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에 살다가 갑자기 20층으로 이사를 오게된 지 1년이 넘었다.
고소공포증이 심한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꿈을 한동안 꾸면서 적응이 되어갔다.
아직도 베란다에 나가면 핑글핑글 돌지만, 하늘과 가까워서 좋다.
누워서 동해바다같은 가을하늘을 볼 수 있다. 누구네집 아이방 벽지에서 본 구름을 저 하늘에서 볼 수 있다.
가끔 떼지어 날아가는 새들도 보인다.
서열따라 차례로 줄지어 날아 가는 새들을 보면 그들의 자유가 부럽다.
꽉 찬 보름달이 고향집 동산에서 볼 때처럼 가까워서 좋다.
멀리 별빛처럼 따슨 야경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좋은건 노을을 볼 때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남편은 바쁜 저녁이다.
혼자 압력솥 칙칙거리는 소리를 끄고, 찌개 불을 줄이고 고개를 돌리면 마침 노을이 물들고 있다.
어릴적 과일이 귀했던 강원도 산골에서 처음 맛보았던 밀감처럼
상큼한 향기가 나는듯 하다. 눈이 펑펑 쏱아지던 어느날, 부자집 딸이었던 내 친구는 밀감이란걸 가지고 와서 척척 껍질을 까더니 딱 두 알씩 골고루 나누어 주었었다.
\'아! 그 맛과 향기를 잊을 수 없어\'
미지의 그 어느 세상을 갑자기 가 본 느낌!!
꼭 그런 맛과 향기와 느낌으로 그리고 그 만큼의 그리움으로 노을은 타고있다.
\'나이가 들어서 바라 보는 노을은 이런 느낌이구나.\'
그 때, 난 어른이 되어 보는 노을의 느낌이 궁금했었다.
내가 지금의 우리 큰 아이만 할 때, 어른이 되면 노을을 보며 , 그 아이가 기억날까? 생각했었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아이는, 한 학년 쯤 높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았다.
그 아이를 알게된 건, 버스안에서다.
하교할 때 마다 만나게 되었던 그 아이는 어느날부터인가, 등교 버스에서도 모습이 보이곤 했다.
그냥 키가 크고 그저 그런 아이였다. 모범생 같아뵈지는 않았다.
조금 삐딱해 보였다.
그 아이에 대해서 별로 쓸 건더기가 없다.
내 예감에 그 아이도 날 좋아했던 것같다. 언제부턴가 내가 가던 곳마다 자주 눈에 띄었었으니... 가끔 함께 다니던 역시 좀 삐딱해 보이는 아이들과 내 얘기를 하는 소리도 버스에서 들려왔고. 내가 앉은 옆에 서 있을 때도 많았었고...
그러고는 끝이다. 뭐 별다른 이야기가 있는것도 아니고, 말 한 번 못 해보았다.
난 지나칠 만큼 내성적이었고, 쥐뿔도 잘 난 것 없으며 항상 좀 도도했다.
그런데, 노을만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나는 건, 내가 그 당시 그 아이 이름을 \'노을\'이라고 혼자 지어 혼자 불렀었다. 그리고 글을 썼었다.
나는 그 아이 \'노을\'을 상대로 소설을 썼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난 소설을 제법 썼었다.
비록 지금은 한 줄도 못 쓰지만...
그 아이랑 같은 버스를 타고 하교할 때, 항상 차창 밖으로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밀감빛으로...
강원도 시골 길을 터덜터덜 달리던 막차에, 나랑 그 애랑 함께 바라 보던 노을이 이렇게 오늘도 타고 있다.
비록 그 장소도 그 시절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잊혀지지 않는다.
잊혀지지 않는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아주 행복했거나, 아주 힘들었거나...
이렇게 세월이 갈수록 더 선명한 건, 정말 그 순간이 행복했었나보다.
부자집 친구는 우리들에게 밀감을 모두 나누어 주고, 그 껍질을 톡톡 손톱으로 누르더니, 손등에다 마구 부볐다.
\"이렇게하면 손이 고와져. 비타민 씨가 많거든.\"
친구의 손에서 풍기던 그 향기를 잊을 수 없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떼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숫기없는 나는 그 말조차 삼켰다.
밀감빛 노을이 달달하게, 새콤하게, 번져간다.
그리움도 그렇게 번져간다.
추억이란 이름도 예쁘게 번져간다.
팍팍한 삶 속에서도 노을은 항상 내 곁에 있다.
나이를 먹어도 저렇게 노을은 꽃으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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