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온통 구름으로 뒤덮였다.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 환경오염...등등이 거론 된지 벌써
수해, 만년설이 녹고 알레스카의 빙하가 녹는다는 걱정 어린
말이 나온지도 수년이다.
하지만 무딘 나는 그런 것들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았다.
올해가 되서야 그 말들을 실감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둔하고 세상
편하게 살았다는 증건가 말이지....
장마가 지났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의 해가 존재하기나 했었는지 가물거릴 정도로 새까맣게 끼인
먹구름 사이로 장대같은 비가 무섭게 내리는 통에,
이러다가 조만간 서울이 정글 숲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슬슬 쓸데없는 걱정이 떠오르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이제는 딱 정해진
장마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기’와 ‘건조기’로 나눠진다니
내 생각이 엉뚱한 것만은 아닐 듯 하다.
습하며 덥고 그래도 비는 쏟아지고...
물에 잠긴 도시의 아스팔트 위로 열대 식물이 자라고 덩굴식물들이
솟아나고 물 속에서 악어와 피라니아가 서식하고 숲에는 원숭이 떼를
비롯한 구렁이와 이름모를 열대 새들이 득실거리고...
타잔과 제인이 등장해서...러브 씬이...
TV는 결코 어린애들만 버리는 것이 아닌 듯하다.
이 나이에 이런 상상을 누가 동심으로 봐줄라나... 더위 먹어
주책 부린다고들 하겠지...
하여튼, 날씨가 정말 저~질이다.
비가 멈추기가 무섭게 머리 벗겨질 만큼 이글거리는 태양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찬밥만 먹어도 땀을 흘리는 허약한(?) 체질을 지닌 나로썬
더위에 조금만 몸을 움찔여도 머리에서부터 줄줄 타고
흐르는 땀의 양이 과장 조금만 보태서, 굳이 물을 뭍이지 않고 비누칠을 해도
샤워가 가능할 정도다.
선풍기로는 끄떡없는 무더위가 차라리 몸 안의 80~90% 존재한다는
수분을 웬만큼 배출 시켜서 체중이나 확실하게 줄여준다면
감사하련만...
그런 것도 못해주는 것이 땀만 빼 대고 땀띠나 만들어 주고 있으니.
돈에 약한 나는 에어컨을 일년이면 3~4번을 켤까 말까한다.
누군가 이런 나를 보고 한다는 말이, ‘에어컨이 장식용이냐?!“라며
따지고 들던데...그 누군가를 굳이 밝히자면 장하고 사랑스런 내 낭군님.
며칠 전에는 술 취해 들어와서 한다는 말이,
에어컨을 떼려 부순단다.
당연히 그 말에 대꾸를 했던 나...
“부서서 깨끗하게 치워만 놔. 조각이 굴러 댕기기만 해봐라.
이, 한 몸 잘근잘근 그 위에 누워서 굴러 댕길 테니까.
차라리 에어컨을 유리로 만들지 깨지기도 쉬울 테고 그 조각들이
내 몸에 잘도 박혀 버릴 텐데“
여리디 여린 나를 왜 그리 독하게 만들어 버리는지 원...
취직을 하고서
올 여름에 딱히 피서 한번 다녀온 적은 없지만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틈틈이
독서를 하고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으니 다른 것 생각할 것 없이
이곳이 ‘무릉도원’(?)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그래서 그런가...
휴일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더위에 힘겨워하는 자식들을 데리고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기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고
나 역시 더위와의 치열한 싸움 앞에서 무릎 꿇기가 십상이니...
방학이라고 학원 외에 다닐 곳 없는 아이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에 에어컨을 켜고 있으라니,
결코 그럴 수가 없다고 선풍기만 쐬고도 충분히 시원하다며 오히려
용감하게 대꾸해대니 그런가보다 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큰 놈, 14살을 어디로 먹었는지 빤스만 입은 섹시한 모습으로 나를 맞는다.
작은 아이 잠자리에 누워서 등이 가렵다고 긁어 달라길래
만져보니 땀띠가 오돌도돌 나있는 것이 아닌지...
그러니 어미의 마음은 또 어떨는지...
없는게 죄다. 무능함이 죄다. 미안하다 얘들아,
속으로만 삭이는 말들.
작은 아이, 차가운 물로 샤워를 매일매일 해대더니 끝내는
감기까지 걸려서 코를 훌쩍이며 코도 막힌다고 아우성이다.
거기다 목도 아프단다.
그런 것을 떼어 놓고 출근한 오늘 아침,
병원에 혼자 다녀오라며 돈과 함께 증상을 적은 메모지와 함께
건네주고 온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일기예보에서 오후에 비가 온다는 말에 우산을 챙겼다.
요즘 일기예보 하루 앞날도 모른다고 말들 많지만,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싶어서 ‘비’란 단어만 나와도 우산은
꼭 챙기고 본다.
길다란 우산을 거머쥐고 자전거로 보도불록 위를 달리는데
가로수가 우거진 곳을 지나다보니
길 곳곳에 모래알만한 작은 나무 열매 같은 것이 곳곳에서
소복히 쌓여있었다.
자세히 관찰하니 그것은 개미집이었다.
1m만한 작은 것들이 10cm는 족히 되는 높이의 담을 쌓아 만든 것을 보고
무심결에 흘러나온다는 말이,
“비가 또 얼마나 오려고 개미들이 저렇게 담을 쌓았을까?”...
내가 말하고도 어찌나 우습던지.
나도 늙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외할머니랑 함께 살았을 적에
할머니는 종종 멀쩡한 하늘을 보고서
“비 쏟아지겠다. 우산 챙겨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비가 오곤 했다.
특별히 뉴스를 보시던 것도 아닌데 어찌 그리도 잘 아시는 건지,
궁금한 것을 여쭤 본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어쩌면 그렇게 날씨를 잘 맞춰?”
라니,
“하늘에 구름이 낮게 뜨면 비가 온다. 그리고 제비가 낮게 날아도 비가와.
개미가 바쁘게 집을 높게 쌓아도 비가 온다...“
등등...
살며 터득하신 삶의 지식(?)들을 들려주곤 했는데,
가끔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들이 그 옛날 외할머니께서
하셨던 대사였기에 종종 새삼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옛말 그른 것 없다는 얘기가 있지 아마?
아들 놈 하는 짓이 영 마음이 들지 않았을 때 언젠가,
내 엄마가 우리 자랄 때 종종 하던 대사 중 하나인,
“서방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하고 넋두리를 그대로 읊으니,
녀석 한다는 말이,
“옛말 틀린 것도 있어요!” 한다.
“뭐가 틀려? 임마!”
“엄마, 옛말에 불가능한 얘기를 비유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엄마 먼저 TV 못 보셨어요? 계란으로 바위를 깨트렸잖아요.”
“???... 그런 방송 못 봤어.”
“하여튼 나왔어요. 그러니까 엄마, 아빠 복이 없어도 자식 복은
있을 거예요.“
“제발, 부디...그런 일이 실현됐으면 좋겠구나. 그런데 그 성적에
그 노력으로 공장 다니면서 효도할래, 막노동 하면서 효도할래?“
“...”
녀석도 고민인가보다.
효도는 하고 싶은데 뭘로 해서 효도를 할지에 대해서는 선뜻 대답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며칠 전에 나는 녀석을 죽자살자 보내던 학원을 끊어 버렸다.
금전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녀석이 공부에 대한 의욕이 너무 없어진 것이 아쉬워서 나름대로
결단을 내린 것인데,
놈이 필요하다는 참고서와 문제지를 사주는 것만도 십 만원이
훌쩍 넘어 버렸다.
어찌 공부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계획표를 세웠는데
도서관에 있는 열람실에서 공부를 혼자서 해보겠다길래
그렇게 해보라고 했는데, 이번 기회에 아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이런 간절한 엄마의 마음을 아들이 헤아릴수나 있을는지
자랄 때 어른들께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제야
무슨 뜻이었는지 깨닫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미 버스는 떠난 뒤건만,
알려 준 지름길에 대한 것을 무시하고 그동안 고생만 줄기차게 하고
후회를 하고 살건만,
내 소중한 자식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의 말들이 삶의 지름길이고
이치라는 것을 녀석들이 알리는 만무다.
그저 잔소리로만 들르겠지.
아~ 저질스런 날씨여~ 어서 시원했으면 좋겠다.
아들 놈 어릴 적에,
“엄마는 어떤 계절을 제일로 좋아하세요?” 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봄은 졸려서 싫고, 여름은 더워서 싫고, 가을은 쓸쓸해서 싫고, 겨울은
추워서 싫다.“ 하고 대답했더니,
“그런게 어딨어요?” 하고 따져 물었었는데...
계절조차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어미가
무슨 일 앞에서 긍적적인 사고보다 부정적인 것을
먼저 걱정하는 녀석을 나무라는 나...
그런 날이면 잠자리에 들어서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반성하곤 한다.
내 죄다.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았다...
알았으면 지금부터라도 잘해야 하는데...
열심히 살고 부지런히 살며 긍정적인 사고로 마음만은
여유로운 사람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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