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쯤부터 아영이가 머리를 심상치 않게 벅벅
긁어댔다.
요즘처럼 더워서 땀을 많이 흘릴 계절에는 하루에 한번씩
머리를 감겨줘야 하는데, 몸이 피곤하다보니 꾀가 늘어
이틀에 한번 감긴 것이 마음에 걸렸다.
(초등 3년생이면 혼자들 머리를 감기도 한다는데
워낙 머리에 숱 많고 길이가 긴 딸을 보는 엄마의 기우(?)가
아직은 내손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편하다.)
미안한 마음에 연 이틀을 날마다 감겼는데... 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면서까지 여전이
벅벅 긁어 대는 것이 아닌가...
비듬이라도 생겼나?
아님 벌써 제 엄마 닮아서 새치라도 생기는 걸까?
늦은 밤, 자고 있는 아영이의 머릿속을 확인하기 위해서
불을 켰다.
그리곤 무거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
이내 아영이의 아주 깨~애~끗한 두피가 보였다
얼마나 심하게 긁었는지 간간히 핑크빛을
띠는 곳도 있었지만 아주 멀쩡한 머리였다.
‘땀을 많이 흘리더니...머리에 땀띠가 났나보네...’
나는 깨끗한 두피를 보고 안심했지만 아영이는 아침저녁으로
머리가 가렵다며 감겨달라고 보챘다.
“아무리 가려워도 그렇지 어떻게 머리를 하루에 두 번이나
감어? 그럼 오히려 피부가 약해지는 거야.“
정말 그렇게만 생각했다.
땀띠가 났어도 3~4일, 하루에 한번씩 깨끗이 감기고 말리면
되겠지...하고.
그런데 상태의 심각성이 느껴질 정도로 긁적임이 보통을 넘었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단정하게 묶어준 아영이의 머리는
퇴근할 쯤이면 미친X, 널뛰다가 자빠진 모습이
되어 있었다.
뭔 일인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머리숱이 많아서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러나,,,
고심 끝에 주말에 단골미용실로 아영이를 데리고 갔다.
아이의 상태를 말하니 머리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이내 한다는 말이,
“머리는 깨끗한데 이상하다...그런데...요즘 ‘머릿니’가 돈다고
하던데 얘도 그것 옮긴 것 아닐까? 혹시 모르니까 약사다가
뿌려 줘봐.“ 란다.
!!!...머릿니...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78년도에 운동장에서
아침 조회를 설 때, 지루하게 긴 연설을 해대는 교장선생님의
담화에 입이 찢어져라 하품 찍찍~ 해대며
듣고 있을 때, 앞에 서있는 ‘영자’의 머리에서
벌레 몇 마리가 머릿결을 타고 스물스물 기어 내려오더니
등짝을 놀이터 삶아 타고 놀더니
다시 보금자리처럼 머리카락 속으로 사뿐히 스며들어가는 거였다.
그 곤충을 보던 날 저녁, 바다 일을 마치고 들어오신
부모님께 아침 조회 때 목격했던 희한한(?) 그 일을 낱낱이 고하니
내 엄마 깜짝 놀라며 하신다는 말씀이,
“뭐? 영자 그 깔끔한 것이 머리에 ‘이’가 있다는 말이야?
아니...너도 요즘 머리 심하게 긁던데, 혹시 옮긴 것
아냐?“하신다. 그리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머리 속을 뒤적거리는
것이 아닌가. 엄마의 손가락이 머리카락에 닿는가 싶더니
화들짝 놀라신다.
“미쳤어, 미쳤어. 이를 어째... 있네! 있어!!!”
너무나 곱게만(?) 컸던 난... 그 당시 ‘이’가 뭔지를 몰랐다.
놀란 엄마가 밖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들어오신다.
엄마의 손에는 ‘노 할머니’께서 살아생전에 비녀를 꼽을 때
쓰시던 참빗이 들려있었다.
할머니를 흉내 내어 써봤던 그것은 머리숱을 통과하지
못했었는데... 뜬금없이 참빗은 왜 갖고 들어오신 걸까?
나도 이제 비녀를 꽂고 다녀야 하나?
머리가 유난히도 가려운 밥이었다.
엄마는 벽에 걸려있던 달력을 내리더니 내게 엎드리라는 거다.
그리고 그 빡빡한 참빗으로 사정없이 머리를 쓸어내렸다.
우드드득...투툭....
머리에서 모래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새까마니 통통한 곤충이 깨알처럼 쏟아졌다.
그날 이후, 나는 며칠이고 엄마에게 빡빡한 참빗에 옵션으로
실까지 낑긴(?) 그것으로 아침, 저녁으로 고문을 당했던...
슬프고도 고달팠던(?) 옛 일이 떠올랐다.
그 옛날 봤던 ‘머릿니’가
독해진 섬유제와 비누로 사라진지 오랜 줄 아는데...
멸종한줄 알았구만...
그 희귀종(?)이 내 딸 머리에 있단 말이야? 설마...
내가 그렇게 봤는데...
머리숱을 잔뜩 치고 난 뒤, 여전히 극적이는 아영이의
머리 속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았다.
몇 분을 그러고 있었을까...
갈색의 뭔가가 살짝 보이더니,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놀란 심장을 다독거리며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뒤지니
갈색의 ‘머릿니’가 한 마리 보였다.
피부가 약해서 보통의 화장품만 발라도 붉게 일어나는
아영이에게 머릿니 약을 사다가 뿌릴 수는 없었다.
뭔 정신으로 시장으로 달려가서 참빗을 구했나 모른다.
아영이의 머리에서 ‘이’가 발견 된 것보다도 참빗을
쉽게 구할 수 있던 것에 더 놀랐지만 시급을
다투듯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벽에 걸려있던 달력을 끌어내려 참빗질을 했다.
5마리의 크고 작은 ‘이’가 떨어졌다.
얼마나 가려웠을까?
무심한 엄마가 된 것 같아 미안했다.
다행히도 옮긴지 얼마 되지 않는지 ‘서캐’가 얼마 없었다.
아영이도 내가 어릴 때 놀랐던 것처럼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곤충(?)을 보고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이’를 보고 한다는 말이,
“엄마, 우리 집에는 왜 이렇게 벌레가 많아요? 모기도 있고 나방(쌀에서 나온 작은 벌레)도 있고 이제 이도 있어요?”
“!!! 야, 너 말은 똑바로 해. 밖에 나가서 그렇게 말하면
엄마 창피하다. ‘이’는 네가 옮겨 온 거구, 나방은 어느 집이나 오래 된
곡식에서 나올 수 있는 거구, 모기도 집집마다 몇 마리는 있어. 너희가
문을 빨리 닫았으면 모기는 없었을 걸? 그리고 우리 집에 아직 파리도 없고
바퀴벌레도 없잖아. 지지배가 누가 들으면 세상의 온갖 해충이
번식하고 살고 있는 줄 알겠네.“
그때의 충격으로 나는 아침저녁으로 아영이의 머리를 훑어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고생대시대부터 있었다던 바퀴벌레...
혹시 그 시대부터 ‘이’ 또한 존재한 것은 아닐까?
아영이 덕분에 그날 나도 오랜만에 참빗질을 했다.
내가 섭섭해 할까봐선지...1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아... 고마운 딸... 엄마를 부지런하게 만들어 주는 딸...
무지무지하게 사랑해야지.
그동안 가렵던 내 머리가 이제는 새치 때문만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말하기도 창피하고, 에휴...
걱정하는 내 머리를 아들이 들춰보더니,
“엄마, ‘이’ 알이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이’가
생긴 것이 꼭 오징어 모양 같아요. 거미 같기도 하고...“
관찰력 확실한 아들이 어쩌면 ‘논문’을 써 낼지도 모르겠다.
<머릿니의 변천사, 희한한 생김새의 원인분석....> 하고...
에휴...별의 별일이 자꾸만 생겨나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