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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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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상에 내가 온 흔적(1)


BY 영원 2007-09-16

아들은 연극영화과 지망생이다.

군단위의 인문계고등학교다녔었는데

자신은 대학을 꼭 연극영화과로 가고싶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싱글맘인

엄마입장에서

부담이 안될 수도 없는 것이였다.

연극영화과 돈도 많이 든다는데,

 또 엄마를 떨어져 살아보지도않았는데

혼자 도시로 내보내 하숙을 시킨다는 것도 불안했다.

 저 하나바라보고 열두시간을 미용실에서 일을 해도

힘들다는 생각안하고 즐겁게 일하고 사는데,,

행여 도시로 내보내 연극영화는 커녕 

아들의 인생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내 삶의 의미마져 상실되어버릴것같은 불안감등등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하다가 나는 힘든결정을 내렸었다.

엄마로써 아들을 바라보지 말고 아들의 인생에

내가 주인공 이되려하지말고

내아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길 안내를 해 주는 엄마가 되자고,

그렇게 결정을 하고  아들과 많은 대화를 해가며

 

 

부산에있는 영화 고등학교로 전학을 시켰었다.

 

작년 6월달이었네 ,아들이 다닐 학교가 초량동에 있어

그근처 하숙을 구하느라 얼마나 헤맸었던지 .

학교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하숙집을 찿아갔다.

옛날 일본식 집이라 조금 허술해보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아들의 정서는 그런 집을 더 좋아했다 .

마당에 강아지 한마리가 아들을 반기니

그러잖아도 강아지를 종아하는 아들과 금방친해져

오래도록 그 하숙집에서 살았던 사람같았다.

쫀쫀해 보이긴해도 정직한것같은 하숙집아주머니와

이런저런이야기를 나누며 아들을 부탁하고 돌아서는데

왜 그리 눈물이 목이 메이는지 천리만리 떨어지는것도 아니고

한시간정도면 아들을 볼수있는 거리인데도 

아들을 두고 나오려니 서럽고 서러워 발걸음이 떨어지지않았었다.

그도 그렇것이 부산은 내가 처녀적에 미용실을 하며 살았었고

 초량에서 얼마 떨어지지않은 곳에서 지 애비를 만나

생각지도 않았던 결혼이란걸을하고 살았던곳이고

아들이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다

지애비가 아직 부산에 살고 있고

아들은 얼굴도 모르는 큰 집 식구들도 

 초량동 그 근처에 아직 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

이런 저런 상념들이 한편의 드라마 처럼 뇌리를 스치니

서러움이 복받치는 것이다.

 아들은 엄마의 그런 심정을 알리없고

저는 그져 엄마 잔소리 안듣고 난 생 처음 혼자

생활한다는것에 조금은 흥분된듯

\"엄마 왜 울어 내가 어린애야 , 나 잘 할태니 울지마\" 하는 것이다.

애비가  부산에 살고 있는데도 아들 하나 건사 할 여력이 안되

하숙을 시킨다는 생각,

애시 당초 애비에게 기대 같은 건 하지 않았었지만

남 보다는 났지않겠나 하는 생각에전학 하기전에

 몇년만에 전화를 했었다 .

자초지정을 이야기하고 아들과 같이 생활을 하고

내가 생활비를 보낼태니 애를 좀 챙겨 달라고하니

어물쩡어물쩡 대답이 시원치 안터니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하며

전화를 끈었다.

그러고나서 한달이 지나도 전학이 어찌되어가냐고 전화 한통없었다.

그래도 지 새끼일인대 능력이 되고 안되고 말이라도 보태주는게  그리도 힘든일이였을까?  에라 이 인간아 내가 언제 니가 애비 라고 뭔가 해주기를 바라고 살았냐 ,

혼자 힘든 고비 다 넘겨 가며 아들을 키웠었는데

이제 와서 물어본 내가 바보지.걱정하지말자 

심성 착한 내 아들 어디 가서든 반듯하게 지 할 일 잘하며 지낼거야 ,

혼자 넉두리를 해가며 동분서주 학교 교장 만나 면담하고

하숙집얻어 살림살이 차려주고

또 시속 170키로 밝아가며 가게 와서 일하고 그랬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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