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볼일도 없는데 시장에 갔습니다. 한바퀴 돌아보았지만 살 것도 마땅찮고 해서 발길을 돌리는데 고종 올케를 만났습니다. 저지난해 고종오빠가 뇌출혈로 돌아가고 혼자서 살고 있는데 올케는 무릎 관절염으로 보행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나를 보자 무척이나 반가와 하면서 고모 제사 장 보러 왔다고 했습니다. 나는 고모가 올케한테 무지하게 시집살이를 시키고 힘들게 한 걸 잘 알기에 “아들도 없는 할마씨 제사 대충 지내라”고 하자, 올케는 고모 있을 때가 좋았다면서 연신 눈물을 닦았습니다. 고모가 운명하셨다는 부음을 받고 가는데 오늘처럼 비가 억수로 퍼부었습니다. 나는 고모 빈소에 향을 꽂고 정말로 섧게 울었습니다. 바깥에서 누가 저렇게 슬프게 우느냐고 묻는 소리도 들리고 친정 질여 라고 대답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여자로서 고모 한평생이 너무 가엽고 불쌍했습니다. 고모는 집안에서 제일 막내인 나를 특별이 귀여워했고 다들 고모를 무섭다고 했지만 나는 고모가 오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고모 돌아가시고 친정 질여 로서는 내가 제일 먼저 갔습니다. 고모는 17살에 3대독자 외동아들에게 시집가서 18살에 청상과부가 되였습니다. 그때 고모는 오빠를 임신 중이였고 시댁에는 돌봐 줄 친인척이 마땅찮아서 친정에 와서 유복자를 낳고 길렀습니다. 고모는 키도 크고 인물도 보름달처럼 잘 생겼고 매사에 막힘이 없었습니다. 사돈지 제문도 잘 지어서 내가 시집 올 때도 고모가 一筆揮之로 사돈지를 써 주었습니다. 배짱이 두둑했던 고모는 가끔 큰엄마나 엄마 아부지한테 조금 서운한 게 있으면 푸념을 늘어놓고 내가 왜 이렇게 사는 줄 아느냐고, 개가 할 수도 있지만 친정 흉 안 낼라고 이런다면서 시누이 노릇을 엄청 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어릴 때 큰엄마가 “억시기도 무세라 저래 노이까네 팔자가 드세제” 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성격이 활달한 고모는 부엌에 나와 간섭도 자주 했습니다. 지금부터 50여 년 전에 오빠가 중학교 들어갈 쯤 고모는 오빠를 대리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수완이 좋았던 고모는 리어카를 한 대 사서 장사를 했습니다. 리어카에서 새우잠을 자며 오빠가 중 고등을 졸업 할 무렵에 엄청나게 돈을 벌었습니다. 시댁 동네에 논밭을 20여마지기 넘게 사고 오빠는 교사로 발령을 받아서 흔히 말하는 錦衣還鄕을 했습니다. 오빠월급에다 논밭도지에다 고모네 살림은 해마다 불어나서 섣달금적이면 또 땅 샀단다하고 소문이 왔습니다. 오빠가 장가가서 손자 들이 태어나자 고모는 아이들을 데리고 대구에 가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내가 고모 보러 대구에 갔는데 고모는 손자4명을 뒷바라지하면서 옆방에 대학생들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종이에다 핀 침을 꽂아주고 반찬값을 번다고 했습니다. 나는 고모가 부자고 하니까 점심을 잘 해줄지 알았는데 된장 한 가지로 점심상을 차려 주었습니다. 은근히 속이 상해서 그렇게 돈 벌어서 뭐하느냐고 물었더니 손자들 앞으로 집 한 체씩 장만 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 뒤 고모는 땅도 정리하고 해서 대구 모 대학 후문 쪽에 집4체를 사서 손자들 한 체씩 마련해 주었습니다. 돈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 오빠월급도 고모가 받아서 올케한테 생활비 주고 집에 돈이란 돈은 다 고모 손을 통해서 지출이 되었습니다. 오빠나 올케는 고모한테 불평한마디 못하고 40이 가까운 아들 종아리를 회초리로 치는 것은 보통이였습니다. 손자들이 학교를 다 마치자 고모는 시골에 직접 구상을 해서 커다란 기와집을 지었습니다. 서까래 하나하나 다 가서 골라 팔작지붕으로 지었는데 온 면이 떠들썩할 정도로 집을 지었습니다. 그때 공사비로는 큰 돈이었는데 고모는 과감하게 투자를 했습니다. 집들이 할 때 나도 갔는데 대청에 앉아서 축하받는 고모가 대단히 위대해 보였습니다. 그때 오빠는 교장 연수 중이었고 손자들도 일류대학에 다니고 해서 모두들 고모 손을 잡고 많은 축하를 했습니다. 그 날 고모는 천년 집터도 보여준다며 친정시구들을 집 뒤로 대리고 같습니다. 그 날 고모는 가묘자리에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혼자서 살아온 세월이 허무하고 오빠가 딸이었으면 개가를 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외롭게 살아온 고모의 삶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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