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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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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거(3)


BY 개망초꽃 2007-08-13

이 순간은 머리가 돌아버리지만 지나고 나면 미칠 정도는 아닐 거야. 불규칙한 맥박이 금방

이라도 심장을 졸아 붙게 만들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아문 상처일거야. 그 해 여름은 비로

시작해 비로 끝나고 있었다. 베란다에 앉아 하염없이 비를 바라보며 끝나지 않을 질퍽한 인

연이 끝날 때가 되었음을 여름은 빗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남편은 미쳐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자신에게 붙어 있던 술화신과 도박귀신은 결혼 후에 더

박차를 가해 미친 듯이 그것들과 놀아나고 있었다. 바람은 3년을 참으면 제자리로 돌아온

다지만 술과 도박은  힘이 떨어질 때쯤에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한다. 마누라를 팔아

서라도 손가락을 잘라내도 그 버릇은 못 고친다는 옛말을 남편은 심증을 넘어서서 확증으로

보여 주었다.


우리는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밤새도록 남편을 기다리며 밤을 몽땅 빨아들인 새벽녘에

나 남편은 밤문화에 절어 새까맣게 타서 들어왔다. 처음엔 소리도 지르고 나가 없어져 버리

지 뭐하려고 겨들어왔냐고 하기도 했고, 내가 잘못이 있으면 다 고칠 테니 일찍 좀 들어오

라기도 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러지 말라고 했고, 나중엔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똑

바르게 살아야하지 않겠냐고도 했다.

그렇게 십년이란 세월이 흘러가니 포기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밭고랑에 까만 비닐로

씌운 풀처럼 타들어가던 나를 살리고 싶었다. 살아남기 위해 남편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

다. 며칠씩 안 들어와도 전화하지 않았다. 며칠 만에 들어와도 왜 안 들어왔냐고 묻지도 안

았다. 

결혼 15년 만에 결과물은 모래 빠져 나간 빈손이었다. 남편이 건질 수 있었던 건 자신 이름

으로 남은 빚뿐. 카드빚은 우체통 입 밖으로 삐져나오고, 전화를 받을 수 없을 만큼 빚 독

촉에 귀가 먹을 지경이었다. 결국 남편은 가정도 나 몰라라 팽개치고, 자신의 밥그릇도 냅

따 차버리고, 구치소에 잡혀 들어갔고 구치소에서 나온 뒤 떠돌이 생활에 입학하고, 나는

아이 둘을 끼고 엄마네로 도망치듯 이혼을 하고 말았다. 쇠떡신 같이, 쇠심줄처럼 질기게

말을 안 듣던 남편이 이혼해 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내게 해준 것이 이혼

밖에 없다며 급박하게 이혼 수속을 하면서 집은 빚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아이 둘을 살리려

면 이혼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무덤덤했다. 모든 것이 현실임을 받아 들어야했다. 지금 이순간은 아파트 난간에 기어올라

가 떨어지는 상상을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래도 참을 만 했어, 하면서 옛말할 수 있을 거

야, 이런 긍정적인 것도 사실 없었다. 멍청했다. 멍청하게 그 해 여름을 베란다 난간에 고인

맑은 빗물을 보며 하루를 보내고, 베란다에 고인 먼지 섞인 빗물을 닦아내며 하루를 때우고

있었다. 막상 이혼을 하고 엄마네로 들어오니 멍해있던 정신이 돌아오고, 현실과 마주 앉게

되었다.


엄마네로 들어온지 일 년쯤 지난  비가 많이 내리던 여름, 엄마네 아파트 12층에서 오십대 여

자가 떨어 져 죽었다. 사연인즉 몇 년 전에 재혼을 했는데 그 남편이 바람이 나서 집에 들어

오지 않아  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 여자는 아래층에 살고 있었는데 새벽녘에 12층으로 올

라와서 복도 창문에 의자를 놓고 사뿐 떨어져 죽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목숨을 내 놓을 만큼 남자 그거 별거 아닌데, 세상에 반은 남잔데, 떠나

면 아무것도 아닌 게 남녀 간의 만남인데.

한동안은 승강기에 타려면 섬뜩했다. 까맣게 타들어간 얼굴로 그 여자는 이 승강기를 타고

12층을 눌렀겠지, 희망을 잃어서 목숨도 보이지 않았겠지. 배신감과 외로움에 살아갈 이유

가 없었겠지. 그런 놈에게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패대기치듯 공중으로 몸을 날려 개구락지

처럼 사지를 뻗게 만들었을까…….그 여자의 자살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한동안은 승강기

만 타면 가슴이 파르르 떨렸다.


혼자 살아내면서 나도 정신이 헤까닥 놓칠 뻔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새벽까

지 잡다한 글을 썼다.

혼자서 흥얼흥얼 시를 읊었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등을

돌리 때나 믿었던 사람이 떠날 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라고 흥얼거렸다.

노래를 불러제꼈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하던 일이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을

때, 이래도 한세상이고 저래도 한세상이래, 모든 것이 부질없음이야, 그치? 망초야?

사춘기였던 딸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우린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데? 반항할 때 ‘ 받아 들

여야지 어쩌겠니?’ 했다. 그래도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룰 땐 팔자소관이려니, 으이그 내 팔자

야, 하며 끄응 돌아누웠다.


휴가 오일 째, 호수공원엔 꽃분홍색 부처꽃이 뭍과 물이 만나는 곳에 피어있다. 부들은 물가

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고, 연꽃은 연꽃대로 물 가운데를 차지하고, 땅에는 군데군데 벌개

미취가 신비한 보라색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비온 뒤의 호수공원은 환장하게 아름답다. 모

든 자연은 자기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 산책로엔 백일홍 나무 꽃이 한창이었다.

잔디엔 토끼풀꽃이 잡초로 뽑히지 않고 무사히 커서 꽃을 피워냈고, 산책로를 지나

정자가 있는 다리를 건너고 보니 반뜻하게 만든 화단에 연분홍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꽃범의

꼬리가 막 피어나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감상을 했다.

자연에겐 각자 위치가 있다. 그늘에서 자라는 녀석, 반그늘에서 자라는 녀석, 양지를 좋아하

는 녀석, 물 속을 좋아하는 녀석. 물 위를 좋아하는 녀석, 새순을 먹는 놈, 뿌리를 파먹는

놈, 꽃을 먹는 놈, 꿀을 먹는 놈, 열매를 먹는 놈. 자연은 각자의 위치에서 계절 따라 무럭

무럭 자란다.


사랑스러워서 사는 사람들, 한쪽만 사랑하는 사람들, 양쪽 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그냥 사는

사람들, 살다보니 편해서 사는 사람들, 의무와 책임감에 사는 사람들, 싫어도 굴레를 벗어나

지 못해서 사는 사람들, 끈에 묶여서 사는 사람들, 사별한 사람들, 도망간 사람들, 이혼한

사람들.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그럭저럭 무럭무럭 살아간다. 서로 너 못났다 나 잘났다

하지 말자. 자연처럼 자신이 주어진 삶에서 조용히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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