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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거(6)


BY 개망초꽃 2007-09-10

딸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그러니까 결혼을 한지 일 년 만에 공금횡령으로 남편은 회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회사 돈을 갚지 않으면 구속될 지경에 이르러서야 남편은 도박으로 인해 돈을 썼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자기네 집에 가서 빚을 갚아 달라고 부탁해 보라고 했다. 딸아이를 안고 시집엘 갔다. 겨울이 오던 뜰은 낡은 빈종이 박스처럼 허전하고 초라했다. 누렇게 바랜 국화꽃은 고개를 숙이고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어머님은 한숨을 섞어 나를 바라다본다. 어쩌겠냐, 네가 참아야지, 걔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니…….어릴 때부터 속을 그리 썩이더니…….그러면서 어머닌 내게 돈을 주셨다. 쌀사고 연탄 사라고. 빚은 큰 시누하고 의논을 해 봐야한다고 하셨다. 

그 날 밤 큰 시누는 내게 전화를 걸어서 두 번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거친 말을 쏟아 부었다.

“애비 없는 년이 들어와 재수가 없어서 그런 거야, 네가 버릇을 고쳐야지 그 버릇을 못 고쳐 주었냐? 네가 나한테 돈 맡겼냐? 남편 빚을 나보고 갚아달라고 하게. 넌 친정식구도 없냐? 친정식구 보고 갚아달라고 해.”

친정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남편의 누님 둘은 이대를 나왔다. 그런데 앞뒤도 모르고 저리 말씀을 하실까? 내가 언제 네 돈으로 빚을 갚아 달라고 했냐고? 아버님 유산으로 갚아 달라고 한거지. 내가 도박을 해서 빚을 진 게 아닌데...방 한 칸에서 살고 있는 친정엄마한테 빚을 갚으라니 차라리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남편도 희망이 없다. 가야겠다. 나는 보따리를 챙겼다. 그러나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많았다. 제일 큰 이유는 나처럼 애비 없는 자식을 만들어 주기 싫었다. 참아야했다. 시집에서 급한 빚을 갚아주었다. 전셋집을 줄여 변두리로 이사를 했다.

 

성남시는 나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상대방으로 인해 빈곤을 느낀다고 성남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 울고 웃고 사는 곳이었다. 집 앞에 똥물 섞인 잿빛 개천이 흐르고 버스로 몇 정거장만 가면 남한산성이었다. 남편은 직업도 구하지 않고 밖으로만 돌았지만 참아야만 했다. 그렇게 삼년을 변두리에서 살았더니 시집에서 서울에다 전셋집을 얻어 주었고 남편은 서울로 직장을 잡았다.

 

서울로 이사한 곳도 바로 옆에 산이 있었다. 오월이면 아카시아 꽃향기가 넘실넘실 다세대 주택 이층으로 넘나들었다. 계단과 창문에 꽃을 듬뿍 키웠다. 동네에서 우리 집을 꽃집이라고 불러 주었다.

 

집 주인은 레즈비언이었다. 처음 계약을 하러 왔을 때 자매인줄 알았는데 이사 와서 보니 동성애 부부였다. 남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팬티도 남자 팬티를 입었다. 주인집 빨래 줄에 가운데가 뚫린 남자 팬티가 걸려 있다. 오줌을 눌 때 꺼낼 남근도 없으면서 말이야, 하면서 옆집 할머니랑 팬티 얘기를 하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도 머리에 이지 않고 남자처럼 어깨에 메고 다닌다. 구두도 백구두만 신었다. 부부가 목욕탕을 갈 때는 같이 여탕으로 들어간다고 옆집 할머니가 말해 주었다. 남자짓 하는 사람은 가끔 우리 집에 꽃보러 놀러왔다.

남편은 주인 남자가 집에 놀러오면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으라고 했다. 그런 남자가 예쁘고 젊은 여자를 더 좋아한다고 들었다면서. 남자 주인은 나만 보면 비질비질 웃으며 예쁘다고 했다. 꽃을 싱싱하게 기르고 살림을 깔끔하게 해서  맘에 든다고 오래도록 이 집에서 살라고 했다. 주인집 여자도 우리 집에 자주 들렸다. 딸아이가 예쁘다고 자주 안아줬다.

한번은 주인집 여자가 점심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우리 집에 오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 집에는 가기 싫었다. 특히 그 집 음식은 먹기가 싫었다. 막내 이모는 우리 집에 와서는 주인 부부만 보면 현관문을 콱 닫으며 재수 없다고 했다. 에이즈 걸릴지 모르니까 그 집 음식은 절대 먹지 말라고 했다. 에이즈가 걸리지 않겠지만  밤에 뭔 짓을 하는지 대충 짐작이가니까 더러워서 먹기가 싫었다. 자꾸 전화를 하기에 딸아이를 안고 올라가야만 했다. 절에서 올린 결혼식 사진이 벽에도 장식장에도 요사시하게 걸려 있었다. 우리 이렇게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내게 자랑하고 싶었나보다. 사랑? 개 풀 뜯어 먹는 소리하고 있네. 동성결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짓하고 있네. 조촐한 점심이었고, 남들이 먹는 걸 그대로 먹고 있었지만 토악질이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물로 밥을 넘기고 반찬을 넘겼다. 종일 토해낼 것 같이 속이 울렁거렸다.


레즈비언 주인집 부부와 우리 집 현관문과 붙은 옆 집 할머니와 잘 적응하며 살긴 했는데, 늦게 들어오는 버릇을 못 버린 남편하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깊고 길게 절망하고 허구한 날 우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부터 커튼 사이로 시꺼멓고 눈이 허연 사람이 손짓을 했다. 이리와 봐, 이리와 봐, 하는 게 아닌가. 그런 날은 밤새도록 부들부들 떨며 숨을 쉬지 못해 헐떡였고 결국은 또 다시 응급실로 실려 갔다. 동네 병원에선 병명을 알 수 없다고 종합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종합병원에서 검사결과는 위염 외에는 병명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가슴이 뛰고 숨이 찬 이유를 모르겠다고 의사는 정신과를 가 보세요, 한다.


걸어 다니지를 못했다. 똑바른 길이 꾸불텅거리고,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땅위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내 몸이 4차원 세계로 이탈을 하나보구나, 했다. 멀미가 심해서 차를 타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멀미를 한 적이 없이 건강했는데, 차 냄새만 맡아도 입덧하는 것 같았다. 음식 맛을 몰라 몇 숟가락 물에 말아 억지로 넘겼다. 내장 속이 문드러지고 있구나, 했다.

텔레비전도 재미가 없었다. 책도 읽지 못했다. 손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살림도 겨우겨우 했다. 살고자하는 의지가 손끝으로 발끝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몸은 가시처럼 말라 들어갔다. 이대로 말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보자 한 곳이 정신병원이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입원을 하라고 했다. 정신이 헤까닥 돌아서 집을 나가 떠돌이 신세가 되는 것은 정신병의 5%에 지나지 않고 나 같은 사람도 정신병이라고 했다. 그때가 딸아이가 5살 때였다. 딸아이 때문에 입원을 할 수가 없었다. 통원치료를 해 보겠다고 하고 병원을 나섰다.

 

햇볕이 참 맑다. 노인들이 씩씩하게 걷네. 사람들 얼굴이 해사하다. 가냘픈 들꽃이 보도블록 사이에도 꽃을 피웠네. 쓸모없어 보이는 풀들이 무성하다. 나뭇잎은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어 서 살고 있네. 길거리 노점상 아줌마는 뭐가 행복하다고 히히덕 웃고 있다.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도 열심히 쓰레기 더미를 뒤적거리시네.

 

난 다시 살고 싶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딸아이가 있잖아. 홀로 날 키워준 엄마도 있잖아.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자신이잖아. 정신병원안에서 삼십대를  보낼 순 없잖아.

정신병원 의사는 혼자 있지 말라고 했다. 취미 생활을 찾아보라고 했다. 운동을 하라고 했다. 수다를 떨라고 했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야 했다. 무엇이든 잡아야 했다.

 

딸아이와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올랐다. 아카시아 꽃이 바람 곁에 떨어지면 하염없이 바라보며 동요를 불렀다. 개미를 관찰했고 구슬보다 예쁜 며느리 밑씻개를 따서 딸아이 손에 올려 주면 해맑게 웃어주는 딸아이를 보며 나도 말갛게 물이 들었다. 딸아이와 소꿉장난을 했다. 풀 반찬도 만들고, 꽃 김치도 담갔다. 사시사철 피는 들꽃을 들여다보며 누구도 봐 주지 않는 가냘픈 꽃이지만 들꽃은 자기 자신을 위해 예쁘게 피어나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작은 곤충들의 생명력에 나도 다시 살아날 기운이 생겼다. 딸아이와 함께라서 즐거웠다. 자연과 함께 라서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래, 나중에 시골 가서 꽃 키우면서 살면 되겠지. 지금은 비록 남편으로 인해 상처 받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손끝에 힘이 빠져있지만 내겐 꿈이 있잖아. 날 보면 예쁘게 웃는 딸아이도 있고, 눈물로 기도해 주시는 엄마도 계시잖아.

 

지나간 앨범을 뒤적이며 청춘이었던 날을 추억했다. 젊은날의 편지를 읽으며 감성이 풍부했던 그날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그 시절을 보낸 그 사람이 막연하게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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