단을 내려 타고 갈 종착역을 확인하고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은 드럼통 같은 버스와 다른 냄새가 났다. 오래 묶어 발효된 구린내였다. 사람들은 코를 골고 며칠 전에 감은 머리를 비비적거리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구린내를 묻히고 구린내를 붙여 목적지에 내려 집으로 데리고 가서는 화장실 하수구에 흘려버리든지 그대로 이부자리에 안고 들어가 다음날까지 기차의 구린내를 풍기며 잘 것이다.
기차는 창문을 열 수 없게 통 유리로 되어 있었다. 내릴 동안 이 냄새를 수백 번도 더 몸속으로 들여왔다가 내 냄새와 섞여 밖으로 나와 또 다시 다른 사람의 속 냄새와 섞여 내 몸 속으로 들락날락 할 것이다.
잠을 자야겠다. 양팔을 깍지 끼고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려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은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잡생각만 머릿속에 출렁거린다.
눈까풀은 감았지만 눈동자는 뜨고 있었다. 눈동자에 무수히 많은 섬광들이 뻗어나가고, 색색의 레이저들이 눈동자 속으로 번뜩번뜩 들어왔다.
나처럼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말 섞는 소리가 들린다.
“아따, 그려 부려”
“징혀요, 잉~~”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 소리였다. 내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살던 곳을 버리고 태어난 고향으로 가지도 못하고 타향으로 팔려 가는 것 같았다. 정처 없는 이 발 길을 받아 줄 곳도 없으면서 나는 어디로 가는거지...
나는 산골로 들어가서 산속에 묻혀 산 여자로 살고 싶었다. 산나물로 된장국 끓여 먹고, 고구마 심고 옥수수 심어서 세상 것 가슴에 묻고 산속에 묻혀 살아야지 했다.
나는 지명도 생소한 바닷가 외딴집에 머물고 싶었다. 바다를 보며 소금냄새에 찌들어 살면서 옛 추억을 먹으며 아무도 찾아 올 수 없는 집 아랫목에서 삐쩍 말라 죽고 싶었다.
나는 경치 좋은 어느 관광지 카페에서 차를 끓이며 살고 싶었다. 손님이 오면 차 끓여 주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묻지 마세요, 하면서 차만 따끈하고 맛나게 끓여 주고 싶었다.
생각 없이 살고 싶었다. 생각하지 않고 살고 싶었다.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사는 하루살이 인생 하루라도 벗어나 편하게 살고 싶었다. 대책 없는 한 남자를 기다리며 평생을 소멸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도망을 치기로 마음먹고 마음 먹은 대로 도망을 쳐 기차에 몸을 얹혀 남쪽으로 남쪽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달려가는 기차는 탈춤 추는 소리가 났다.
덜컹덜컹 덩더쿵 덩더쿵 쿵덕쿵덕 덩더꿍 덩더꿍.
나는 지금 춤을 추고 싶을 만큼 내 안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춤을 추자고...기차 장단에 맞춰 춤을 추어야지, 춤을 추어야지, 춤을 추자고…….
새벽 4시에 남쪽마을에 도착했다. 삼월 중순인 대합실은 난로가 없어 얼음처럼 얼어 있었다. 대합실 구석진 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밤색 가죽옷과 청바지는 추위를 막아주지 못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방을 옆 의자에 내려놓고 팔가락지를 끼고 눈을 감았다. 어디로 갈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남쪽 바닷가 끝 마을로 접어들자, 지금은 시외버스가 없으니 날이 밝으면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야겠다.
첫 기차를 타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가방을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역을 관리하는 사람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이상하게 쳐다본다. 나는 이상한 도망자였다.
날이 환하게 밝기 시작했다. 대합실 밖 나무에는 푸른 새싹이 돋아 있었고 나무 밑동엔 풀들이 여릿여릿 올라와 있었다. 그래, 여긴 봄이 빨리 온다는 남쪽이지. 그래, 여기는 북쪽보다 따뜻해서 냉증이 있는 내가 살기 좋겠다. 그래, 남쪽으로 내려오길 잘 한 거야. 그래, 그래.
택시를 잡아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버스표를 끊고 버스에 올라서니 깡통 같은 버스에서 고약한 냄새가 물커덩물커덩 내 몸에 들러붙었다.
빈속이었는데 토할 것 같았다. 뛰어내려 화장실에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시외버스는 떠나고 순식간에 나는 기차역으로 돌아와 있었다.
도망쳐 나온 서울역행 기차표를 끊었다. 나의 변덕은 화라락 끓는 양은냄비고, 한번 타 마시는 일회용 종이커피였다.
속이 비어서 울렁거렸다. 일단 밥을 조금 먹어야겠다. 역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고 난로가 있어서 따뜻했다. 난로 가까이 자리를 잡았다.
된장찌개를 시켰다. 된장찌개에는 양파가 수북했다. 들쩍지근한 된장찌개를 억지로 밀어 넣으며 반공기정도 밥을 먹었다. 기차 시간에 맞춰서 앉았다 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돌아갈 곳을 정하니 춤추고 싶은 달뜬 마음이 가라앉았다. 물결치던 속이 잔잔하고 고요했다. 아이들이 눈앞에서 섬광처럼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졸음이 한 양동이 가득 쏟아 부었다.
그러고 있는 찰나에 남자 하나가 식당으로 터덕터덕 걸어와서는 털푸덕 의자에 앉는 소리가 났다. 눈을 떠 그 남자를 보니 사십을 넘긴 아저씨였다. 소주 하나 주시오, 한다. 난 눈을 감아 버렸다. 소주가 식탁에 올려지는 소리가 나고 젓가락 쥐는 소리가 나더니
“씨발년이 안 왔다니깐. 내가요, 사람을 죽이고 8년 만에 나왔지 않았소. 근디요, 이 년이 안 왔다니깐요. 씨팔년, 죽일 년, 나쁜 년 씨발~~ 꽉 찔러 죽여버릴거야”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음식 만들던 소리도 잠잠해졌고, 난로에서 물 끓는 소리만 눈치 없이 푸식푸식거린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서 방금 나왔는데, 이 년이 안 왔다니깐요, 우리 마누라 못 봤어요?”
누구 보고 물어보는 것일까. 허공에다가 물어보는 건가…….혼자 답답하니까 하는 소리겠지. 미치겠으니까 하는 말이겠지. 누가 살인자가 되래, 그런 너를 누가 기다리겠냐, 죽일 인간은 바로 너다…….
“소주 한 잔 받으쇼?”
“......”
살인자는 나를 향해 소주잔을 내민다. 나는 멍하니 살인자를 바라보았다.
“술 한 잔 받으라니깐!”
나는 손사래를 쳤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몰랐다. 나는 그냥 도망자일 뿐이다. 그것도 잠시 도망을 치고 싶었고, 남편이 속을 썩혀서 뛰쳐 나온 것일 뿐인데, 난 아무 잘못이 없다고요.
“왜 내 술을 안 받는 거야.”
나는 두 눈을 뜨악하게 떴다. 식당 주인아줌마가 나서서 막아주었다.
“이 분이 술을 안 받는다잖아요, 아저씨나 드세요.”
“씨발……. ”살인자는 소주잔을 깨어져라하고 식탁에 내려놓았다.
나는 식당에서 도망을 쳤다. 대합실로 들어가 사람 많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살인자가 칼을 들고 나를 쫒아 올 것만 같았다. 마누라 어쨌냐고 나한테 다그칠 것 같았다. 도망간 마누라를 도망쳐 나온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다만 그 심정을 이해할뿐이지. 안그래? 이 살인자야아아아아?
기차를 탔다. 서울역으로 기차는 되돌아 달려간다.
평행선을 따라 기차는 달려가고 달려가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역에 내려놓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탈춤 추는 소리를 내며 달려간다.
덩실덩실 덩더쿵 덜컹덜컹 덩더꿍
일장일단이 서려 있는 인생사처럼 내가 탄 기차는 길고 짧은 장단이 한스럽게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