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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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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훨훨 날아가듯이


BY 가을단풍 2007-03-17

알기 쉬운 말로 친정 엄마가 병환이 나셨다.

가끔씩 TV 에서 보면 외국 여행에 가서 죽었다는 어느 노인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런데 그 일이 우리 집에서 일어날 뻔 하였다.

보모님을 모시고 형제들이 여행을 갔다가 엄마가 병이 나신것이다.

여행내내 병원신세로 지게 되었음에

엄마의 병세가 너무나 심각하여 4 박 5 일 내내 호텔에 묶고 병원다니고

그야말로 걸어서 여행을 떠났다가 반은 죽어서 돌아오셨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태울수 없음에 다리 아파 신음하는 노인으로 가장하여 가까스로

돌아오셨다.

그야말로 멀리 외국땅에서 돌아가실뻔 했던 우리엄마.

여행에서 돌아온 가족들마저 초 죽음이 되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대학병원 응급실로 직행

병명은 급성 신부전증이로 판명이 났으며 그게 당뇨와 겹쳐서 더욱 심각해졌다.

어쩌면 엄마를 잃어버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신이 펄쩍 났다.

그 순간 모녀 지간의 벽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사실 우리는 엄마의 지독한 아들 선호사상 때문에 너무큰 벽이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를 모시고 친정 형제들이 여행을 가는데

그것도 오빠가 여행경비까지 다 대서 데리고 감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고2 짜리 딸 핑개를대고 빠져 버린것이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큰 병이 나고보니 눈에 보이는게 없었다.

사실 나는 아버지 돌아가시면 친정하고는 끝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었다.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별일도 다 있겠지 하겠지만 우리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달근 달근 딸들을 살피는데 울엄마는 항상 공주마마의 권세를 누려왔다.

팔자좋은 엄마의 아들 선호 사상이 너무나 싫었기때문에 내 평생 엄마때문에 마음을

않는 일은  없을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의 병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지는 벽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며칠전까지 예쁜 모습으로 여행하기위해 점빼고 검버섯 빼고

손톱에 메니큐어 곱게 칠하던 엄마가 그렇게 풀죽같이 늘어져있을수가

그렇게 곱게 곱게 치장하며 위풍당둥 권세를 누려오던 엄마는 간곳이 없고

가련한 노인 하나가 숨을 할딱 할딱 쉬고 있을뿐이었다.

병에는 장사가 없다고 아무리 그리고 보듬고 치장해도 소용이 없었다.

마음이 아프다못해 짤짤짤 .....그야말로 표현할 언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그날부터 엄마의 병원 치닥거리가 시작되었다.

딸이 넷이나 되니 너무나 좋았다.

어느날 엄마께서 하신말씀

\"입이써서 넘어가질 않내 뼈국은 넘어갈내나.\"

그날밤 딸셋이가 뼈를 한꺼번에 고아왔다.

병원 냉장실에 보관이 버거워 냉동실까지 차지했다.

한놈은 빨레해대고 한놈은 반찬해대고 누가무어라 지시하기도 전에 척척척 관리를

해나갔다.

 

지금은 엄마의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 퇴원을해서 집으로 오셨다.

그런데 완쾌되어 퇴원시킨것이 아니기에 대학병원에서 너무 피를 많이 뽑아가는 바람에

힘들어하셔서 응급처치만하고 집으로 오셨다.

집에 계신 관계로 우리들은 더 바빠졌지만 오늘 내일 병세를 보다가 안 좋으면 가까운 개인 병원으로 모실 생각이다.

친정집에 돈을 한다발 갔다드렸다.

그것도 남편과 상의한마디 없이.

\"아버지 이돈 당당히 쓰세요.\"하고 말씀드렸다.

다음날 아침 남편에게 고백을 했다.

나 당신몰래 친정집에 돈을 한다발 갔다드렸노라고

그런데 우리 남편이 그걸 믿지를 않았다.

\"설마 자기가 잘도 갔다줬겠다......\"

평소에 내가 얼마나 친정집에 인색했으면 그럴까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당당하게 말했다.

자기 자식이 아프면 아까운줄 모르고 돈을 가레로 퍼붜넣으면서 어째 그렇게 부모한태는

인색한지 그래서 그렇게 했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한마디 덧붙쳤다.

\"우리도 부부싸움 해야 하는거 아냐. 남들은 친정집에 돈 빼돌리면 부부싸움 하더라...\"

그런데 남편은 아무말이 없었다.

사실 우리 남편이 요즘에 하는일에 장애가 생겨 골치아픈일이 있다.

그런 남편에게 친정집 부모한테 드릴 돈을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내 엄마 병원에서 사오는데 돈 걱정이라도 안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몰래 꿍쳐놨던 그 아까운 돈을 냉큼 뽑아드린 것이다.

흐믓했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내 부모가 얼마나 살지 알수 없는 일이지만 최선을 다하리라 .

한번 가시면 다시 돌아올수 없는길.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부모가 가실 길이 가까이 다가오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떠랴.

며느리손에 내 부모를 맡기고 싶질 않다.

절대 며느리에게 보내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해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올케가 나쁜 사람같내.

그러나 우리 올케도 책임을 다하는 완벽한 며느리임에 손색이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오빠네 내외는 사는 지역이 너무 멀리 사는 까닭도있고

그 복잡한 일을 죄없는 며느리에게 맡기고 싶질 않았다.

다만 오빠 내외는 말만 예쁘게 효성스럽게 해주면 바랄게 없다.

사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어머니 병간호를 자주했었다.

중환자실에서 장례준비를 하라는 말을 몇번이나 들었었다.

그러나 그때 내 마음이 그렇게 알짤짤하지 않았었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핏줄에는 조건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 엄마도 내가 아팠을때 그렇게 속이 아리고 쓰렸겠지.

아무튼 내 엄마 얼마나 사실는지 몰라도  아버지랑 비슷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내 부모가 홀로되어 쓸쓸히 사시게 된다는 생각을하면 용납할수가 없었다.

보모가 돌아가실때까지 최선을다해 모시다가 세상을 떠나실때 나비가 훨훨날아 갈곳을 찾아가듯이 그렇게 날려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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