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밤을 새울 때가 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 때 밤을 새우게 된다.
누군가 마음을 다치게 할 때 그 순간을 잊고 싶어 일찍 잠을 잔다.
그러다 새벽에 깨게 되면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저녁을 먹자마자 잠을 자다 깨어나니 자정이 지나있었다.
오만 것을 참견하던 꽃순이도 잠이 들어 있고, 아들아이도 모로 누워 자고 있다.
배가 고파 커피 우유에 모닝빵 두 개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켰다.
현영이 진행하는 연예가 중계를 하고 있었다.
이름모를 남자 연예인이 신부와 함께 결혼식 예복을 입고 행복해서 웃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끄고 문제지를 풀었다.
이번 토요일 날 워드프로세서 필기시험이 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밤을 새운 적이 몇 번 있었다.
학창시절 벼락공부를 한다고 밤을 새워보고 처음 있는 일이다.
한 시간 정도 문제지를 풀고 답을 맞히다가 오미자 꿀 차를 타서 다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몇 년 전에 봤던 불꽃 연속극을 하는 시간이었다.
나긋나긋 조용조용한 주인공 목소리가 시끄럽던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나도 조용하게 할 말은 하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조용하게 떠나야 한다.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고, 잃는 게 있음 얻는 게 있다.
다시 문제지를 풀고 답을 맞히고 틀린 문제를 연필로 체크해가며 외웠다.
한 회 한 회 문제지를 풀 때마다 한두 문제씩 더 맞춘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도 문제지를 풀고 답을 맞히듯이 정답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문제는 무궁무진하게 다양한데 정답을 찾기가 힘들다.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다른 사람을 만나면 익숙해지고 이골이 나게 마련이고,
이해하고 해결하는 방법이 보일듯해도 결국은 모를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인 것 같다.
새벽안개가 아파트 숲을 덮고 있다.
하늘은 안개 투성이고,
도로와 도로사이 안개가 가로 막고 있어 새벽으로 떠나는 경춘선 강물 줄기 같다.
느티나뭇잎이 글꼴 색을 빨강과 주황으로 바꾼 것처럼 예쁘다.
가을은 하루하루 빠르게 행진을 한다. 으싸으싸 소리 없이 바쁘다.
컴퓨터를 배운지 두 달이 되어간다.
어렵다는 컴퓨터활용능력 필기시험은 한 달 만에 합격을 하고,
쉽다는 워드프로세서 필기시험을 며칠 앞두고 있어서 시험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다.
다만 공부를 안 하면 불안하고 안정권에 접어들기 위해 예비문제지를 풀었다.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자꾸만 슬퍼져 이불을 걷고 거실로 나왔다.
꽃순이가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나를 본다.
꽃순이의 오줌을 치웠다.
이럴 때마다 내가 꽃순이의 몸종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밥 먹여 주고, 목욕시켜주고, 똥오줌을 치워주고,
심심할까봐 놀아주고, 외로울까봐 안아주고,
주말이면 자전거에 실고 호수공원 잔디에서 운동을 하게 해 주니
나는 분명 개의 몸종이 맞다.
밤을 새워서 눈이 아프다.
잠으로 머릿속을 비우려 했는데 이마 쪽이 아프고 등줄기가 뻐근하다.
하루에 네 시간씩 공부를 하고,
새벽에 두어 시간 공부를 했더니 엉덩이가 짜부라 들었나보다 엉덩이도 아프다.
그래도 공부는 그럭저럭 잘 했다. 예비시험 점수가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공부는 노력하면 할수록 점수가 나오고, 점수가 잘 나오니 문제 푸는 것이 재미있다.
그래서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중독이 되어서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요, 하나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노력하면 할수록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사이는 노력의 대가보다는
한번의 잘못으로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닐 때가 많다.
지금 나는 나 나름대로 최선인데 몇 년이 흐른 뒤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까 불안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밤을 지새울 일이 생길 것이고,
오늘처럼 안개 자욱한 첫새벽을 맞을 것이다.
끝이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이 생기고,
잃었던 만큼 비우게 되어 빈 공간을 채우려 노력하게 될 것이다.
공부하며 밤을 새울 일도 한 때이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각이 생각을 낳을 때도 한 때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