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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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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에서 띄운 편지(가을이네...)


BY 개망초꽃 2007-08-31

여름이 깊을 대로 깊어져 가을이 얕게 오고 있어.

얕은 가을 가에 여름 꽃은 지고 가을꽃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네가 소름 돋아 했던 곤충들도 가을바람이 깊어지면 사라져 한줄기 그리움으로 남겠지.


여긴 비가 많았던 8월이었어.

찜통 같은 열기가 없어 올 여름은 수월했어.

선풍기도 꺼내 몇 번 안 돌린 것 같은데 오늘이 8월의 마지막 날이네.

시절이 좋아져서 물자든 돈이든 에너지든 풍족하다 못해 비대해졌나봐.

버스안도, 사무실도 너무 추워서 겉옷을 준비하고 몸을 움츠리고 있단다.

한 여름에 따스한 차가 좋으니…….대한민국이 살기 좋아졌다는 증거일거야.


끈적끈적하고 곤충이 득시글거리는 나고야의 여름도 이제는 한풀 꺾였겠지.

꽃순이도 여름이 올 때 미용을 짧게 해서 시원하게 여름을 보냈고,

상록이는 학교에서 보내준 공짜 숲탐험을 신나게 하고 와서는

엄마랑 강원도 내린천으로 래프팅을 떠났어.

여름휴가도 다녀오지 못해서 상록이랑 여행겸 래프팅을 체험하기로 했단다.

엄마는 떠나기 전부터 걱정이 앞서서는 출발할때는 멀미약을 먹었단다.

나는 어지럼증을 가지고 태어났나봐 어릴 적부터 뺑뺑이 돌기기만 봐도 울컥였고,

그네를 탔는데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솟아올라서 너무 무섭고 어지러워서

그 다음부터는 그네를 타지 못했단다.

당연, 놀이동산에 가서는 너희들만 태워놓고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워했다는 거 너도 기억나지?



구명조끼를 입고 머리에 헬멧을 쓰고 여럿이 배를 들고 내린천에 띄웠단다.

먼저 물에 들어가 물과 하나가 되게 풍덩 몸을 빠뜨렸다가

드디어 물결 가는대로 떠내려가는, 모터가 없는 파란색 비닐 배를 탔단다.

공기가 들어간 튜브인줄 알았는데 아닌가봐

확실하진 않지만 비닐 속에는 공기를 주입하는 게 아니고 스티로폼 같은 재질인 것 같다.

상록이는 신났지만 엄마가 더 신나했어.

생각처럼 무섭지 않고 재미있었어.

굽이치는 계곡을 따라 떠나가는 여정은  적당한 스릴과 함께

급경사의 무서움은 감미롭기까지 했어.

조교가 하라는 대로 구령에 맞춰 노를 저으며 소리를 질렀어.

고요하게 머무르는 공간  속에서는

노도 내려 놓고, 배도 흐름속에 놔 두고,

사람들도 하늘 아래 풍경에 쌓여 잔잔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

구멍조끼를 입은 채로 상록인 깊은 물속에서 헤엄도 쳤어.

물은 적당하게 데워져 있었고, 물에 잠겨 있는 바위는 래프팅의 흐름을 잡아주고,

산은 푸를 대로 푸르러 우리들도 자연과 함께 여름의 중앙에 서 있었지.

상록이랑 네 얘기를 했어.

누나가 일본에서 오면 래프팅 타러 다시 오자고.

셋이서 노를 저으며 소리를 맘껏 지르며 자연과 어울려 보자고.


아무리 드센 계절도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봐.

8월은 계곡물이 좋았는데, 어제 오늘은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시원해서

오늘 아침엔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니까.


네가 유학을 간지도 벌써 6개월이 되어가네.

근데, 벌써가 아니고 너를 안본지 몇 년이 된듯해.

일본에서 올 때면 우리 딸내미 얼굴도 생각 안 나서 공항에서 찾을 수나 있으려나?

엄매~~~하고 부르던 어리광 섞인 네 목소리가 그립다.

엄마는? 하면서 힘든 걸 참아내며 엄마 걱정부터 하던 네 목소리가 보고 싶구나.


상록인 요즘 컴퓨터 배경 창에 하늘만큼 땅만큼에 나오는 탤런트 박해진을 깔아 놓았어.

숲탐험 갔을 때 한 살 연상인 누나가 상록이보고 박해진을 닮았다고

나 박해진 좋아하는데 …….그랬다는구나.

그 뒤부터 컴퓨터를 부킹하면 박해진 얼굴이 떡 뜨는 거야. 크크크

상록이가 그 누나 좋아하는 거 아니냐? 네가 한번 넌지시 물어보그라.


요즘 상록이가 밤마다 엄마 발을 주물러 준단다.

주물러 달라고 안했는데, 손가락으로 꼭꼭 마사지를 해 주는 거야.

그러면 꽃순이는 옆에 와서 내 발을 핥고, 웃겨 죽겠어.
며칠 전에는 라면에 오징어를 넣어서 끓여 먹는 걸 티비에서 보곤

상록이 더러 라면 사오라고 해서 오밤중에 오징어 라면을 끓여 먹었어.

국물이 시원하니 맛있더라고……. 이렇게 우리 셋은 잘 놀고 있단다.

너만 바다 건너 떨어져 있어서 외롭지는 않은지...밥은 굶지 않는지...적응은 잘 하는지...

라면 안 떨어졌니? 밑반찬은?

필요한 거 있으면 편지 써라, 또 보내줄게.


도서관에서 일한지도 8개월째야

9월 달 한 달만 다니면 도서관도 그만 둬야한단다.

앞으로 뭔 일을 해야 하는지 계획은 없어.

사무실 쪽으로 일자리를 알아봐야하는데…….자리가 있으려나 몰라.

엄마는 게으르고 욕심이 없고 극성맞지 못하고 태평한 편이라서

되겠지 뭐…….이러고 산단다.

부지런하고 극성맞아야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고 생활이 풍족할텐데…….

그래도 엄마 마음에 너희들은 좀 극성맞고 욕심 좀 있었으면 하는데.

그래야 엄마가 편할 거 아니냐??? 히히


9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삼촌들이랑 할머니 모시고 벌초하러 고향에 갈 거야.

항상 여름에 가다가 이번엔 늦춰졌네.

고향에 가면 네가 더 생각날 거야.

모닥불에 삼겹살 구워 먹으며 네 생각 많이 해줄게.


가을이 깊어지고 깊어지면 그때는 너도 일본생활에 적응이 많이 되겠지.

일본말도 술술 하고, 강의시간도 재미있어질 것이고…….

귀한 시간을 알차게 곱게 보내거라.

나고야의 가을은 또 어떤 색일까? 소식도 자주 보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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