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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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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타령


BY 모퉁이 2007-03-08

한 달에 한 번 갖는 점심 모임이 있는 날이다.

취미로 모인 모임이다 보니 연령대가 다양하다.

오십 밑자리 깔아놓은 나는 그 중에서 언니 소리를 들으니

그러고 보니 다들 아우뻘이고 띠동갑인 친구도 있다.

 

서둘러 나서는 걸음 앞으로 하얀 눈발이 장난스럽게 나린다.

겨우내 털코트 대신 모직코트를 입다가

겨울 막바지에 들어서 세일이란 글에 반해서

양털 모자가 달린 코트를 사놓고,

그걸 입을만큼의 추위가 없어서 한 해 묵히나 싶더니

깜짝쇼 하듯 달려든 꽃샘추위 덕분에 한 번 입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주 추운 날씨는 아니어서 평소에 즐겨입던

모직코트에 목도리 하나를 추가하고 집을 나섰다.

 

먼저 도착한 동생들이 눈발 날리는 창에 눈을 갖다대고 있다가

손짓으로 반가움을 전한다. 됐어됐어 하는 시늉의 손짓으로 답했다.

꼬마 손님이 와 있었다.

유모차를 타고 젖을 물려가며 만나고 보아왔던 아이가

어느새 초등학교 입학을 했단다.

그런 사이 내 나이도 일곱 해를 더 먹었으니 이거야 원..징그럽네.

 

 아이는 말 그대로 늦둥이이다.

첫아이를 마흔 가까운 나이에 낳은 탓에 친구들은 대학생을 두었다는데

이는 이제 초등학교 학부모가 된 것이다.

아이들 손을 뗄 나이라는데

아이들 손을 놓을 수 없어 매일 허덕인다.

 

점심을 먹고 나오자 늦둥이 엄마가 길가 양품점을 자꾸 기웃거린다.

학교에 가보니 젊은 엄마들의 패션에 주눅이 들더란다.

장농속을  다 뒤집어 봐도, 작년엔 뭘 입었나 싶을만큼 건질 옷이 없더란다.

누군들 안 그럴까.

계절이 바뀌면 심란하지.

거기다 예식장이나 점잖은 자리의 모임이라도 생기면 더 난감하지.

이제 우리 나이가 청첩장 받아들 나이다 보니 신경이 쓰이지.

 

준비된 의상에 맞게 모임이나 잔치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어디 내 입에 맞는 떡이 될소냐.

자기네 입에 맞게 떡을 하다보니 내 의상은 들러리도 못서보고

옷장에서 잠들다 비싼 세탁비까지 물고서야 결국은 안타까운 이별을 하곤 한다.

 

거리에는 화사한 옷들이 즐비하지만

막상 마련코자 하는 옷을 고르는 데는 많은 고민이 따른다.

실용성과 효율성, 거기다가 가격까지 계산에 들면 차츰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 버린다.

 

물건을 사는데 있어서는 그다지 눈높이가 높지 못한 나를

의상 구입 자문으로 모시겠단다.

잘못 택했지 싶다. 도움이 못 될 것 같은데..

 

몇 군데 양품점을 들렀으나 가격과 품격에서 어긋난 박자를 타고 만다.

결국은 헤어질 때까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던진 조언(?)은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은 어때?\"

너무 내 수준에 맞추었나 싶어 미안키도 했다.

 

겉치레에 민감해서가 아니라도

가끔 내 차림새에 실망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당장 백화점으로 달려갈 배짱도 없으니 어디다 나무라랴.

 

생각지도 않았던 고민이 생겼다는 늦둥이 엄마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굵은 눈발은 머리 위에 어깨 위에

하얀 무늬를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옷이야 깨끗하고 헤지지 않으면 됐지 뭐 그게 대수야?

자기는 나이보다 훨 젊어보이니 아무거나 입어도 이뻐.\"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를 이렇게 지껄이고 있는 나도

옷장 뒤집어 보면 은근히 부아가 솟을 일이다.

에라~날씨 따뜻해지면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을 내가 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