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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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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하루


BY 탱자나무가시 2007-01-03

철을 도무지 알 수 없다.

아파트 정원엔 목련봉오리가 하얗게 뾰족 눈칠 보고..

앞베란다엔 연산홍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흐드러지게 붉어지니.

게으른 아침을 먹고 작은 아이에게 한자공불 시키고 있으니

큰애는 배가 고프다고 쟁쟁거린다.덩달아 작은 놈도 보챈다.

아침 먹은 지 채 두시간도 안됐는데...

방학은 이렇게 안도 밖도 어수선하다.

어제 친정에서 가져온 풋고추 삭힌 거에다 김장 양념한게

무지 맛있다며 큰애는 머슴 밥을 먹는다.

오랫만의 쇠고기 미역국에다 밥을 말아서 김치를 걸쳐먹는 작은 애도

얼굴도 들지 않고 막 들이킨다.

아이들의 가장 큰 요람기는 방학인가 보다.

빨리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다가 그러면 내가 더 빨리 늙는데..아니 문득

양쪽 부모님들이 생각난다.

네분 다 이제 고희에 접어든다. 그래선지 시간이 멀겋게 천천히 아껴갔으면싶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세가지 즐거움중 그 두번째를 주셔서 천지에 감사한다.

점심상을 물리고 나니 시어머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애들하고 잘있냐고....

시골집이 추우니 아버님하고 오시랬더니 알았다시며 애처럼 좋아하신다.

한 시간후 까만 비닐봉지를 오롱조롱 손에 꿰서 들어 오신다.

따뜻한 순대,헌 후라이팬에 구운 고구마, 시장에 들러 맛있는 등심불고기감.겨울움속에

묻어 둔 배추... 한판 푸짐하게 벌일 물건들이다.

지난 연말 맛난 거 먹고 같이 못 보낸 게 못내 아쉬웠는데...

남편은 일이 바빠 가끔씩 와도 부모님이랑 밥한끼하자는 말 아끼더니

손수 당신들이 오셔서 판을 펴시니 참 가슴아리고 송구하다.

얼릉 배추씻고 마늘까고 고기양념을 하고...

저녁을 또 일찌감치 준비했다.

다 맛난다고 하시는 어머님을 보면서 속으로 눈물이 났다

얼굴은 고기를 씹으면서 웃었지만 질겅질겅 씹히는 고기뒤로 내 불효의 맘을 덮었다.

십이월삼십일일 저녁무렵. 모두들 송년회.해맞이로 북새통을 이룰때 전화하신 어머님을

집에 그냥 계시라고 그랬다 . 우리도 잘 있을테니. 사실 아버님이 가깝지 않은 길을

운전해오시는 게 맘에 걸려서였는데, 어머님은 아들도 오지 않는 우리집에 손주들과 같이

쓸쓸함을 달래고자 하셨을 테고.  그때 내생각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연말에 못한 걸 오늘 하려고 왔다는 그 말씀에 마땅한 댓구를 못했다.

일찍은 저녁을 먹고나니 할 일이 없었다. 이런 저런 얘길하다 나는 아줌마방에 마실을 와서

둘러보고 있으니 밖이 조용하다. 불이 꺼지고 자리를 펴고 주무신다 아이들도.

작은 아이는 할아버지 옆에서 까만 눈을 말똥거리며 자다말고 베개를 들고 와선 엄마곁에

잔다고 한다. 할아버지 코고는 소리가 너무 커서.. 그러다 말고 다시 할아버지 곁으로 간다.

하루가 참말로 이리 빨리 가는가.

세상이 컴퓨터 기계음만 윙하는 것같다.

시간은 까만 밤으로 치닫는다. 멈추어다오. 오늘밤은 이불이 모자라 여름이불을 덮어야겠다.

다시 지난 여름으로 시계바늘은 안 돌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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