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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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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지


BY 정자 2006-11-05

 

나의 어머니는 남의 집에 새벽예배 드리러 가는시간에 밥하러 가셔야 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가.

그러니까 가정부로 일찍 출근하시는 바람에 우리들 네남매는 우리들의 아침을 준비해야 했다.

밥이야 매일 하는 거라서 별 어려울 것은 없지만

맏딸이고 고명딸인 나는 이 반찬에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특히 도시락은 더 했다.

말그대로 맨 밥은 싸지만 도시락 삼 분이만큼 비워놓고 다닌 적도 많았다.

 

그 땐 연탄 아궁이에 불피우고 연탄재는 걸어서 삼십분걸리는 사거리교차로에 버렸다.

이 연탄불이 아침이 되면 꺼진 적이 많았다. 매일 남의 집에 가셔서 아침을 해 대는 울 어머니가 미처 확인을 못하시면 영낙없이 불꺼진 흰 재만 된 것을 나는 그냥 놓고 학교에 가기도 바빴다.

그러니 도시락을 싸가는 날이 별로 없었다.

영양상태가 당연히 안좋았다.

툭하면 부스럼에 감기는 늘 나의 몸에 붙어서 사는 기생충처럼 늘 달려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울 어머니가 생전 보지 못한 음식을 갖고 오셨다.

그 때는 음식도 흔하지 않은 때.

어쩌다가 계란이나 오뎅이 밥상이 올라오는 날이면 누구 생일이냐고 묻곤 했었다.

분홍색으로 옅게 옷을 입힌 것처럼 색도 먹음직스럽게 보이고. 거기에다가 노란 계란을 쒸워서 지짐을 하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다. 울 어머니가  그랬다. 이렇게 해먹으면 될 것을 얘들이 안 먹는다고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더라. 글쎄...

 

 먹다보니 이상했다. 그럼 엄마? 우리가 먹고 있는 게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여?

아무 말 안하신다. 우리들도 먹던 그 맛있던 소세지를 다시 밥상에 내려 놓았다.

그래도 멀쩡하다 싶은 데, 왜 하필 엄마는 주워 온 애기를 해가지고 밥맛이 떨어지게 하는지 몰랐다.

 

그렇게 엄마는 햄이며, 한 쪽은 살점이 다 뜯긴 고등어 자반이며. 약간은 쉰 내가 나는 나물과, 국과 찌게들을 들고 집으로 밤늦게 돌아 오셨다. 우리들은 무척 싫었다. 왜 남이 먹다남은 것을 갖고 오냐고 화를 마구 내도 너희들은 먹지않아도 된다며 다시 그런 것을 헹구고 굽곤 했다. 그러다보니 우리들도 이젠 당연히 엄마가 주는 음식의 출처를 묻지도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음식들은 엄마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듯 새로 한 것처럼 더욱 맛이 있었다.

 

 한 번은 남이 버린 김치 한통을 이고 오시는라 힘들었는지 나를 보고 허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신다. 늘 있었던 일이라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허리며 발바닥을 두들기고 있는데

 

\" 야야  니는 나중에 어른이 되서 누구에게 음식을 줄때는 말여..우리는 이런 거 잘 안먹어서 그냥 버릴려고 햇던 건디 가져갈려면 가져가요? 이러지 말아라. 알았지? 글고 우리가 안먹는 음식이라고 함부로 다루지도 말고, 못 먹는 음식이라고 헐하게 후딱 버리지 말고 꼭 그래라....\"

 

 울 어머니는 그 말씀을 내가 허리를 주물를 땐 더욱 길게 하고 또 반복을 하셨다.

그 때는 누굴 주고 말고 없이 실컷 먹어보기만 해도 원이 없건만, 엄마는 그렇다고 쓰레기통 뒤져서 버린 음식을 갖고 오지말라고 타박을 주었다.

 

 그런데 울 어머니 말씀처럼 나는 지금 어른이 되었다. 그 어렸을 때와 상황이 백팔십도로 확 바뀐 세상에 살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소세지를 실컷 먹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면서 일부러 여행도 하지 않는다. 이게 그렇게 어머니의 말씀이 주문에 효험이 있나 싶은 데.

 

 특이한 일은 그렇게 잔병을 달고 늘 골골하더니 어른이 되니 그런 게 없어졌다.

살도 찌지 않는다. 늘  조심스럽게 음식을 대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이젠 나의 어머니처럼 나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잔소리같은 글을 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때 연탄불에 소세지지짐을 해 주시던 울 어머니가 이젠 칠십을 바라보신다.

나의 어머니가 늙어 가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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