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 가족 여행기
글/김덕길
가족이래야 여느 가정처럼 우리도 단출하기 그지없다. 나와 아내 그리고 그 사이에 증명이라도 하듯 태어난 우리 아들, 우리는 돼지해를 기념하기라도 하듯 돼지저금통에 있는 동전이란 동전은 모조리 모았다. 가게에 한 개, 내 차에 한 개, 그리고 아들 방에 한 개, 침실에 한 개, 골방에 숨겨둔 또 하나의 돼지까지 꺼내 거실바닥에 널어놓았다.
32평 거실을 도배하다시피 한 동전들이 은빛 유혹의 설렘을 흡입하고 눈부시게 조명아래에서 자신의 빛을 토해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띠는 동전은 단연 학이었다. 뻥튀기를 팔고 받은 동전들은 모조리 모았으니 모르긴 해도 거의 일 년 동안 모은 동전이 아닐까싶다. 이 자리를 빌려 은행관계자님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동전을 해마다 더 찍었을 테니 그 수고로움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돈은 자그마치 38만원이나 되었다. 미리부터 계획을 세운 아내의 말이 이어졌다.
\"자기야! 우리 이 돈 가지고 우리 가족 여행가는 거야. 나 있지 사량도 거기 가보고 싶거든?\"
몇 년 전 삼박사일로 다녀온 남해일주가 오버랩 되어 스쳐간다. 단출한 우리 가족들이 처음으로 찾은 남해일주가 참으로 기억에 많이 남았었기에 나는 싫다는 말없이 바로 오케이 사인을 하였다.
새해 1월 1일에 일출을 남해에서 보자고 계획을 세웠는데 뜻하지 않게 내가 1월1일부터 알뜰장 장사를 해야 하는 관계로 우리는 12월 30일 아침 일찍 출발을 했다.
정성들여 싸온 찰밥에 컵라면까지 용인에서 통영까지 가는 그 긴 여정의 길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통영 가오치항에 도착한 우리들은 차를 세우고 배를 탔다. 40여분 만에 사량도에 도착하니 시간은 정오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처음 계획은 사량도의 모든 산을 종주하리라는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녹록치 않아 세 시간짜리로 긴급 수정하고 우리는 신나게 산길을 올랐다.
산은 380여 미터로 높지 않았으나 산과 산 사이에는 맥이 끊기다시피 한 언덕과 낭떠러지가 많아서 그 공간들은 로프나 사다리로 연결되어있었다. 안내판에 \"임산부나 노약자들은 절대 산행을 금지합니다.\"란 표
지판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막상 산행을 시작하다보니 정말 난코스 중에서 이런 난코스는 없었다.
산을 조금 오르다보면 어느새 길은 끊어지고 로프만 달랑 매달려있었다. 6학년아들은 줄 타는 것이 타잔놀이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었는지 따라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환호성이고, 아내는 힘들어 죽겠다면서 아우성이고 나는 중간에서 환호성과 아우성사이를 번갈아가며 유격유격을 외치고 있었다.
땀을 흠뻑 흘릴 즈음 되돌아보았을 때 우리들은 그야말로 환호성을 일시에 질렀다.
\"우와! 이 야호! 저 바다 좀 봐!\"
사량도의 상도와 하도를 아우르며 s자 라인을 그리며 흐르는 바닷물은 그야말로 코발트색 그 자체였다.
아들이 묻는다.
\"아빠! 바닷물이 왜 파란 줄 아세요?\"
나는 잠시 동안 당황하다가 말을 이었다.
\"응, 그러니까 하늘이 파래서 바다가 파란 것이 아닐까?\"
\"아이참 아빠는 저번에 말씀 드렸잖아요. 태양이 내려쬐는 빛 중에서 바다는 파란색만 반사시키고 나머지는 흡수한다고요.\"
\"참, 그랬지 에고 까먹었다. 요 녀석아! 하하\"
요즘 초등학생들이 아빠엄마보다 더 똑똑한 구석이 많은 것을 나는 가끔 느낀다.
\"그럼 아빠가 한 가지 묻자! 너 사량도가 왜 사량도인줄 아니?\"
\"사랑해서 사량도 아녜요?\"
\"아냐, 사량도의 ‘사’자는 ‘뱀사’자 이거든 섬이 뱀 모양처럼 길게 늘어져있다고 해서 ‘사량도’ 라고 하는 거야!\"
\"어라? 아빠는 어떻게 그걸 다 아세요?\"
\"하하하 아빠는 어디든 여행을 갈 땐 사전조사를 철저하게 한단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거든다.
\"호호 맞아, 그래서 나는 아빠만 따라가면 아무것도 걱정 안하잖우. 네 아빠는 움직이는 내비게이션에다가 지리박사잖니!\"
\"엄마 그건 저도 인정해요 인정!\"
새로 장만한 디지털 카메라에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쉴 새 없이 담았다. 때론 사다리를 올라야했고 때론 로프에 매달려 수십 미터를 올라야했다. 섬 하나로 만족을 하지 못한 우리는 밤에 찜질방에서 자고 이튿날 한산도를 들렸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담배 심부름을 시키면 나는 꼭 은하수나 아니면 한산도를 사다드리곤 했다. 은하수는 미지의 세계였고, 담뱃갑에 그려진 한산도 거북선은 애국심의 발로였으리라.
내 상상의 한산도는 그야말로 고즈넉했다. 송림으로 우거진 숲은 경건함의 극치였고 충무공의 영정이 모셔져있는 대승당의 추도행렬은 애국심의 절정이었다. 바다를 가로질러 설치되어있는 궁터의 과녁을 보며 이순신보다 주몽을 더 연상했던 것은 우리뿐이었을까?
아름다운 섬 산행은 우리가족의 끈을 한 단계 더욱 꼭 조여 주는 역할을 해 주었다. 사랑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이렇게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공통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데서 시작되는 것은 또 아닐까?
이번의 이 여행이 일 년 동안 우리가족들을 무사하게 지켜줄 추억의 방패막이로서 충분한 디딤돌이 되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