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마당엔 큼지막한 감나무가
한 그루 버티고 있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감의 색깔이 더욱 붉어지고 있으며
낮이건 밤이건 간에 무시로 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렇게 벌써부터 땅으로 떨어지는 감들은
생존경쟁에서 진 녀석들이다.
하기야 지금 달려있는 감나무의 그 숱한 감들이
모두 홍시로 익는다고 한다면
아마도 크고 실(實)한 놈은 없고 죄 허(虛)하고
비실비실한 감들로서만 귀결될 것이리라.
작년 만추(晩秋)때 마당의 감나무가 모두 익어
보기만 해도 황홀할 지경의 홍시들이
주렁주렁 달렸을 적의 일이다.
방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길을 가던 사람 둘이
별안간 손에 닿지도 않는 감나무를 올라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곤 홍시를 몇 개 따다가 그만
나에게 딱 걸리는 사단이 벌어졌다.
\"젊잖으신 분들이 이게 뭡니까?\"라고 혼을 내 보냈지만
남의 물건을 그리 쉬 탐내서야 쓰겠나 싶어
마음이 언짢았음은 물론이었다.
오늘 신문에서 서울 청계천에 심은
사과가 하지만 누군가가 따 간 바람에
초여름까지만 해도 그 열매가 2500개나 있었는데
지금 살아남은 건 고작 28개 뿐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순간 명색이 수도 서울의 시민의식이
고작 그 정도 밖에 안 되었나 싶어 어처구니가 없다 못 해
공연히 부아까지 치밀었다.
상황이 이같이 엉뚱하게 전개되자 당혹해진 청계천 관리자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은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사과 지키기 작전\'에 나서 공익근무요원과
주민 자원봉사자 등을 동원했다고 한다.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노라면
지척에 은행나무가 있는데 요즘엔 참새 떼들이
몰려들어 어찌나 왁자지껄한지 보기만 해도 정겹다.
사람은 동물 외에도 식물도 어울려서
살아야 정서에도 좋은 법이다.
청계천의 사과를 그냥 모두 익게 두어
그 장관을 아이들도 데리고 가서 구경을 하고
더불어 동물들이 와서 그걸 식량 겸 간식의
용도로서 먹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은 사과가 한창 출하되는 즈음이어서
돈을 주고 사 먹어도 그리 비싸지 않다.
그러함에도 그 푼돈을 아끼자고 서울 도심의
어떤 명물인 청계천의 사과를 모조리 따 간다고 해서야
부끄러워 어디 말이나 꺼낼 수 있을 손가 말이다.
가수 이용 씨는 지난 80년대 부터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는 노래를 부른 바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청계천의 사과마저
죄 따 가는 에고이즘 극치의 상황이라면
종로에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건
어쩌면 아직은 언감생심이 아닐까 싶어 거듭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