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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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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상담하러...


BY 정자 2006-12-15

 

나 어릴 적엔 다방에 가는 것은 최고의 불경스러운 일이고

고고장 극장가는 것은 날라리학생들이나 하는 짓인 줄 알았다.

순진하다고 할 수 있으나 지금의 시선으로 본 다면 아주 맹추였다.

 

나는 중학교때 동기동창들의 소식을 모른다.

그당시 어떤 외국가수가 우리나라에 내한했는데

한 반에 반이상의 학생들이 모두 김포공항에 빠져 나가  배웅을 하러 갔는 데.

그바람에 반은 정학이고. 반은 근신이고 반은 일주일동안 반성문을 써야 하는 데

그들중에 나는  외톨이처럼 무풍지대처럼 순진했다.

도대체 가수배웅 나가는 게 무슨 죄여?

 

 그 바람에 나의 짝궁은 자퇴를 해버리더니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줄줄히 퇴학을 당하는 바람에

나와 절친한 친구들은 졸업을 하지 못했다.

맹추인 나만 홀로 졸업을 하니

수십년이 흘러도 그들의 연락처도 얼굴도 모두 잃어버린 꼴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크리스마스날 전 이브날은 누가 날 불러도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올라잇트며 파티며 그런 것은 안하면 더 좋고 못하면 말고 이러다 내 아까운 십대는

묻혀지고, 드디어 스므살  즈음 처음 다방이라고 들어간 것도 다른 친구들 묻어서 드나들었는데

가끔 쫒겨나기도 했다. 졸업하고 오라고 하고, 주민증 확인하는 주인도 있었는데.

이런 것도 귀찮아져 아예 스물 다섯살때 까지인가 카페도 다방도 잘 가지 못했다.

지금이야 동안이 유행이라고 하지만, 그 때는 내가 어려보여서 그런 줄도 모르고

그냥 무심히 지나간 시절인데.

 

 

얼마 전 친구 아들내미가 집 나갔다고 길길히 난리가 났다.

이제 고등학생이고 내년엔 고삼인데 이 놈이 컴퓨터를 사주었더니 어떤 년이랑 채팅을 해가지고 눈 맞아서 바람이 났다고 잡으러 다니다가 우연히 나와 마주쳤다.

 

보자마자 나를 붙잡고 아들내미 오다가 못 봤냐고 내 이놈을 뭍잡으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겠다고 성화에 나도 질려 슬금 슬금 모른 척 지나려는 데 되레 또 어디가냐고 내 손목을 잡는다.

 

저기 두부도 사고 청국장이 떨어져 가지고 시장 나왔는 디... 니 아들이 어디 간 겨?

아 글쎄 이 놈이 붙들어 집에 데려다 놓으면 어느새 또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그런다니께! 아이구! 내 자식이 아니고 웬수여! 그것도 상 웬수! 내가 안가 본 데가 없다니께 .. 피씨방에 찜방에 노레방에 거 뭐시냐  남탕까지 아들내미 이름부르고 다녔다니께..

 

 사거리 길 모퉁이에 나를 세워놓고 반은 푸념이고, 하소연이니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들이 힐끔 힐끔 쳐다보고 지나간다. 나도 서서 그 긴 애기를 다 들어줄 수가 없어서 생전 안 간 다방에 마주하니 세상에 내 친구 얼굴이 나보다 십년 곰 삭았다.

 

 내년에 고삼이면 지금 몇 살이여....

열여덟이지..그 놈이 십팔놈이네..어휴! 아줌마 여기 시원한  물 한 잔 더 갖다주세요?

자식보고 나이 말한다는 게 욕이 되니 울화통 터진다고 또 소리지르고, 물 먹으면서 이거 내가 그 놈 낳고 별 고생 다하고 참았는 데 어째 이런 일이 다 나에게 일어 난 다냐?

 

세상에 그럴 수는 없단다. 어떤년은 남편 복에 자식덕에 비행기타고 세계일주하네 마네하는 디... 나는 그런 것은 고사하고 날 추운데 얘새끼 찾아다니는 팔자가 되버렸으니..야 ! 정자야 뭔 말을 혀 봐?

 

이제야 나의 답을 물으니 나도 어법벙해가지고 물끄러미 마주보니 괜히 쑥스럽다.

글쎄 뭔 말을 해줘야 답이 되고 위로가 될까.

 

물으니 할 수없이 입을 열어야 하는데

집 나간 아들 분명히 발 뻗고 잠은 못 잘테고, 집이 텅 빈 에미 심정은 말 한들 달라지지 않는 상황이다.

 

그냥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채팅하다가 집 나간 겨?

아 그렇다니께! 내가 알아보니까  나이도 두살이나 더 먹은 계집이래?

 

몇 칠 됐는 디?

한 열흘이 넘었는 디... 집을 알아볼려고 여기저기 헤맸는 디 집이라고 하나둘이냐 아파트에 원룸에 맨 천지인데..하이고 내가 미치고 팔짝 뛴다! 내가...

 

나 어릴 땐 다방이나 고고장이나 연예인 배웅나갔다고 징계먹은 거 지금은 벼룩만큼이나 아무것도 아니게 됐는 데 아들내미 보아하니 서로 좋아 같이 있는 거 흉이 안되는 세상이 되었다고 나는 힘주어 말했다. 아니할 말로 옛날은 연애하면 머릿털 뽑히고 다리 분 질러지는 큰 잘못이 지금은 못하면 장애인 취급을 당한다고 했다. 물론 아직 학생이고 십대이지만 그 십대는 하나님도 무서워 하는 세대다. 부모라고 을르고 우격다짐으로 통하는 십대는 아니다. 그러니 집에 돌아가서 느그막하게 니 그동안 못 먹은 거 맛있게 해먹고 잠 잘자고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들어오지 마라고 해도 찾아온다. 자식은 원래 부모는 지구 멀리 입양을 한 부모라도 늦게라도 찾아오더라....

 

 친구는 다 식은 커피를 꿀꺽 꿀꺽 홀랑 비웠다.

야! 니 지금 뭐 먹고 싶냐? 내가 한 턱 쏠께?

 

느닷없이 뭐 먹고 싶냐의 말에 멍청히 생각을 하니 나를 끌고 나간다.

어디가는 겨?

나 오늘 너랑  만땅 취하고 싶다!

가자! 상담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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