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안개끼고 비도 뿌리더니 오늘 날씨는 춥다.
마치 크리스마스가 다가 올때처럼 말이다.
딸아이가 밤새 바람소리 때문에 잠도 못 잤다고 투덜거린다.
그러나 난 대충 그래? 하고 대답했지만 속 마음은 아주 기분이 좋다.
들뜬다. 괜시리 벌름벌름 웃음이 나는걸 참는다.
일제 압박 36년동안의 세월 속에서 해방되었을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오랜 노총각 장가 갈때의 기분이 이럴까?
고된 시집 살이 시키던 시어미의 주검 앞에 선 며느리의 마음이 이럴까?
드디어 해방을 맞은것이다. 난.
그 지겨운 겨울 방학을 끝내고 드디어 새학기를 맞은 아이들이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며 집을 나선 것이다.
겨울 2달 넘도록 아이들과의 씨름에서 난 해방된 것이다.
늦잠에 퍼져있는 아이들 깨우고 달래고 어거지로 밥 먹이고
세끼 밥과 반찬 걱정으로 머릿속이 늘 묵직 했었다.
돼지고기 김치찌게, 김치 볶음밥, 비지찌게, 김치전. 김치만두.
너무 많이 담근 김장김치 소비해 내느라 내 머리는 늘 가동중이었었다.
새로운 메뉴라고 아이들 달래가며 \" 맛있지? \" 를 연발하면서....
치이, 다 큰 녀석들 배 채워주면서 내가 치사하게 아부까지 하는 꼴이라니.
거기다 고3되는 아들과의 숨막히는 두뇌 전쟁에 난 슬슬 한계를 느껴 왔다.
여차하고 틈만 나면 컴퓨터에 매달리는 녀석과의 전쟁.
녀석은 방학때 한두시간도 못하게 하냐고 투털거리지만
오락은 마약과도 같아서 한번 재미를 들이면 그걸 끊기가 여간 힘든게 아님을
잘 알기에 숨바꼭질같은 전쟁을 치르었다.
모임이 있거나 운동이 있어도 컴퓨터 마우스를 떼어 가방에 들고 간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래도 딸아이 노트북으로 오락을 하니 노트북 충전기까지 감춰놓고 다녔다.
아침 일찍 운동이라도 나가려면 몰래 소리없이 녀석 자는 틈을 타서
다녀오려고 하지만 맨날 늦잠을 자다가도 내가 나가는 소린 어찌 그리 잘 듣는지.
한참을 공원을 걷다보면 핸드폰으로 걸려오는 녀석의 잠 덜깬 목소리.
\" 엄마, 어디야? 언제 집에 와?\" 라고 하지만
난 안다.
녀석은 금방 일어난 척을 해도 내가 나섬과 동시에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음을.
그리고 엄마가 어디쯤인지를 알고 머릿속에서 쉴새없이 시간 계산을 하고 있다는걸.
딸아인 너무 욕심이 많아서 탈이었는데, 아들아이는 너무 욕심이 없다.
인생의 목표가 공부를 잘해서 출세하는것만은 아니란다.
그래도 부모인 우리 심정은 결혼해서 제식구 고생 안시키고 안정된 직장이라도
갖게 되기를 바라는데 현실이 현실이다 보니 좀 욕심을 내 주었으면 하는데도
영 근성을 안 보인다.
이런 평범한 문제로 내가 내 자식을 들볶게 될 줄은 몰랐다.
먹고 사는 문제. 제 식구 밥 먹일수 있는 능력과 책임감.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구박데기 되지 않게 사는것.
내 부모가 우리에게도 이런 바램을 가졌을것이라는 사실을 점점 실감한다.
이 녀석.
부담스런 사교육비를 견디며 현재를 참아내고 있는 자기 부모는 안중에도 없다.
야호!
아, 그래도 이 모든 걱정에서 한나절 이상은 해방이다.
날씨가 풀리면 산에도 갈 수 있다.
쑥 뜯으러도 갈 수 있다. 냉이 캐러도 갈 수 있다.
공원에 빼꼼이 올라오는 개나리, 철쭉들 새 꽃잎들을 보러 갈수 있어서 좋다.
전쟁은 아침에 잠시만 , 밤에만 치르면 된다.
휘바람이 절로 난다.
난 겉으론 일시적인 해방을 맞은 것이다.
머릿속에선 여전히 쮜어뜯는 전쟁을 치르고 있을테지만.
훗날 지 에미와 이런 전쟁을 치른것을 기억하고 제 자식들을 대할테지.
그리고 이 어미를 이해해주고 감사하게 생각할 날이 되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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