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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없이 기차를 타다


BY hayoon1021 2006-11-16

 

새벽 4시,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의 기척이 잠결에 들렸다.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던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떤 예감이 휙 하고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후다닥 냉장고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없었다. 고추장 된장 밤 깨 더덕 김치 등 시댁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빼곡히 채워진 냉장고 안 어디에도 참기름 병은 보이지 않았다.

“참기름 어쨌어?”

내 말이 곱게 나올 리가 없었다. 신발 끈을 매던 남편은 으응, 어디 갔어, 하고는 슬그머니 말끝을 흐렸다. 순식간에 내 심장은 팔딱팔딱 뛰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차를 타야 하는 남편을 붙들고 한바탕 할 수는 없었다. 속은 부글부글 끓는데 속수무책으로 남편을 보내야만 하다니, 나는 약이 바짝 올랐다. 다시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올 리 없었다.

그게 어떤 참기름인데…….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남편 손에 그걸 들려 보낸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남편이 어머님께 시골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 뭐 없을까 하고 물어봤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굳이 참기름이 아니어도 나는 내내 남편한테 삐쳐 있던 상태였다. 추석 한 달 전에 예매해 둔 멀쩡한 기차표를 두고 남편이 기어이 하루 먼저 입석을 끊어 올라가버렸기 때문이었다. 내려올 때도 예정과 달리 남편은 우리 셋을 먼저 보내고 하루 늦게 내려온 터였다. 그 모든 게 현장의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남편이 조금만 상사에게 양해를 구하면 될 것 같은데 그는 고집스러울 만치 충성을 다했다.

결혼하고 8년 동안 단 한 번도 남편과 떨어져서 기차를 타 본 적이 없는 나로선 죽기보다 싫었지만 우리 가족의 생존과 직결되는 일 때문이라니 별 수 없이 남편 뜻을 따라야 했다. 우리 시댁은 전남 벌교다. 용산역에서 벌교역까지 기차만 꼬박 6시간 10분을 타야 한다. 거기다 우리 집에서 나오는 시간과 역에 내려 시댁에 들어가는 시간까지 치면 하루는 몽땅 길바닥에 쏟아 부어야 한다. 그 길고 지루한 길을 남편도 없이 8살 6살 두 아들 녀석만 데리고 가야 한다는 건 분명 여행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연히 골이 잔뜩 나서 계속 잠만 자고 애들한테도 짜증만 냈다. 차창 밖으로 넘실대는 온갖 가을 풍경도 남편 없이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랬는데, 올라가는 기차마저 혼자 타야 한다고 생각하니 남편이 너무 밉고 배신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애들한테 미안해서 내 기분에만 젖어 있을 수도 없었다. 이왕 이리 된 거 즐겁게 가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서 내려올 때와는 달리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고 스쳐가는 경치도 맘껏 구경했다. 어찌 보면 무뚝뚝한 남편 없이 셋만 여행하는 것도 가뿐하고 색다른 경험이다 싶었다. 무사히 집에 도착했을 때는 나 혼자 뭔가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서 이만 남편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풀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며칠 동안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랬기에 도착한 그날 저녁에는 남편 손에 먼저 올려 보냈던 짐들을 챙길 경황이 없었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일 수도 있었다. 아마 초저녁에 그 사실을 알았다면 밤새 싸웠을 테니까. 자식 손주 먹으라고 어머님이 정성껏 짜 준 참기름을 어떻게 덜컥 남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한 마디 의논도 없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전 내내 씩씩대던 나는 결국 어머님께 전화로 그 사실을 일러바쳤다. 어머님은 그것 땜에 우리가 싸웠는지를 제일 먼저 궁금해 하셨다. 싸울 시간도 없었다고 하니, 그럼 됐다 더는 얘기하지 마라 하셨다. 저도 먹고 살려고, 윗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한 짓일 테니 이해하라고도 하셨다. 참기름은 다시 짜서 보내줄 테니 제발 그것 땜에 분란 일으키지 말라는 간곡한 어머님의 청 때문에 나는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한테 더 이상 참기름 건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이 무겁고 착잡해지는 것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화가 난 이유가 참기름이 아깝고 어머님의 노고가 물거품이 된 게 억울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오야지한테 잘 보이고 싶어하는 남편의 안간힘이 더 안쓰럽고 속상했던 것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기 전에 다음 일을 걱정해야 하는 남편의 입장에선 그깟 참기름이나 가족과 함께 기차를 타지 못하고 오며가며 불편한 입석에 시달리는 일쯤이야 아무 문제도 아닌 것이었다. 가장의 책임을 다하려는 남편의 처절한 몸짓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져서 나는 며칠 동안 마음이 아팠다.

명절에 한 번씩 타는 기차가 우리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여행이었는데 앞으로는 그것마저 힘들 것 같다. 죽을힘을 다해 살아도 갈수록 팍팍해지기만 하는 현실이, 역에서 홀로 손 흔들어 주시던 어머님 모습만큼이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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