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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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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대한 기억


BY 혜진엄마 2007-05-04

봄이 흐드러지면
시골 동네 아낙들은  장 담기를 한다

 

원래 정월 장이니
이월 장이니 하지만

 

그건 밥술이나 뜨는,  
지난 가을  고추니 소금이니 엿기름이니 마련해둔 집 얘기고

 

없는 집들은

봄이 늦도록


어디서 돈이 융통되어야  봄 고추를 사고 소금을 들이고
겨우내 아랫목에 묻어둔 메주를 꺼내 씻기 시작한다 

 

( 배고픈 아이들이 겨우내 콩 빼먹느라 곰보가 된 메주를 )

 

 

열 세살 어린 주부인 나는 이 집 저 집  장 담그는걸  구경한다


엿 질금 물에

밀이나 보리 가루를 풀어 불을 때어 삭혀가며 푹 달이다
함지에 퍼담아 식힐 때

 

구경온 아낙들에게 한 종바리씩 맛 보라  준다  
그 맛이 참  달고 맛나다

 

홀아비 집구석에 장이란   귀하고 귀한 존재


옆집 앞집 가보면  된장 끓이는 냄새
조밥일망정 고추장에 발갛게 비벼서 먹는  모습들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 없고


장 한술도 얻어다 먹어야 하는  우리 집 가난이 너무 싫었다

 

하루는  친한 이웃 아주머니께 물었다


\"병식엄마요   장은 꼭 메주가  들어가야 하나요?
병식엄마;  \"그렇지 않여 ~ 없으면 밀가루하고 고춧가루만 있어도 되어야

 

난 당장  아버지한테  고춧가루를 사 달랬다


밀가루는  사시사철  아버지 일하는 곳에서 월급대신 나오니 되었고,

 

밀가루 반 포대 풀어 넣고

병식이엄마한테 얻어온 질금 가루 섞어서
뜨거운 솥 옆에 불 때느라 얼굴이 다 익어가도록 달이고 달였다 

 

밀가루 달인 것에다  고춧가루  소금만 넣고
고추장을  한 단지 해 넣던 날

 

세상에 부자가 따로 없고 행복이 따로 없었다


하루하루 더워지는 날씨에  밀가루 고추장이  부글부글 끓어 넘쳐도
정지간에만 가면  행복했다

 

보리밥 푹 뜸들여 

고추장 한 대접만 달랑 상에 올려 들어가도
워낙 장에 굶주렸던 식구들이라  군말 없이 비벼먹고  떠서 먹고 했다


고추장 찌개, 고추장 나물, 무침 고추장 도시락 반찬.. 뭐든   고추장이다   

   

삼척 사는 둘째 동생과 나는 지금도  고추장 얘기 해 놓고 웃는다


\"언니 정지 흙바닥에 앉아서  쌀남박에 보리밥 퍼 넣고 고추장에 비비던 생각나지 ?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몰라!


장에

포 한이 지고  한이 맺힌 난  

해마다 조금씩 장을 담근다


딸도 출가했고 아들은  거의 회사에서 밥을 먹으니
장도 밥도 먹을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7년 된 보리고추장이  베란다 화분을 이고
그냥 말라가고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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