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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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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그 에필로그


BY 진주담치 2006-12-01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길가의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노란색 물감을 풀어 흩날리고 있다.

 

요즈음 나는 괜히 기분이 들뜨고,  혼자있으면  벌죽벌죽  웃음이 난다.

지난 주말,   토익 시험을 치러야 하는 딸아이를 끌고,(시험을 포기시키고)

                   영어 보충수업한다는  아들의 과외도 취소시키고

                   온 식구가 시골로 내려갔다.

 

마음먹기가 힘들지 일단 가기로 작정을 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커피와 과일도

차에 가득 실어서  출발했다.

30여년만에 초,중학교 동창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들떠서 밤새 뒤척였다.

이럴줄 알았다면 머리도 좀 하고 다이어트도 좀 해서 이쁘게 하고 가야했는데

남편 사정이 어찌될지 몰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전날에야 부랴부랴

콘도도 예약하고 아이들도 달래서 가게 된 것이었다.

 

바닷가 콘도에 짐을 풀어놓고 친구들과의 약속장소로 먼저 갔더니

그 횟집의 주인도 같은 동네 살던 후배였다.

그러나 그 후배는 나를 금방 알아보는데 나는 영 가물가물 하는것이었다.

내 모습이 하나도 안 변했단다.  황송하게도.  이 말을 들으면 좋아해야 하는지,

아님 옛날 시골 소녀의 촌스러움이 그냥 있어서는 아닌지  좀 헷갈리기는 하더라.

 

조금 일찍 도착한 관계로 화장실에 가서 다시 화장도 고치며 옷 매무새도 다시 보며

내 나름대로는 들뜨서  안절부절하며  친구들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전에 만났던 친구들,  중학교 졸업후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도시 고등학교에 같이 유학했던 친구들. 

모두 10년, 20년내지  30년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었다.

 

시간이 되어 친구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하는데

그 친구들을 보는 순간   난

마치 오랫동안 그리워만 하다가 만나는 첫사랑과의  해후처럼 설레고 긴장되던 마음이 

한순간에  무장해제됨을 느꼈다.

 

우리 주변에서 늘상 보는 보통의 아줌마들, 시골 사투리, 얼굴의 주름살들,

양푼이 두드리는 듯한 목소리들,  뱃살로 한 몸매하는  아줌마들.

전국 각지에서 삶의 현장에서, 아님 한 가정에서

자식을 위해,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그런 어머니의  바로 그 모습들.

우린 서로 얼굴을 쓰다듬으며 얼싸안고 ,  옛날의 모습을 찾으려고 다시 살펴보곤 했다.

모습은 변했어도 어릴적 눈매는 여전했다.

 

삶이 고달퍼 어여쁜 모습들은 간직하고 살진 못해도,

가난때문에  많은 배움을 지니지 못하고 살아왔어도  모두 다 상관없었다.

우린 초등학생 어린이,  중학생 단발머리 친구로 금방 돌아갈수 있었다.

어릴적 친구들을 만나면 잘난 척하지 않아도 된다.  

 내숭떨며 교양있는 척 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면 아무리 잘난척하고 교양있는 척 해도

그녀의 과거는 코흘리개였고 숙제 안해와서 교실밖에서 30분씩 벌서던 아이였으니.

또 다른 그녀는 남몰래 남학생 편지 돌려 읽다 걸려서 온 학교에 바람둥이로 소문난

이력이 있으니.       또 다른 그녀는 친구 오빠에게 연애편지 써대고,

또 다른 그녀는 중학교때까지 손톱을 물어뜯어 손톱이 제대로 남아있지 못했으니,

또 다른 그녀는 셋째 시간이 끝나면 도시락을 까 먹곤 정작 점심시간엔 숟가락만 들고

친구들의 도시락을 순회하고 다녔으니.

 

가면을 쓸 필요가 없는 만남.

관등성명을 읊어야하는 절차도 필요없는 만남.

말하지 않아도 누구집 숟가락이 몇개인지도 다 아는 그런 만남.

               .

               .

               .

그날, 그 바닷가 횟집은 우리들로 인해  장날처럼 시끄럽고 요란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비로서 30년동안 못잊어 찾아헤매던 사랑을 하나 찾았다.

 

오늘도 친구들이 카페에 올려놓은 글을 읽으며

또 벌죽벌죽 시도 때도 없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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