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44

내가 살아가는 법.


BY 일상 속에서 2007-09-20

 

근무지로 향하는 출근길은 늘 똑같건만

거리의 풍경들은 하루하루가 변화무쌍하다.

떨어지는 낙엽들과 점점 짙어지는 단풍잎들,

바닥을 향한 시선으로 거니는 사람이나,

앞을 향한 시선이나

신문지, 우산들을 들고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들도 모두 제각각...

길어진 사람들의 의복들, 여전히 미니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제는,

오전에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던 하늘이

이내 먹구름이 끼더니 금세 어두컴컴하게 비를 쏟아 부쉈다.

변덕스런 하늘... 내 머리처럼 하늘 님께서도 건망증이

드신 듯도 하다.


퇴근 길,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우의만을 걸친체 자전거로 달렸다.

흥얼흥얼 노래까지 부르며..

이 선희에 ‘갈등’, 한 영희의 ‘누구 없소’...

빗속을 달리는 기분, 보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는지

관여 할 바 없이, 나로썬 괜찮은 기분이었다.

비야, 비야, 잔뜩 쏟아져라...

까짓것, 더 쏟아 부서도 나는 괜찮아.

비에 익숙한 탓일까?

아니면 점점 미쳐서 날궂이 하는 것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빗속을 요 며칠 얼마나 달려 댔는지.

갑작스레 새벽에 장염으로 입원한 아들놈 챙기랴, 혼자라며 징징거리는

딸래미 진정시키랴, 출 퇴근하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병원에서 집으로 혹은 집에서 병원으로

달리며 피곤함을 떨쳐 버려야만 했다.

한계를 느낄 때마다 자기 최면을 걸 듯,

“난 참 잘하고 있다.”

“그래... 누구보다도 씩씩하게 잘 버티고 있는 거야.”


점점 남편의 존재성을 잃어가고 있는 나.

아이들 역시 그러한 듯 하다.

무슨 일이건 ‘엄마’부터 찾고 보는 녀석들

안됐기도 하다.

박복하다 생각하는 나 자신보다 더 박복한 녀석들

인지도 모르겠다.


삶, 일상이 요즘은 어쩌면 이렇게 다채로운 사건 사고들로

뻥뻥 터지는지.


아들 놈 새벽에 응급실로 들어가서 입원시키고 딸래미 등교시킨다고

다시 집으로 달려갈 때도 마음은 병원에 있었다.

그렇게 혼자 바쁠 때... 나의 2년이 조금 못된 애마(자전거)를

도둑맞아 버렸다.

그렇게 똥끝이 타는 나와 달리

내 낭군은 변함없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늦은 밤, 이른 새벽을

소주를 향수 삶은 듯 향기를 풍기며 돌아다녔다.

남편은 나와 아이들에게 점점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있지만 없는 사람...

늙어서 어디서 사랑을 받으려고 그러는지.


참았다 한번씩 뻥뻥 터트리고 나면 그때만 “앗, 뜨거워라!!!”

할뿐, 닭대가리처럼 금세 잊고 변함없는 행동들...


내가 새댁이었을 쯤,

하루가 멀다 하고 큰소리 뻥뻥 내지르며 싸워대는 내게

이웃에 아줌마들이 힘이 뻗쳐서 그럴 수 있는 거라나.

나이 들다보면 네 맘대로 ,살아라. 싸우기도 귀찮아 진다고 했었는데...


퇴근시간 맞추지 않아도 트집 잡았고

술 마시고 들어와도 싸워 됐고

각서를 쓰게 하기도 하고

밤 12시가 넘으면 외박이라고 단정 짖고 악다구니를 쳐대곤 했다.

말투에 작은 가시라도 박혔다 싶으면

꼬투리 잡아 용서를 받아 내곤 했다...


15년을 살았을 뿐인데

내가 너무 빨리 늙어 버렸나보다.

싸우는 것이 귀찮다.

챙기기도 그렇고... 남편은 밤을 새고 들어오던 말든

전화 한 통화 없는 내게 심통을 부릴 때가 있다.


내가 남편이란 존재를 포기해 버린 것은 아닌지...


마주보고 서야하는 부부사이가

서로 다른 평행선을 그리고 있으니...

보고 느끼는 것이 같을 수 없나보다.

가정을 공유할 수도 없나보다.

공유는커녕 기생하는 듯싶으니...


어쨌든 걱정보다 빨리 퇴원한 아들 녀석,

좀 수척해진 듯 하여 마음이 짠하지만

표현하지 않았다.

밥상에 특별히 신경써주지도 못했다.


오늘 아침 출근길도 역시 햇볕이 쨍쨍, 모래알이 반짝 거렸지만

사람들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있었다.

나 역시 우의를 챙겼다.


집과 동사무소의 중간 지점에 ‘주 재근 베이커리’라는 제과점이 있는데

8시 15분쯤이면 지나치는 그곳은 늘 주변까지 포근하고 향긋한 빵 굽는

냄새로 감싸게 했다.

세상이 모두 이렇게 향긋했으면 하는 마음은

주택가로 접어들며 진동하는 음식쓰레기 냄새 앞에서 더욱

간절해지곤 한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닌가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에서 보내어 오는 선물들을 보면 말이다.

바삭하게 구워진 김 한 박스, 커피 한 박스, 한과 한 박스, 비누 세트...


받아서 좋기는 하지만

뭣으로 답례를 해야 할 지 고민을 하려니 그것도 쉽지 않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니

언제까지고 입으로만 베풀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일이라는 것을 하고부터 한 턱 쏘는 일이 좀 늘어 난 듯도

하다.

첫 월급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부탁한다는 의미로,

그 동안에 은혜에 조금이나마 베풀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어쩐 일인지 내가 취업을 하고부터 내 남편의 일이

많아졌다. 하는 일에 비해서 변변치 못한 수입금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밤낮으로 바쁘다는 남편, 이러다가

곧 63빌딩 한 채를 사게 되지는 않을 런지...


졸지에 능력 있는 남편을 둔 마누라가 되어 버렸다.

그럼 나도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지.

며칠 전, 그 날도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거리를

자전거로 질주 했다.


길가에 떠~어~억하니 위치한 전자상가 H마트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부터 내가 15년간 함께 살아 온 상처투성이로 뗌 빵인 냉장고와

TV등... 내 삶을 더욱 궁상스럽게 만드는 것 같아 회의가 느껴지던

차였다.


사실 처음에는 구경이나 실컷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던 나였다.

나설 때는 묵직한 카드 빚을 만들어 놓은 후였지만....

양문 형 홈바 냉장고, 디지털 TV, 콤보, LCD컴퓨터 모니터...

필요한 것들은 아직도 많았지만 욕심을 버리고(?) 장만한 것들...

웬수라도 같이 지낸 세월 탓인지 텔레파시가 통했나보다.

때 맞춰 오후에 남편이 통장으로 300만원을 입금시켰다.

카드 빚에 약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그 날 밤,

역시나 술 한 잔 걸치고 들어선 남편...

옷을 벗어 놓으려고 거실로 향하는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헉!!! 이게 뭐야... 하여튼 배짱도 커. 뭐하는데 이렇게 큰 냉장고가

필요해.“ 하며 안방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이내 뜨이는 커다란 TV...

거실에서 흘러들어오는 불빛으로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는지

안방의 불까지 켰다.

“뭐야... 이 사람이 미쳤나. 이게 다 뭐야?!”


술이 확 깨는 듯한 목소리였다.


“놀라기에는 이르지. 아빈이 방에 컴퓨터 모니터도 바꿔줬어.”


간단명료하게 답해주니 후다닥 아들 방으로 향한다.

“이게 다 얼마야! 하나씩 장만해야지 여자가 겁도 없이

어쩌면 이렇게 크게 일을 저질러!“ 란다.


언젠가 짜개진 냉장고 선반에 본드로 붙여서 사용했는데 또 부러질

기미가 보이길래  남편에게 말했더니

A/S센터에서 선반만 구입하면 앞으로 10년은 더 쓸 수 있다나?

15년 쓰며 버틴 것도 어딘데 앞으로 10년이라니,

가능만 하다면 100년인들 못 쓸까.


“우리 집에 저런 냉장고가 어울린다고 생각이나 하냐?”

어처구니없다는 듯 따져드는 남편의 말에,

“나는 오늘 산 가전제품을 앞으로 15년을 더 써야해. 이제 큰 집으로

이사만 가면 되지. 가전제품에 어울리는 집으로 말이야.

요즘 돈 잘 버는데, 너무 벌리기만 하면 안돼는 거야. 고인 물은 썩는다더라.

썩지 않게 하려고 내가 물고를 텄다고 생각해.“


조만간에 못다 산 세탁기와 전자렌즈와 장롱을 비롯한 집안 살림을

싹 교체해서 바꿀 거라고 까지 했다.

남편 내 말에 대꾸하길... 미쳤단다.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10년 된 아들의 침대도 구입해 놓은 상태라는 것까지

친절하게 설명했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

어쨌거나 갚아야하는 무이자 할부금을 모두 결제해 버렸다.

어차피 남편은 자신이 보내준 돈으로 사고를 쳤다고 생각했으니.


신혼 초, 저 남자(남편)랑 내가 몇 년이나 함께 살 수 있을까,

싶었는데 훌쩍 15년이 흘러버렸다.

이렇게 살다보면 앞으로 더 그만큼 버티게 될지...

한치 앞도 모른다는 인생 사 무슨 말로도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30대 후반에 이 정도라면 40대에는 도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