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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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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어린이


BY 미국이모 2007-01-17

재방이의 비화를 소문  낸 김에 하나 더 !

 

어느 가을 날 남편이 학생들을 데리고 출장(?)을 갔다.

그 날 저녁 무렵

나는 기억이 잘 안나는 무슨 일로

남편 직장 근처에서 아이들 둘을 데리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된 장농 면허로

남편이 남겨 놓고 간 방구차를 감히 운전할 엄두가 나질 않아서

재방이를 안고 (몸이 약해서 기운이 없는 재방이는 늘상 안겨 다녔다)

유치원 다니는 큰 아이를 걸리고

끙끙 깽깽 책들어 있는 가방까지 들고......

 

바로 그 때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우리 방구차 못지 않게 세월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학장님의 쏘나타가 우리 옆에 뭠춰 섰던 것이다.

어서 타라는 말씀에 사양도 않고

고맙습니다 하며 덥석 타버렸다.

우리집이 학장님 댁 가는 길에 있기도 했지만

이 신사중 신사 분의 성품이

낯 잘가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편안한 분이었던 탓이다.

게다가 천사같은 사모님까지 곁에서 손짓을 하시니

안타면 성의를 무시하는 결례가 되지 않겠는가. ^^

게다가 학장 전용 공무용 차도 아니고

그야말로 그 분의 \'자가용\'이니까.

 

태어 난 지 몇  개월 안 된 손주가 미국에 있어서

마음껏 보지도 못하시는 학장님 내외분은

우리 아이들을 무척 예뻐하셨다.

맛이 깨끗하고 담백하고 시원한 무국 같으면서도

반듯하신 어른들과 조심스레 대화를 나누며 오다보니

금세 집 근처에 다다랐다.

 

버스 정류장을 조금 못 미처 내리면

버스에서 내려 걷는 것 보다

5분을  단축할 수 있는 골목길이 있어서

그 곳에서 내려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탈 때야 덥썩 탔지만 그건 결례를 범치 않으려는 마음에서였고(ㅋㅋㅋ)

이제는 우아하고 사려깊게 배려를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여기서 내리면 집까지 아이들 데리고 어떻게 걸어 가려구요

그냥 집까지 데려다 줄께요\' (천사같으신 사모님 ) 

\'그럼 그럼 날씨도 쌀쌀한데\' (다정하신 학장님)

 

하지만 나도 염치가 있지.

학교에서 제일 높으신 어른에게

골목길까지 들어오셨다가

힘들게 차 돌려 가시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시장하실 것이 뻔한 퇴근 시간에

\'오신 김에 차 한 잔 하시고 가세요\' 하고 빈 말을 드릴 수도 없고.

 

\'아니에요.

시원한 가을저녁인데 좀 걷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도 산책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학장님은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싶으신데

내가 자꾸 거절을 하니

엉거주춤 갓길로 차를 대시는 찰나였다.

 

\'나 그거 않좋아 해~애!\'

 

어윽>>>>

우리 재방이는 솔직한 어린이였던 것이었다.

거짓을 모르는 순진한 어린이....

상황파악이 되는 큰 아이 또한 구김없이 깔깔거리고 있었다.

허나 나는  아들의 순진함이 귀엽다는 생각보다는

민망한 생각에 양쪽 관자놀이가 찌릿찌릿할 뿐이었다.

얼굴은 나도 웃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정말 어쩔 줄을 몰랐다.

(재방아!  이 분은 외할아버지처럼

널 친구로 생각해 주시는 관리실장님이 아니야.

학장님이시라고 ~오.)

 

이왕에 차를 대신 김에 얼른 문을 열고 내리면서

거리낌 없이 허허 웃어 주시는  어른들이 감사 할 뿐이었다.

 

걸어가면서 내가 재방이에게 물었다.

\'너 지난 주에 누나가 꽃 사고 싶다고 해서

저녁 먹고 아빠랑 다 같이 꽃 사러 갈 때는 잘 걸어갔잔아.

엄마를 이렇게 당황스럽게 하니.\'

\'나 그 때도 걸어 가는 거 싫었단 마이야.

그연데 내가 싫다 그여면 누나가 울구 그여니까 간다고 그연거지이.\'

 

휴~ 어찌나 대의명분이 확실하신지.....

 

\'그럼 재방이가 오늘 걸어 가는 거 싫다고 했으니

엄마도 울어야겠다. 많이 울란다.\'

\'아휴~ 엄마는 엄마잔아(어른이잔아라는 뜻) 울구 막 그여면 안되지이\'

 

그래 이렇게 엄마 품에 안겨 다닐 때 실컷 솔직해라.

네 몸집이 커지는만큼

세상에 너의 솔직함을 받아 줄 자리는 작아지는 법이니.

 

요즈음은 재방이도 그렇게 솔직하질 못하다.

세상살이에 물든 \'기성\' 초등학생인 것이다.

내가 \'누구 아들?\'하고 물으면 \'엄마아들\' 하던 아이가 더 이상 아니다.

뱃 속에서 내  보내는 그 날 부터 떠나 보낼 준비를 하라고 했던가.

졸업 후에도,  결혼 후에도  구석구석 상관하지 않고

그냥 쉴 수 있는 큰 그늘이 되어주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수양해야 할텐데....

내가 너무 일찍 걱정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름답고 편안하게 보내고,  원할 때는 언제라도 받아 줄 여유로

정말 그렇게 준비되고 싶다.

 

에세이방 선배님들!

자식에게 가는 마음에 솔직하지 않기가 쉽던가요?

어떻게들 떠나 보내셨나요?

기숙사로, 군대로, 배우자에게로......

몸으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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