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귿자로 생긴 복도 끝에 컴퓨터 교실이 있다.
여자들만 북적거리는 곳이라 그런지 복도를 꺾어 들 때마다 전신 거울이 하나씩 놓여 있다.
뒷문도 앞문도 없고 유리창도 달려 있지 않은 교실로 통하는 문은 단 하나뿐인데,
하나뿐인 나무색 문을 열고 들어가면
두개씩 붙여 있는 널찍한 책상위엔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 있다.
교탁 쪽으로 엉덩이를 내밀고 학생 얼굴을 향해 앉아 있던 컴퓨터는
본체에 붙은 단추 하나만 눌러주면 감은 눈을 번쩍 뜨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여고시절 교실 복도는 일자형이었다.
복도 벽마다 교실 너비만큼 긴 신발장이 냄새나는 신발을 받아서는
수업 끝날때까지 물고 있었고,
신발장 끝과 끝에 선생님 키높이 정도에
얼굴만한 유리창이 달려있는 나무문이 하나씩 있었다.
뒷문은 주로 학생들이 이용하고 앞문은 선생님 전용이었고,
뒷문을 열면 문 옆에 직사각형 작은 거울이 교실마다 붙어 있었다.
좁은 책상이 두개씩 다정하고, 서랍이 달리는 않는 책상 속에 도시락을 넣어 두고
먹성 좋은 짝꿍은 선생님 몰래 밥 한 숟가락씩 입에 넣곤 했었다.
첫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컴퓨터만 마주하고 혼자씩 앉아 있다가
선생님이 둘씩 앞쪽으로 앉으라고 해서 대충대충 짝을 짓다보니
그 짝이 계속 짝으로 남아 이름은 놔두고 짝꿍이라 부르게 되었다.
반지하 교실은 유리창이 없어서 상자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았고,
물건 쌓아두는 창고에 들어 온 것 같아 처음엔 쉬는 시간만 되면
디귿자 복도를 지나 센터 들어오는 입구 소파에 앉아
커피와 함께 조금이라도 맑은 공기를 마셨는데
나중엔 익숙해져서 동굴 속처럼 으슥해서 색다르고 푸근했다.
칠판은 이동식 칠판인데다가 분필가루가 날리는 칠판이 아니고
하얀 칠판에 검정 펜으로 쓰는 신식 칠판이다.
이런 칠판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선생님 컴퓨터 앞에 확대기가 달려 있어
칠판이 화면이 되어서 영화도 볼 수가 있고,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것을 그대로 볼 수가 있어 실기 배우기가 편리하다.
여고시절 교실은 일층이었다.
교실의 반은 창문이고 창문 바깥은 뒷교정이었다.
교정 개나리 울타리 안에 앵두나무 언덕이 있어서 봄날 노란 꽃이 바닥에 널브러지면
앵두꽃이 뭉게구름이었다.
하르륵 하르륵 앵두꽃이 떨어질 때면 선생님 소리에 귀를 열어놓지 않고
꽃잎 떨어지는 소리에 눈과 귀를 열어 놓았었다.
타닥타닥 칠판에 글씨 쓰는 소리, 사삭사삭 글씨 지우는 소리,
쉬는 시간이면 당번이 칠판지우개를 양쪽 손에 대고 박수치듯 분필가루 털어내는 소리,
분필 먼지가 바람타고 교실로 뽀얗게 되돌아오면 당번 탓을 하던 아우성들…….
분필 털던 창문 건너편에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을 가려면 신발을 갈아 신고 수돗가를 돌아 돌아 가야하는데,
창문을 넘어 열발자욱이면 바로 화장실이었으니
우린 치마를 걷어붙이고 실내화를 신고 화장실로 몰래 드나들곤 했다.
공부보다는 글을 더 많이 썼던 여고시절은 분필가루처럼 어디로 날아갔는지.......
액자하나 걸려 있지 않은 컴퓨터 교실은 화분이 있어도 살 수 없는 환경이다.
교실 뒤엔 문짝이 맞지 않는 길쭉한 장이 있는데,
꼭 여고시절 공중목욕탕 옷장 생각이 난다.
그 안에 속옷을 훌러덩 훌러덩 벗어 넣고선
노란 수건으로 중요한 부분을 자꾸만 자꾸만 가렸던 생각이 자꾸만 난다.
셋째분단에 두 번째 줄 가장자리가 내 자리다.
책상이 넓어 가방도 올려놓고
녹차 담긴 종이컵도 올려놓고
두꺼운 컴퓨터 책도 올려놓을 수 있다.
30개의 책상에 13명의 단출한 학생이 앉아 있어 몰래 탄 짓도 졸수도 없다.
한눈에 다 들어오기 때문이다.
창문으로 솔솔 들어오는 나뭇잎 냄새는 없지만
내 마음속에 창문을 열고 여고시절로 돌아가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로 쪼르륵 달려가고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까르륵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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