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읽기 전에.
엄마가 지금 밥을 막 먹고 난 뒤라거나
혹은 조금 있다가 밥을 먹을 예정이거든, 나중에 읽어 주길 바래.
혹시 밥맛이 뚝 떨어져서 내 탓을 해도 난 몰라 몰라~
어제 밤에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말이지.
한 순간이었어, 바퀴벌레가 어디선가 날아와 내 머리 바로 옆 벽에 휙~붙은 건.
순간 끽 소리도 못 내고 벽에서 떨어져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자리에서 튕기듯이 일어났지.
몸통이 내 엄지손가락만 하고 더듬이 역시 몸통만 했어.
다리 마디마디가 보일정도의 크기인거야.
바퀴벌레 주제에 갑옷을 입고 번쩍거리는 등짝을 자랑하며
이게 슬슬 날개를 푸득푸득 거리는데, 정말이지 대 패닉 상태였다니까.
이걸 어쩌나? 벌레잡기 담당 친구를 부르기에도 좀 늦은 시각이었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상태로 계속 째려보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번쩍이는 등짝에서 날개를 꺼내고 나한테 날아올 것만 같았어.
일단은 살고 보자, 라는 생각에 벌레잡기담당 친구를 불렀고,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잡는데, 내가 옆에서 더 소란을 피웠던 것 같아.
잠도 안 오더라고 어디선가 다시 바퀴벌레가 나와서 싸우자고 덤빌까봐.
일산 집에서 살 땐 바퀴벌레는 구경도 못해서
지구상에서 가장 끈질긴 벌레가 바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었는데,
여기 와서 자주 마주하고 있네. 그것도 보통바퀴보다 2배는 큰놈들로.
으으~~ 지금 편지를 쓰면서도 왠지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일본에 벌레를 연구하러 온 것도 아닌데.
일본이 온통 연분홍빛이던 3월부터 검은 벌레들이 자꾸 나한테로 찾아와.
저번에는 말이야.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위로 드니까 천장에서 벌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거야.
세상에나 난 그렇게 큰 벌은 처음 봤어.
이 한마리가 주는 공포감은 바퀴벌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더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 뾰족한 침이 날 향하고 돌진해올까 봐.
그대로 일어나서 슬슬 몸을 뒤로 빼서 집 밖으로 뛰쳐나왔어.
그 순간에는 손을 움직여서 핸드폰으로 친구한테 전화를 걸 엄두도 안 났었던지.
일단은 집에서 탈출해야겠단 생각 밖에.
그대로 벌레잡기담당 친구네로 줄행랑을 쳤지.
곤충 한 마리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다니 억울했어.
난 방문 뒤에 숨은 채로 친구가 모기 잡는 약을 뿌려서 죽였는데
벌은 이불위에 몸을 축 늘어트리곤 죽을 생각을 안 해서
이불위에다가 대고 계속 약을 뿌려댔어. 덕분에 이불을 빨게 됐는데,
이불이 세탁기에 안 들어가서 주말에 욕조에 이불을 넣고 발로 밟아 빨았다는 거 아니야;;
이 망할 벌, 다신 오지마라, 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난 파리, 모기, 벌, 잠자리, 바퀴벌레 등등등.
자기네들 몸뚱이를 되는대로 사람한테 들이미는 곤충들이 정말 싫어.
근데 여기 와서 새삼 싫어 진 게 또 생겨버렸어.
매.미.
한 여름에 시끄럽게 빽빽 악을 쓰며 우는 소리는 좀 시끄럽지만.
매미는 좀 불쌍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7년을 애벌레로만 살다가 한 여름에 매미가 되서 고작 7일을 살고 죽잖아.
악을 쓰며 시끄럽게 우는 게 억울함이나 슬픔을 표현 하는 것 같아서
그 울음이 왠지 애달프단 생각이 들곤 했었어.
상록이가 어렸을 때
빽빽 우는 매미를 삼촌이 잡아다가 상록이한테 쥐어주니까
상록이가 그게 딸랑인 줄 알고 흔들었었는데, 기억나?
자기가 흔들면 매미가 빽빽 울어대니까
장난감 중에 흔들면 소리 나는 딸랑이라고 생각 됐는지 매미를 쥐고 달랑달랑 흔들어 댔었잖아.
그때 당시 상록이가 막 걸어 다니면서 이것저것 호기심을 가졌던 때니까.
쪼그만 애기 주먹에 딱 잡힐 크기인 매미였을 거야.
근데 여기 매미는 몸통이 애기 주먹만 한 게 기본 크기야.
뻥 좀 보태서 내 주먹만 한 것도 봤어!!!
크기가 커지니까 생김새도 한층 징그러워져서
이젠 애달픔 따윈 느껴지지도 않고 징그러울 뿐이야.
시끄럽게 울어대다가 마지막 7일째 날 우리 기숙사 복도에 와서
배를 뒤집어 까고 죽어 있으니까, 애들이 그걸 보고 계단을 올라가다가 꺅! 꺅!
나 역시도 그 소리에 놀라서 보지도 않고 다시 일층으로 냅다뛴게 한두 번이 아니거든.
하루에 한 마리씩은 와서 죽는 거 같아. 으으~~
구슬치기하는 구슬만한 거미는 기본이고.
여기 와서 제일 놀랬던 게 지네야, 지네.
그러고 보니 안 본지 한참 된 거 같네.
한 뼘보단 좀 짧은 길이의 지네가 봄에 집집마다 한두 마리씩 나타났었는데,
그 많은 발을 움직여서 이동하는 걸 발견해 약을 뿌리면
그 많은 발을 꿈틀거리며 온 몸을 베베 꼬는데, 내 몸의 모든 털이 다 거꾸로 솟는 느낌이야.
왠지 내 몸에 기어 다닐 것 같고 그런 느낌.
으으으~~ 생각만 해도 온 몸이 베베 꼬여.
이러다 보니 모기!? 이건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그냥 날라 다니는걸 손으로 때려잡으면 그만이니까.
사실 나 원래 모기를 맨손으로 못 잡았었거든.
왠지 맨손으로 잡으면 모기의 길 다란 다리며 침이며가 내 손에서 짜부되는 느낌이 날까봐서.
손으로 잡으려다가 괜히 상상이 돼서 못 잡곤 했거든.
근데 이젠 짝짝 명쾌한 소리까지 내며 잘 잡고 있어.
손으로 때려잡는 순간에 눈을 감아버려서 명중률은 좀 떨어지지만 말야.
모기를 잡았을 때 제일 기분 나쁜 게 언제 인줄 알아? 딱! 잡았는데 피가 찍- 나올 때!
내 피를 다른 생물체에서 보는 그 느낌이란? 썩 좋지 않더라고~
요즘은 여름이라 그런지 작은 도마뱀 같은 것도 나오는 모양이야.
우리 집엔 아직 방문을 안 해줬지만.
애들이 오밤중에 꺅꺅 거려서 물어보니까 작은 도마뱀이 나타났다고 하더라고.
발가락을 쫘~악 펴서 잽싸게 도망가니까 잡을 수도 없고.
벌레를 죽일 때랑은 또 다르니 쉽게 죽이지도 못하는 모양이야.
난 얼마 전에 복도에서 한번 봤는데.
내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꼬리와 엉덩이를 흔들흔들 거리며 냅다 줄행랑을 치는 도마뱀을 보니까.
요 녀석은 좀 귀엽더라고. 하긴 집에 나오면 얘기가 또 틀려지겠지만.
비 한 방울 올 생각 안하는 쨍쨍한 여름날이 계속 되고 있어.
요즘 계속 40도를 웃도는 모양이더라고. 솔직히 40도! 라고 해도 잘 안 와 닿지만
뉴스에서도 사람이 쓰러졌니 죽느니 하는 거 보니까 40도가 무서운 거긴 한 것 같아.
한국은 비가 좀 왔던 모양인데 여긴 비가 안와서 더 난리야.
비가 한번 와줘야 온도도 좀 떨어지고 땅도 식힐 텐데.
지금도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로 귀가 아파.
이렇게 빽빽 매미가 울어대는 여름이 가고 나면
가을엔 또 어떤 벌레가 찾아와서 우릴 놀래 킬지 걱정이 좀 된다.
그래도 빨리 가을이 됐으면 좋겠다.
2007년 타오름달.
가을 단풍을 기다리는 엄마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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