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와 컴퓨터활용능력 이급 자격증은 땄지만
고양센터에선 취업을 해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일단 나이가 많은 게 문제중에 문제였다.
마흔여섯인 나이로 사무직쪽으론 이력서조차 낼 수가 없었다.
컴퓨터를 배우던 여자들 중에 자격증을 다 통과하고 결석하는 일 없이
성실하게 공부를 한 삼십대 후반도 취업추천이 없었는데
자격증도 따지 못하고 집안 사정으로 결석과 조퇴를 수없이 했던
삼십대 초반인 한 여자만 취업추천이 들어오고 취업이 되었다.
자격증은 뒷전이고 성실성은 보지도 않고 무조건 젋은 여자만 원하는 곳이
우리나라 현실정이었다.
물론 나는 사무직으로 취업추천이 들어오지 않을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누구보다 성실이 자격증을 땄던 삼십대후반이었던 여자도
사무직쪽에선 나이가 많은측에 속한다는 것과
한 살이라도 젊은 여자를 원한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뼈속 깊이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패션핸드페인팅을 알게 되었다.
오년전에 한복 그림 자격증을 따고 몇 년 동안 옷감에 그림을 그렸던 경험이 있어서
쉽게 결정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한복에 그림을 그리던 일을 할 때 이 일이 점점 가치가 없어지고
찾는 사람이 없어지던 중 누군가가 패션핸드페인팅을 배워보라고 했었다.
그러던 중 유기농장사를 하게 되어서 잊어버리고 있다가
컴퓨터를 배우면서 알게 된, 옷에다 그림을 그리는 패션핸드페인팅.
4개월 동안 배우면 강사 자격증이 주어지고 취업할 수 있는 곳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문화센터에 강사로 나갈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나는 또 나이가 많다라는 높고 단단한 벽이 놓여있지만
이것은 실력과 노력이 어느 정도 보여지는 일이라는 생각에 배우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청바지, 면티, 니트, 모자, 신발, 가방…….
천으로 만든 곳엔 어디나 그림을 그릴 수가 있어서 실용적이면서 나만의 패션이 된다.
특히 청바지에 그리면 멋스럽고 예쁘다.
청바지는 누구나 입으면서 싫증도 나지 않고 어느 옷에나 어울린다.
이런 청바지에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려 넣으면 색다른 옷이 되고
남들이 너도 나도 입는 청바지가 아닌 지구에서 하나밖에 없는 청바지를 입게 된다.
아니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옷이 되는 것이다.
너무 과장된 표현인듯하지만 틀린말은 아니다.
패션핸드페인팅을 배운지 한 달 반 정도 되어간다.
초급을 넘어서서 중급에 들어서면서
그림에 조금씩 자신감도 생겼다.
먼저 내 옷에 그려 입고 다녔더니 친구가 예쁘다고 해서
친구 면티와 청바지에 들꽃을 그려주었다.
오늘은 친정엄마 갈색 니트에 꽃그림을 그렸다.
새로운 옷이 한 벌 생긴 거나 마찬가지가 된다.
싫증나고 밋밋한 옷에 꽃 세송이가 펴서 봄날처럼 웃고 있다.
올케도 내 옷과 신발을 보더니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해서
올케가 입던 청바지와 티를 받아왔다.
반짝반짝 날아다니는 나비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아 놓은 상태다.
남자 청바지에 물방울무늬를 그렸더니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바지가 되었다.
나는 남들이 너도 나도 그리는, 언제 어디서나 있는 장미꽃을 그리지 않는다.
들꽃을 중심으로 그릴 생각이다.
한복 그림을 그릴 때도 들꽃을 그려서 상도 받았지만
그때는 들꽃이 별로 인기가 없었고 알아주지를 않았지만
몇 년 사이 들꽃이 대 유행이 되어 있다.
길가에 꽃도, 내 집 정원도 들꽃이 주를 이루고
도자기나 일반적인 그릇에도 들꽃이 살아나는 대한민국 세상이다.
나는 때를 맞춰 들꽃을 그리려는 게 아니고
한복그림을 배울 때부터 들꽃 도안을 만들어서 한복에 그림을 그렸었다.
이제는 평상복이나 외출복에도 들꽃을 그릴 생각이다.
제일 큰 걸림돌은 나이가 먹을 만큼 먹다보니
학교나 문화센터에 강사로 나가기가 힘들 것 같아서 직접 집에서 그림을 그릴 생각인데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우선이다.
홍보를 해도 돈 벌이가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동안의 경제적인 것이 문제가 된다.
내 나이에 맞는 일을 찾아서 당장 돈을 버느냐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고 이 일을 노력을 해 보느냐의 갈림길에 나는 서 있다.
벼룩신문을 뒤적여 봐도
내 나이에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이 되어있다.
식당이나 영업이나 청소부나 카페나 노래방 도우미…….
벼룩신문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뒤로 미뤄 놓고 친정엄마 옷에 그림을 그렸다.
꽃도안 그림책을 펼쳐 놓고
들꽃 닮은 도안을 찾아
하얀색 초크연필로 스케치를 했다.
니트라서 연필이 미끄러지듯 그려지지 않고 옷만 늘어졌지만 대충 밑그림을 그렸다.
갈색이라 주황색계통으로 꽃을 피게 하면 어울리겠다…….
꽃잎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앞쪽엔 노란 물감을 많이 섞어 칠하고 뒤로 갈수록 빨간색과 갈색 물감을 섞어서 그렸다.
니트라서 붓이 지나가도 물감이 칠해지지 않아
솜방망이를 만들어 공판화를 기법을 섞어가며 그렸다.
금펄로 꽃대를 그리고,
무지개 색 펄로 꽃잎위에 덧칠했다.
꽃에 어울리는 큐빅을 박고 나니 두 시간이 걸렸다.
드라이기로 말리면서 엄마를 생각했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시는 엄마라서 마음에 들어 하실 거야…….
수고비로 만원을 준다고 했는데 받지 말아야지…….
그리고 기도를 한다. 내게 주어진 이 일이 돈벌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