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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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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사기꾼과 어머니)


BY 영영 2006-09-16



컴컴한 꼭두새벽부터 술렁술렁한 집 분위기에 나까지 덩달아 잠이 깨서는 
동그란 눈을 비비면서 마당으로 나오니 아버지와 머슴아저씨가 광으로 곡간으로 
잃어버린 물건이 무엇인지 분주하게 살림을 조사하는 중이고, 어머니는 
찬광에서 놋그릇 한궤짝과 아버지의 은수저와 주발세트가 없어졌다며 
부엌에서 앞치마에 손을 탁탁 털며 나오신다. 
밤 사이 도둑이 들었는데 잡히지 않으려는 액 땜으로 우리집 뒤꼍에다 
똥을 두군데나 눠 눟고 도망갔단다. 
형사처럼 집안 곳곳을 샅샅히 조사하신 아버지는 똥 무더기가 두군데이니
필시 도둑놈도 두놈이었을거라는 단정을 내리셨다. 
줄줄한 자식들의 양식때문에 밤만 되면 남의 집 담을 넘나드는 밤 손님이 
들 끓던 새마을 운동 이전의 웃지못할 어려운 시절이었다.

뒤로는 선산이 길게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유난히도 도둑이 든 집이라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높은 기와 담장이 사방으로 둘러 쳐진 집,
사람들은 우리집을 근방에서 제일 땅이 많은 부자라하여 최부자집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집안의 부를 끝까지 지키시지 못했다. 

당신연령이 환갑을 넘어 점점 늙어 지시는데 땅이 많은 만큼 
일 손은 점점 딸리고,, 일일히 남의 손을 빌려 그 많은 일을 하려니 속 썩고 
일년농사 지어 남의 품삭으로 다 나갈것이라는 명목으로 
차라리 땅을 팔아 서울에서 집장사를 하면 형님의 노후가 훨씬 편하시지 않겠냐는 
숙부의 권유에 귀가 솔낏한 아버지는 그만 일방적으로 땅을 몽땅 팔아 치우신거였다.
그러나 숙부의 소개로 만난 집 장사 아저씨는 사기꾼이었다. 그 많던 재산이 
흔적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 쨍쨍하던 살림이 하루아침에 기우는 시련을 격으면서도 어머니는
한번도 아버지를 대 놓고 탓하거나  하루아침에 형님의 신세를 망치게 한 
시동생에게 이렇다 저렇다 따져 보지도 못하는 한마디로 자신을
야물스럽게 챙길줄도 모르는 지금생각하면 어머니는 성격이 겉보기완 다르게 
참 헙헙한 분이셨다..

나는 테어나서부터 아버지가 병환으로 71세에  돌아가실때까지 
어머니와 아버지 두분이 큰 소리 내며 다투시는걸 본 기억이 없다.
나는 부부쌈이라는걸 어떻게 어떤식으로 해야 이기고 지는 
승부수가 나는건지, 한번의 눈팅도 못 해보고 컸다는것이다.
마을에서 누구네가 술을 먹고 밤새 주정을하고 싸웠다 그러면 
어머니는 
\"우리 바깥양반은 다니시며 그리 술을 드셨어도 식구나 애들 앞에서 
여태껏 흐트러 지시는걸 못봤구먼?\" 이라고 하시며
남들 앞에서 아버지를 치켜 세우는 말씀을 어려서 자주 들은 기억이있다.
날마둑 술태배기 서방에게 눈탱이가 밤탱이 되도록 쥐어 터진 건너편 
경자네 엄마나 복철이 엄마에겐 어머니가 잘난척을 엄청 하신셈이다.
몰론 예전 아버지의 철저하신 그 바른 성격은 지금 친정 오빠들이나
남동생이 고대로 똑같이 하고 있어서 올케들이 편안한 삶을 누리고는 있다.

좌우지간 그랬어도 어머니도 한 인간일진데 집 재산이 하루아침에 
날라가는 고초를 격으면서 어찌 속이 편안하셨으랴..
어머닌 틈만 나면 책을 보셨다.
학교 끝나고 집에와서 \"엄마\" 하고 대문안으로 들어오면
어머니는 마루 끝에서 안경 넘으로 응~ 그래? 배고프지? 밥먹어..
하고는 연신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셨다.
대청마루 책 꽃이에는 삼국지 대망등 질로된 무거운 책들이 꽉 꽃혀 있었고
메밀꽃 필무렵. 이광수의 사랑. 무정. 흙 등의 소설집도 
그득하게 있었다.그외에 몽마르뜨 언덕. 닥터 지바고등 외국 소설들은 없었겠는가..
나는 늘상 손에 바느질거리 아니면 책을 들고 있는 어머니때문에
어려서 심심할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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