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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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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시동생은 나의 적이었다.


BY 정자 2007-09-25

막내 시동생은 나의 적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감싸고 나를 힘들게 했던 시어머니보다 더 미웠다.

오죽하면 이혼사유 첫 번째로 막내 시동생의 무식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세상에 날 건달로 고발까지 할려고 했었다.

 

남편이 나와 부부싸움 할 때 나를 골목길까지 나를 질질 끌고 다니며

니가 뭔 데 울 형 신고했냐고 또 해보라고 그렇게 나를 곤경에 밀어넣고

생활비를 주지 않아 쌀이 떨어져 영은이가 발작을 해도 눈 하나 꿈벅않더니

 내 알바가 아니라는 듯 시어머니는 뻘줌 얼굴 한 번 들여다 보시더니

남편에게 담배값 하라고 돈 이만원 주는 뒤엔 꼭 막내 시동생이 있었다.

 

부창부수라고 하더니 몇 년후에 시동생과 닮은 막내동서는 시동생보다 더 했다.

원체 화가나면 더 말을 못하고 얼떨떨해서 따지자면 엄연히 내가 큰 며느리인데

막내동서는 아예 어머니 근처에서 상냥하게 모셔가면서 나부터 둘째형님, 셋째형님 일거수들을 일러대고 보고를 드렸는지 어머니는 더욱 의기투합하셔서 막내만 아들이고 나머지는 다 여벌이 된 상태였다.

 

편애는 너무 오래 된 습관이었다. 마찬가지로 관심 밖에 있는 부류가 된 우리가족은 오히려 자유로웠다. 한 번은 셋째형수보고 이혼하라고 하면서 이혼하면 자기가 조카들 다 키워준다고 그리고 형도 재혼을 시켜 준다면서 엉엉울고 나에게 달려온 셋째동서를 보고 나는 아무 말 못했다. 그 말은 나에게도 했던 말이었다.

 

어디서 돈도 없고 누구 재산 털어 먹을려고 호시탐탐 엿보냐고 했던 말도 했었다. 결국 셋째동서도 시어머니도 남편도 아닌 그 막내시동생이 싫어서 이혼을 했다. 그리곤 나에게 또 왔다. 형님! 나 이젠 시짜만 들어도 경련이 나요.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서 얼른 이혼 했어요.

그런데 내 자식은 진짜 막내가 잘 키워 줄까요?

 

다른 방법은 없었다. 나는 조용히 모자원을 알아보았고 동서대신 조카들을 데려왔고. 이미 상황끝인 데 이제와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었다. 셋째동서는 이미 지친 몸에 또 자궁외 임신까지 해서 수술도 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형님 나 시집이라면 내가 기절할 거예요...시금치도 못 먹을 것 같아요.

 

시간은 약이었다. 너무 오래 된 세월에 시루떡처럼 켜켜히 쌓이는 무게는 속일 수 없었다.

막내동서는 나에게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었다. 부른다면 영은엄마 영은 엄마? 꼭 이웃집 아줌마 부르듯이 했다.

 

명절은 내가 가고 싶어서 가야한다. 뭐든지 자발적이 가장 무리수가 없이 가볍다.남편은 그래도 할 도리는 해야 하지 않냐고 때만되면 살살 구슬렸지만 난 이미 맘은 바위처럼 굳어 버렸다. 또 가서 막내시동생이나 막내동서에게 그런 대우를 받는 다는 것은 서로 못 할 일이었다.얼굴도 잘기억이 않나는 둘째 동서가 나에게 떠나면서 그랬다. 형님이 너무 불쌍해요...나는 그 둘째동서에게 막내시동생 대신 사과를 했다. 다 윗동서가 그래도 부모가 안 계시면 대를 이어 부모도리하는 데 큰 형님이 되서 제대로 방패가 되어 주지 못했다고 인연이 여기까지 인가 보다 하고 서로 부둥켜 안고 헤어진 그 동서가 생각이 났다.

 

먹내동서는 나이가 어렷다. 그런데도 눈치는 삼단고수였다. 몇 년을 시댁과 왕래를 하지 않으니 혼자 그 명절에 제사에 거기다가 아이 셋을 낳았다. 나에겐 조카들인데 내 기억엔 이 조카들 언제 돐잔치를 치뤘는 지 생일이 언제 였는 지 한번도 연락을 받은 적 없다.

 

 말이 그렇지 어린 나이에 멋 모르고 그렇게 자신있게 모시겠다던 울 시어머니는 막내동서도 예외없이 대했나 보다. 아들을 지키고 울타리 친 모정은 다른 데서 또 불거져 나온 것이다. 막내 시동생은 어디 진득감치 직장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다. 다혈질은 우선 일부터 터트리고 뒷 수습은 나 몰라라 했다. 생활능력이 없는 남편은 막내동서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명분이 아무리 그럴 듯해도 매양 똑같이 그 일상에  처음 엔 같이 그러더니 애낳고 또 둘이 되고  때 되면 서로 어울 더울 도와주는 동서가 필요 했으리라.

 

울 시어머니는 나와 똑같다. 살림엔 젬뱅이다. 여자라고 무조건 살림을 잘한다고 하는 것은 없다. 거기다가 몸이 허약하시다. 요즘 시어머니는 결혼 한 딸내미에게도 김치에 밑반찬에 공수를 해준다고 하지만, 울 어머니는 그런 거 전혀 모르신다. 처음 결혼해서 첫 명절 치루는 데 시아버지가 콩나물을 다듬어서 깨끗이 씻어 주는 데 멋 모르는 나는 다 그렇게 해주나 보다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울 시어머니는 전혀 살림과 무관하신 분이었다. 이러니 막내 시동생 며느리라고 새삼 뭘 해준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되레 오지 않는 큰 며느리 타박을 서슴없이 막내동서에게 했을 것이고, 임신 구개월 때 어머니 생신상을 혼자 봤다고 며느리는 막내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 막내 며느리가 작년 추석무렵에 막내 시동생과 이혼을 했다.

그 어떤 이유도 모른다. 이혼사유가 시어머니인지, 시아버지인지. 아니면 남편이 갑자기 싫어져서 그런 것인지 아직 모른다. 사실은 알고 싶다. 그런데 물어보면 또 안다고 해도 달라질 상황은 없을 것 같기에 아직 묻지 않았다.

 

혼자 지내는 명절은 둘째 시동생도 셋째 시동생도 막내 시동생도 똑같이 한 자리에 모였다.

덜렁 얼결에 나 하나 남은 큰 며느리가 주방에 들어서니 서먹하다.

시어머니가 거실에 혼자 앉아 있는데. 아픈 등허리가 유난히 더 휘었다.

늦은 오후의 햇빛이 그림자없이 맑게 베란다를 튕겨 오른다.

 

 

 

가족은 굵은 전봇대에서 이만볼트로 흐르는 고압선 보다 더욱 질긴 끈이다.

나도 이제 그 걸 알았으니 ...

 

추석 오늘은 시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같이 앉아서 특선으로 추석영화 한 편 같이 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단감을 한 입씩 베어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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