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길 가에서 들판에서 산모퉁이에도 봄꽃이 터지고 있습니다.
산수유 꽃이 빛을 잃어갈 무렵에 목련 입이 헤벌럭 벌어지더니
벚꽃은 뻥튀기 기계에서 막 튀어나온 강냉이를 가지마다 올려놓았습니다.
3개월간 일 분기 공공근로가 끝나면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버렸습니다.
사과나무 도서관에서는 나를 다시 보내 달라고 시청 공공근로 담당자에게 부탁을 했지만
3개월에 한번씩 뺑뺑이 돌리듯이 다른 일터로 보내지는 게 원칙이라 하면서
아쉽고 속상하지만 다른 일터로 가야만 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복지회관이라서 새로운 업무를 배우는 것도 좋겠다싶어
사과나무 도서관과의 인연은 3개월 인가보다 하고 복지관으로 첫 출근을 했더랬어요.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은 무료급식 식당 보조였답니다.
제가 몇 개월 동안 머리 터지게 컴퓨터 자격증을 딴 이유는 사무 일이 목적이었거든요.
나이는 좀 있지만 아직은 사무 일을 할 능력이 있고,
성실하게 일하면 알아주리라 믿었거든요.
그래서 도서관에 다니며 사무일을 배워 경험을 쌓아 정식으로 직장을 구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식당 보조라니요…….
시청 공공근로 담당하시는 분은 자격증이나 그 사람의 능력은 전혀 보지 않고
나이만 보고 식당으로 밀어 넣었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습니다.
저는 사무보조인줄 알고 왔는데요…….뭔가 착오가 있었나봐요…….
그러나 복지관에서는 사무 보조는 필요 없고, 식당일 하실 분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일단은 식당으로 내려가 일을 해야 했어요.
안 그러면 무단결근이 되어서 앞으로 공공근로 하는 일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식당엔 주방장 아줌마와 그 밑에서 일하시는 할머니 두 분이 계셨어요.
주방 아줌마에게 뭘 해야 하나요? 하고 물었더니
식당에서 뭘 하긴 뭘 해요!! 밥하는 거지…….
누가 밥하는 줄 모른답니까??? 그래도 밥 하는 순서가 있는 게 아닙니까???
내 부엌도 아니고, 식당 일 해 본 적은 없고…….속으로만 투덜거렸지요.
무 채 쓸어요, 하네요.
채 칼을 가져다가 양은그릇에 놓고 무를 반으로 갈라 미는데
이거원…….무가 서걱서걱 밀리지는 않고 헛 밀리는 거예요.
그런데 마침 파를 다져야 한다고 하기에 제가 한다고 했어요.
칼로 파 써는 건 자신 있거든요.
이백인분 점심밥과 도시락을 11시까지 만들어야 한다는데
주방은 엉덩이가 부딪칠 정도로 좁고 불편했습니다.
주방 아줌마는 늦었다고 성질을 내시고,
할머니 한 분은 구부러진 허리로 상차리는 일을 달팽이처럼 느리고 뚱하게 하시고
다른 할머니 한 분은 반벙어리여서 내게 뭘 하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고 눈치로 알아서 해야만 했어요.
파를 써는데 눈물이 고였어요. 매워서 그런 건지, 서러워서 그런 건지…….
한시 반까지 물 먹을 시간도 전화 받을 시간도 없었어요.
움직일 수 없는 노인 분들에겐 도시락을 싸서 배달을 하고,
식당에 올 수 있는 분들은 세 차례에 나눠 밥을 드셨어요.
11시부터 배식인데 노인 분들이 다 드시면 복지관 직원들이 와서 먹고
우린 2시쯤 되어서 점심을 먹었어요.
점심을 먹고 나면 식당일은 한가해 진다고 하네요.
이제 한숨을 돌리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불러서 갔더니 사무 일을 하라고 하네요.
쉴 시간도 주지 않고 퇴근시간까지 일을 했어요.
공공근로란? 살림이 어려운 서민들을 위해 나라에서 만들어준 일이에요.
컴퓨터를 할 줄 아는 사람들에겐 사무 보조 일을 맞기고,
식당이나 청소는 그 일에 맞는 사람을 넣어주고,
화초 심기나 가지치기나 풀 뽑기를 하는 일은 또 그 사람에게 맞는 일이 주어지거든요.
월급은 적지만 토, 일요일은 쉬고
나라에서 월급을 주기 때문에 공공근로를 쓰는 곳에서는 혹되게 일을 시키지 않거든요.
그러나 이곳은 달랐어요.
식당일을 하게 되면 식당일 끝나면 쉬게 해 주거나
일찍 퇴근을 시켜 준다고 하는데……. 여긴 혹독하게 일을 시키네요.
차라니 화초 심는 일이나 풀뽑는 일을 하는게 내겐 맞는데...
차라리 청소도 하고 커피도 타고 사무일도 하는 일반 직장을 알아보는 게 월급이 많은데...
오십이 훨씬 넘어서도 돈을 벌어야한다면 청소 일 할 각오도 되어있지만...
혹시나 싶어 사과나무 도서관에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마침 사과나무 도서관에 오기로 한 공공근로 하시는 분이
책 나르고 관리하는 일이 힘들어서 출근을 못한다고 했답니다.
식당 보조보다는 열배는 힘들지 않는데 말입니다.
사과나무 도서관 직원분이 빨리 시청에 가서
다시 여기로 보내달라고 부탁해 보라고 했습니다.
자기도 나를 보내 달라고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하면서…….
나는 마음과 몸이 지쳐 내일 시청에 가보든지 한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답니다.
잠은 오지 않고 그동안 원망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원망스럽더군요.
내 나이 정도면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할 나이인데
나는 이제서 다시 일을 해야 하고 일자리는 나이 때문에 갈 곳이 없고
결국은 오늘 식당에서 무료 급식을 하시는 노인 분들처럼
나도 생활보조를 받아야 할 형편이 되지 않겠나 하는…….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다음날 시청으로 갔습니다.
우는 아이 젖 준다고 가만히 있으면 누가 나에게 월급을 주고 일자리를 주겠어요.
다행히 도서관 자리는 비어 있고 나는 식당보조는 못하겠다고 하니
도서관으로 출근을 하게 해 줬습니다.
샛노란 산수유 꽃이 지면 조랑조랑 열매를 매달고 있을 겁니다.
목련꽃이 투둑투둑 떨어지면 새 잎이 왕성하게 피어날 겁니다.
벚꽃이 하롱하롱 지면 계절은 다시 돌고 돌아갈 겁니다.
인생살이가 삼대 칠이라고 하네요.
기쁨은 삼이고 괴로움은 칠이라는 어느 님의 글을 읽으며
그렇지, 그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가진 고민이 제일 크다고 하지요.
나도 잠시 그런 생각을 가진 채 일주일이 힘겨웠습니다.
두 어깨에 걸터앉은 삶이 무거워 던져버리고 싶었어요.
아이들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내겐 무거운 짐 덩어리 같았어요.
잃지 않으려 애쓴 꿈도 너무 막연했어요.
얘들 아빠한테 전화가 왔기에
아이들 이만큼 키웠으니까 이제는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이런 소리를 하니까 얘들 아빠가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고맙다고 하면서
밥 해 줄 사람이 없어서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나보고 더 키우라고 하네요.
그럼 아이 둘 생활비를 달라고 안 그러면 당장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홀로 잘 버티던 내가 이런 말을 하니 겁이 나나봅니다.
최대한 노력해서 생활비를 준다고 하네요.
우는 아이 젖 준다고 나도 이젠 울어야겠어요.
안 울었더니 힘들지 않은 줄 알고
나보고 얘들 키워서 외롭지 않고 좋겠다고 말하던 사람이었거든요.
다시 사과나무 도서관에서 글을 씁니다.
내가 없어 축 늘어진 화초에 물을 주었고,
쌓인 먼지를 털어냈습니다.
엉켜있던 책도 차곡차곡 정리를 했고요.
직원들이 내가 와서 너무 좋다고 더 친절하게 대해 주네요.
내 가진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꽃길을 달려 출근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