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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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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의 편지


BY 동해바다 2007-03-01



     

     부모님께

     날씨가 많이 찹니다. 추운 겨울 건강은 어떠신지요?
     저는 몸 건강히 잘 지냅니다. 훈련소에 입소한 지도 벌써 5주차에 접어들고, 입대한지 
     한달 사흘이 지난 2007년 1월 21일 한적한 오후입니다.
  
     곰곰히 한달간의 잊지못할 훈련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으로 스쳐 갑니다. 
     처음 입소할 때의 어색함이 채 지워지기도 전에 낯선 방탄모와 개인장구 요대 그리고 
     소총까지 지급받았던 그 순간이 기억납니다. 뿐만 아니라 밤늦게 추운겨울 모포 하나로
     버텼던 각개숙영, 매운 가스와 사투를 벌였던 화생방, 나와의 기나긴 싸움이었던 행군 등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순간순간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보람이 지금의 저를 더욱 힘나게 합니다.

     이제 닷새 뒤면 퇴소를 하고 자대배치를 받습니다. 
     자대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는 어디로 갈 지 알수 없다고 합니다. 
     가끔 거울을 보면서 생각하지만, 이 얼룩덜룩한 군복과  시커먼 전투화가 그리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지내야 할 날이 더 많고 이겨내야 할 숙제가 더 많겠지요. 

     그 모든 산들을 넘고 넘는 그 날이 올때까지 몸 건강히 계십시오.

     2007. 1. 21 일요일
     논산에서 올림

     *******************

     아들만 바라보면 듬직함보다 안쓰러움이 가득해진다.
     무한한 사랑을 베풀었다 생각되면서도 사춘기시절부터 지금까지 너무 마음
     아프게 했다는 현실이 더욱 그 무게를 더해주었었다.

     아이아빠는 특전사 출신이었다. 
     \'안되면 되게하라\'는 구호아래 특전사 전국 가족모임에도 한번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후 아들은 집에서 아빠 옷을 입고 장난스레 폼을 잡곤 했었다.
     그때 그 시절, 방긋 웃는 맑은 미소가 너무나 예쁘기만 하다.

     지난 1월 26일은 아들아이가 자대배치 받는 날이었다.
     5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써 보낸 편지 그리고 뒤이어 부쳐오는
     편지에는 점점 어른으로 변모해 가고 있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특기도 자격증도 없어 훈련병 하나하나 차출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아들은 아마 
     전경으로 배치될 확률이 클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집에 있어 더욱 편안해진 목소리, 그것으로 난 삶에 힘을 실었다. 

     세수도 하지않고 오전내내 드러누워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도 몸도 많이
     약해져 있던 터라 삶의 희망도 없다고 느끼던 날 중이었다. 오전에 걸려온 아들친구 엄마
     의 전화는 나를 컴퓨터 앞으로 끌어당기게 만들었다. 
     배치결과는 오후 2시 인터넷으로, ARS로는 오후 1시라고 하였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것은 혹시나 전경으로 차출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였다.

     아들의 주민번호를 넣고 기다리니 난데없는 \'특.전.사\'가 전화기 속에서 튀어 나왔다. 
     \'아니 말도안돼, 무슨 특전사야\' 
     수화기를 든 채 엉엉 울었다. 운동신경도 둔하고 약해빠진 아들이 특전사라니,
     이건 말도안되는 처사라 생각들었다. 거긴 지원해서 가는 곳이라 들었는데 무슨
     특전사, 공수부대가 웬 말인가...

     2,30년전 공수부대라 하면 그 힘이 막강하여 여느 깡패못지 않게 힘을 쓰고 다닌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특전사를 나온 남편도 그때 그시절을 운운하며 힘
     썼던 시절을 그리곤 했었다. 그래서 슬슬 피해다니곤 했는데 아들이 특전사라니..
     무너지는 억장 앞에서 한없이 우는 못난이가 되어 있었다.

     여성들도 지원해서 가는 판인데,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단지 비행기에서 낙하할 아들아이를 상상하니 두려움이 급속도로 전해졌다.
     그 상황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친정으로 친구에게로 시누에게로 울며 전화를 해댔다.
     약해져 있는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모두가 \'어떡하나\' 입을 모은다.
     
     더욱 가중시킨 것은 정작 특전사 출신인 남편이 더 당황해 하는 모습이었다.
     시절이 달라졌지만 30년전의 저 자신을 잠시 떠올렸었나보다. 배치날짜를 기억
     하고 외국에 나가있는 시누가 전화를 걸어 역시 당황해한다. 

     마음이 달뜬 상태에서 오후가 지나고 하루 이틀 지나니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리고 받은 아들의 전화, 
     \"괜찮아요 남들 다 받는데 뭐\"
     \"겁나지 않니?\"
     \"처음엔 두려워도 닥치면 다 하게 되더라구요 걱정마세요.\"
     역시 군대는 가고 볼일이던가. 남자다움이 느껴진다.

     \'잘갔네\'
     \'남자는 그런 곳에 다녀와야 해\'
     \'멋지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군대방식에, 그리고 아들의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훈련병 아들의 말처럼 모든 것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보람이 전역할 무렵 아이의
     어깨에 가득 실어질 것을 생각하니 걱정했던 것들이 기우였음에 민망하기까지
     했다. 이 약해빠진 엄마는 언제쯤 단단해질런지...

     충북에 있는 부대로 소속된지 한달여가 지났다.
     빽빽히 써 내려간 두장의 편지가 또 도착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번갈아가며 통화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는다는 내용, 베레모를 쓰고 멋진 모습으로 건강하게 나타날거라는 내용, 
     아빠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꺼리가 생겼다는게 기분좋다는 구구절절 써 내려간
     이등병 아들의 편지가 이렇게 큰 힘이 될줄이야...

     입대전 축 처진 아들의 어깨에 실어질 힘은 우리 가족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 외에 무엇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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