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
나는 가지도 달랑 둘이건만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는 것 같다.
아빈이가 어렵게 구입한 교복을 입고 등하교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든든하고 뿌듯한 마음이 든지가 얼마나 됐다고...
나의 학창시절 중 제일 알차게 지냈다고 각인 된 중학시절을 아들 또한 그러하기를 바랬다.
녀석은 아직도 초등시절을 그리워하며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듯, 나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곤 한다.
중학교 입학하고 3일째 되던 날,
학원갈 빠듯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머리가 아프다며 자리에 앉아 버리는 거다.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없었다.
시무룩한 녀석...
그놈을 벌써 난 14년째 키우고 있는 엄마다.
심상찮은 녀석의 마음을 느꼈다. 해서,
“솔직히 말해봐. 감기 기운인 것 같니, 아니면 스트레스 때문에 네 머리가 아픈 것 같니?” 라고 물었다.
“...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아요...”
뜸들이며 꺼낸 녀석의 말... 그리고 눈가에 맺히는 물기...녀석의 눈에 눈물 고이는 것이 보이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학원을 하루 쉬고 싶다는 말에 나는 그러라고 했다.
학원비와 수업에 목숨 건 엄마였지만...
1시간 이상을 녀석과 대화를 한 것 같다.
아빈이의 이마에는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태어날 때부터 0.3cm쯤 되는 점이 있었다. 튀어 나오지도 않고 색도 검게 짙지 않은 점이...
초등학교 입학해서부터 녀석은 ‘점탱이’ 혹은 ‘부처님’ 이란 별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남자로 태어나 별명 하나에 눈물짓는 녀석에게 나는 훈계와 함께 격려를 하곤 했다.
관상학적으로는 복점이라는데... 빼주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1년 전 겨울 방학 때 녀석을 데리고 피부과에 간 적이 있었다. 점을 빼줄 심산으로...
하지만 의사의 말이,
“이 점, 태어날 때부터 있었죠? 이런 점은 빼기 어렵습니다. 계속 나오거든요. 성형수술을 해줘야 합니다.”라나...
성형수술이라는 말에 얼른 밖으로 나온 나... 그리고 복점을 빼지 않겠다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는 아빈이...
그놈의 돈이 뭐기에 우리를 이렇게 힘겹게 하는 것인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마음속으로는 훗날 녀석의 이마에 있는 점을 깨끗이 없애주리라 다짐했지만 그 훗날이 언제가 될지 기약도 없이...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녀석이 학교에서 오자마자 머리 아픈 이유가 이마에 있는 점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또 속으로 울어야만 했다.
급식을 먹는 식당, 그 많은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 밥을 먹고 있는 녀석의 등을 누군가 톡톡 쳐서 돌아보니 선배로 보이는 몇몇 여학생이 녀석을 보고 노골적으로 키득키득 웃어 댔단다. 그것도 그 자리서만 여러 번.
선배들의 시선이 싫어서 친구들과 자리를 옮겨 구석에서 식사를 했다니... 듣는 것만으로도 녀석의 비참함이 느껴졌지만...나는 도리어 혼을 냈다.
그깟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머리가 아플 정도로 나약해서 어찌 세상을 살려느냐고...
그 점으로 놀림 받아서 뺐다면 다음에는 네게 시비 걸 일이 없겠느냐고...
맞을 때 맞더라도 선배에게 왜 말 한마디 못하고 와서 스트레스를 만드느냐고...
“선배님, 저도 제 점이 싫지만 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참고 사는데, 남들이 이 점을 보고 웃으면 제가 얼마나 비참할 지, 선배님이 제 입장이라면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 보셨어요?” 라고 당당하게 말해야하지 않았냐고...
그런 나의 말을 듣고 아빈이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그리곤 그러겠단다.
어쨌든 그 일은 그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기나 했더니...
어제는 녀석이 밝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회장 선거에 나갔는데 4표를 받았다나...
회장이 됐어도 우리 형편에 달갑지 않았겠지만, 녀석이 생각했던 것 보다 배짱 있이 학교를 다니는 것 같아서 마음을 놓으려는 순간,
“엄마, 저 오늘 교실에서 친구랑 장난을 치다가 사고를 좀 냈어요.” 한다.
내 심장은 고무줄로 되어 있나보다.
‘철렁’하고 떨어져도 다시 제자리에 놓였다가 매번 겁나는 일 앞에 철렁철렁 내려앉으니 말이다.
“무슨 사고...?”
“친구랑 지우개 던지며 주고받는 놀이를 했는데...친구가 제가 던진 지우개를 받지 못해서 TV에 맞았어요.”
“그래서...?”
“조금 금이 갔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나중에 전화 드린대요.”
“지우개를 던져서 맞았는데 브라운관에 금이 갔단 말이야? 정말로 지우개로 장난을 친 거야?”
녀석을 학원에 보내고 나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울어서 될 일이 아니다 싶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학교로 전화해 담임과 통화를 했다.
차분한 담임의 목소리... 학부모회의 때도 갈지말지였건만... 너무도 빠른 선생님과의 전화면담이었다.
담임과 통화를 하고 난 후... 나는 더욱 절망적이 되었다.
대형 TV 가운데가 ‘ㄷ’자로 금이 갔단다.
언젠가도 다른 반에서 같은 일이 있었는데 그 부모는 변상을 했단다.
단종된 제품이라 a/s가 되지 않아서 새로 사야 한다나...
가격이 비싸단다.
그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건만...
신입 초라 할 일이 많으시고 바쁘셔서 아직 제품에 대한 것을 알아보지 못하셨다고 차후에 알아봐서 연락을 해 주시겠다는 친절한 말씀을 남기셨다.
거기다 더 무슨 말을 하랴...
수고하시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끊을 수밖에...
몸 져 누운 나를 보고 걱정한 딸이 지 아빠에게 전화를 했나보다.
가장 노릇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미안한지 요즘 잔뜩 내 눈치를 살피는 남편이 내 이마를 만져보며 언제부터 몸이 안 좋냐고 물었다.
난 질문과 상관없는 말을 꺼냈다.
아빈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지우개’ 사건을...
좀체 집에서 술 찾는 일이 없던 남편이 밥상에서 ‘소주’ 감춰둔 것 있으면 좀 마시잔다.
남편의 말대로 난 감춰뒀던 소주병을 김치냉장고 맨 아래서 꺼내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이 피식 웃었다.
역시나 술꾼 아내다, 싶었는지...
밤새 뜬 눈으로 지샜다.
정말 내 아이가 던진 지우개를 맞고 브라운관에 금이 갔을까?
그럼 녀석을 공부가 아닌 운동, 그것도 야구 선수로 키웠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혹 운 나쁘게도 다른 아이가 한 짓을 녀석이 덤탱이 쓴 것은 아닌지...
어쨌든 원인 제공을 했으니 내 아이 잘 했다고 따져 들 수도 없다...
15년 되어 가는 우리 집 냉장고와 세탁기, TV도 a/s가 되는데 TV구입한 지가 얼마라고 단절 된 제품으로 a/s 안된다는 말인지...
어찌됐든 가만있을 수가 없다.
오늘은 토요휴업일...
교장 선생님의 출근 여부를 물어서 오늘이 안되면 월요일에라도 학교로 직접 찾아가 뵐 생각이다.
하지만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일로... 녀석이 선생님들에게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지...
내가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답답하다.
능력만 된다면야 이런 일 아니더라도 내 아이 공부하는 교실을 최첨단 시스템으로 구비해주련만...거기다 차분한 학습 분위기를 도모코자 확실한 리모델링까지...
참으로 꿈같은 일.
능력 없는 부모는 이럴 때 어찌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