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62

\'휴가\'하면 생각날 사람.


BY 심미안 2007-08-31

원 게시물을 보시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올해는 작년에 보다 조금 늦은 휴가를 맞이했다.
휴가 대부분을 같이 보내는 동생네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절정의 시기를 놓쳐버렸다.
두 살 터울인 여동생과 나는 자매이자 친구가 같은 존재이다.
세상에 형제는 둘 뿐이다. 라는 생각이 결속력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작년엔 제부의 제안으로 단양으로 결정했었다.
동생과 준비물을 의논하고 마트에서 장도 보며 마음이 들떴던 기억이 난다.

칠월의 마지막 날을 시작으로 두 가족은 단양으로 출발을 했다.
한여름의 날씨는 불볕더위를 자랑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신나는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후 우리는 단양팔경의 운치를 구경할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저녁식사도 조촐했지만 즐거운 파티로 마감을 했다.
다들 피곤한지 일찍 잠이 들었고 동생과 나는 모처럼 데이트를 했다.
숙소 마당에서는 한여름 밤의 다양한 축제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분수 가의 벤치에 앉아 작은 음악회의 연주를 감상했다.
오랜만에 동생과 편안하고 여유로운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음날 일정은 남편과 제부는 소백산을 오르고 여자들은
숙소 내에 있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기로 했다.
동생과 나는 아이들 못지않게 신나게 물놀이에 빠졌었다.
몇 시간 물놀이에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햄버거 코너에서 줄을 서고 있을 때
동생이 갑자기 허겁지겁 달려왔다.
방금 우리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남편은 산에 있고 나는 물놀이를 하느라 연락이 되지 않아 오전 내내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늦은 연락을 받고 서둘러서 큰 집인 전주로 향하였다.
어머니는 사경을 헤매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휴가에 젖었던 것이 죄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뵌 것이, 마지막으로 음성을 들은 게 언제인지 어머니 얼굴이
아련히 떠올랐다.

삼 년 전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신 후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셨지만
그렇게 하루아침에 쉽게 돌아가실 줄은 짐작도 못 했었다.
나는 오 남 일녀의 넷째 며느리이지만 결혼을 마지막으로 하고 나이도
제일 적은 탓에 막내며느리 대접을 받았다.
어려울 때 시집오신 큰 형님들은 고생도 많이 하고 소위 말하는
시집살이도 했겠지만 나는 그저 일 년에 몇 번 찾아뵙는 것이 고작이었다.
늦게 본 며느리에게 한 가지라도 주려고 하셨고 늘 입버릇처럼
너희만 잘살면 된다고 하셨다.
옛날 어른들은 대부분 그런 고생을 했다 하지만 특히 우리 어머님은
남편의 따뜻한 정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마음고생만 심하게 하셨고,
육 남매를 키우느라 안 해본 고생 없이 그렇게 한 많은 생을 살았던 분이셨다.
입관의식을 바라보며 살 한 줌 없는 마른 어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메어왔다.
살아오신 세월을 생각하니 같은 여자의 처지로서 가여운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행복한 여자의 삶을 사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선산에 어머니를 모시고 삼우제를 지낸 후에 처음 계획했던 일정과는 다르게
긴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
설렘과 즐거움으로 시작했던 휴가는 크나큰 슬픔의 휴가로 마감을 했다.
일 년이 지나 다시 맞은 올해의 휴가는 신나는 여행보다는 어머니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어머니는 분명 이렇게 말씀 하실 것이다.
“내 새끼들 이 어미 걱정하지 말고 재미있게 놀다 와라. 알았지?”
그렇게 웃으며 말하실 어머님이 휴가를 맞은 오늘 더욱더 생각이 난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