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에 딸은 평택에서 지은이, 은별이라는 두 친구가 온다며 내방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비슷한 머리를 한 세 명의 여자 아이들은 금방 가방을 벗어두고, 센트럴 시티로 나섰다.
딸아이는 영화도 보고, 강남터미널지하상가도 구경한다며 들어온지 채 몇분도 안되어 집을 나섰다.
남편도 용돈을 주었고 나도 용돈을 주었다.
그 날 간다던 두 아이가 집으로 딸아이와 함께 돌아와 자고 간다며 알밥을 해 달라고 날치알 한 통과 깻잎 무순을 사왔다.
알밥을 먹고 아이들은 야 밤에 산책을 하고 돌아와 샤워 후 엄청난 수다 끝에 밤 12시가 지나 잠자리에 드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조용했던 것이다.
그 다음날 일어난 아이들은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나갔다.
곧바로 지하철 7호선을 타고 간다며 팬시점을 구경하고 간다며 나갔다.
오후 3시가 지나 딸아이는 지쳐 돌아와 쇼파에서 쿠션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들과 남편과 내가 한강을 2시간 이상 산책후 돌아와 보니 숙제를 한다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아이는 저녁을 먹고서도 10시가 다 되어 제방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 SS501이 진행하는 음악방송을 멍하게 듣고 있었다.
낮부터 돌리고 있었던 수건이랑 속옷을 늘려고 보니, 딸아이가 계속 그 자세로 누워 있었다.
그 모양이 심상치 않아 나는 물었다.
\"왜 친구들 가서 기분이 안좋아?\"
\"응, 서울이 싫어.\"
\"너때메 여기 왔는데, 그런 말 하면 안되지.\"
\"그래도 서울만 아니었으면 좋겠어, 평택이 아니더라도.\"
\"소현이 있잖아?\"
서울에서 사귄 반 친구인 소현이가 생각나 그렇게 물었다.
\"걔 소현이 싫어!\"
아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나름대로 서울에 적응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정말 우리는 고향이 어딘지 모르겠다.
시인은 우리의 태초의 고향은 없다(무)라고 했으나, 나는 아직 나이 어려 그 말 뜻을 이해 못한다.
성적이 좋아 별 문제가 없거니 여겼더니, 중 1인 딸이 느끼는 허무가 또 있었나 보았다.
나 역시 서울에 와서 6개월 동안 빵만 무지 구워댔다.
\"적응불능, 정서장애.\"에서 기인한게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집착을 하게 되는 그 일련의 모습들이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과연 딸아이만큼 혹은 아들아이만큼의 감정을 내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일까?
어디에 있든 나는 그 곳이 고향이라고 생각했다.
서울만이 내 고향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딸 아이가 그 때 떠나 보낸 그 아이 중 하나 은별은 고국을 떠났다. 미국행.
지은이는 딸 아이 생일 날 선물도 보내준다.
딸 아이는 사는 방법을 조금씩 서울에서 터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