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하면 나는 참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남편이 작년 한 해에 갈아치운 핸드폰 수만 해도 4개나 되기 때문이다. 남들은 홧김에 집어던져 깨지기도 하고 변기에 빠뜨려 못 쓰게 됐다고도 하는데 남편의 사유는 한결같다. 모두 술 먹고 집에 오는 길에 잃어버린 것이다.
보조금을 합쳐 꽤 비싼 핸드폰을 장만한 게 작년 초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단 보름 만에 퇴근길의 버스에서 잃어 버렸다. 화장실이 급해 도중에 내렸는데 그때 흘린 모양이라고 남편은 풀이 죽어 말했다. 행여 닳을까 흠집 날까 새 핸드폰을 애지중지 해왔던 남편이었다.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내겐 남편을 위로하거나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그게 얼마짜린데 하며 미친년처럼 날뛰기도 바빴으니까.
남편은 다음 날 8만 원짜리 중고 폰을 하나 사들고 왔는데, 그 표정이 마치 아이가 새 장난감을 잃어버리고 예전의 장난감을 마지못해 손에 쥔 것처럼 어두웠다. 안 된 마음이 들긴 했으나 벌주는 셈치고 내버려 두었다. 한데 그마저도 두 달을 못 넘겼다. 역시나 술 먹고 늦은 귀가를 하다가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변명을 믿고 싶지 않았다. 새 걸 갖고 싶어 일부러 버렸을 수도 있다는 의심만 점점 커져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떻게 똑같은 실수를 두 번 연달아 할 수 있는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내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이젠 정말 정신 바짝 차리겠다고, 술은 절대 안 마시겠다고, 갖은 아부를 다 떨었다. 그런 처지에 또 눈은 높아서, 무조건 제일 싼 걸로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해 놓고도 막상 매장에 가면 그 다짐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최신형 최고급 핸드폰 앞에 고정된 시선을 거둘 줄 몰랐다. 그러면 나는 또 마음이 약해져서, 그래 열심히 일해서 이 정도 사치도 못 누리면 무슨 재미가 살까 하며 남편의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거금을 주고 번쩍번쩍 빛나는 새 핸드폰을 샀다. 한데 그것마저 몇 개월 잘 넘기나 싶더니 5개월을 못 채우고 남편 손을 떠나 버렸다.
그날따라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비 맞은 생쥐 꼴을 하고 자정이 다 되어 나타난 남편은 다짜고짜 내 손을 끌며 버스정류장에 같이 나가 보자고 했다. 분명히 버스에서 내릴 때만 해도 있었던 핸드폰이 사라졌다는 거였다. 손바닥만한 정류장이야 이미 훑을 만큼 훑고 왔을 텐데도 다시 가서 찾아보자는 남편의 애원이 하도 절절하여 나도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비오는 밤에 우산 쓰고 버스정류장을 이 잡듯이 뒤져야 했다. 비는 더 세차게 쏟아지고 쌩쌩 달리는 차들은 마구 흙탕물을 튀기는데도 선뜻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우리 부부의 심정은 비참하기만 했다. 그날 밤은 남편도 나도 망연자실해서 아예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지 기가 막혔다. 아직 반도 갚지 못한 할부금 얘기 같은 건 지겨워서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루라도 핸드폰이 없으면 일을 못하는 남편은 다음 날 슬그머니 나가더니 번호이동하면 주는 공짜 폰을 얻어 왔다. 말이 공짜지 그것도 가입비며 장기고객할인혜택을 포기한 것 등을 감안하면 싼 것도 아니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그 공짜 폰으로 잘 버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핸드폰을 비롯한 몇몇 문제들은 이미 남편의 의지를 떠났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남편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만화 그리는 사람답게 차분하고 세심하기까지 했던 남편이 자기 몸 하나 추스르는 것조차 버겁게 된 것은 몇 해 전 공사장 일을 나가면서부터였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이 매일 이어졌다. 육체노동의 특성상 술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거기다 어떤 현장이든 집에서 한 시간 이상은 걸렸다. 그러니 하루 종일 녹초가 된 몸에 술까지 마신 상태로 버스를 타면 곯아떨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한 시간 내내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다는 건 남편에겐 고문일 테니까. 일단 잠이 들면 내가 아무리 전화를 걸어 깨우려 해도 벨소리를 듣지 못한다. 내릴 데를 지나치고 종점까지 가버려 택시비를 날린 것만도 부지기수다. 아이 급식비 내려고 갖고 있던 돈을 택시비로 허무하게 내놓아야 할 때 그 기분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오죽 피곤하면 저럴까. 얼마나 힘들면 매일 술을 마실까. 남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편이 매번 택시비를 날리고 핸드폰을 잃어버리는데 내가 악다구니를 안 쓸 수는 없다. 남편이 공사장에라도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가장의 몸인 것처럼 나 역시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주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헷갈릴 때가 많다. 남편한테 바락바락 악을 쓰면서도 이게 남편을 향한 것인지, 남편한테 아무런 도움도 못 되면서 소리만 질러대는 나를 향한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이놈의 지긋지긋한 가난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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