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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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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머리 어디서 했어?


BY 정자 2006-09-14

날씨좋고, 가을바람이 솔술불고, 할 일도 별로 없는 아줌마는

오늘 같은 날 파마를 하면 정말 좋겠다 싶어

시내 단골 미장원에 갔더니.

정기휴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더니

미장원 앞에는 마늘한 접에  만원 만원!하고

나처럼 모처럼 나온 할머니는 정기휴일을 보고

오늘이 뭔 날인데 쉬는 날이냐?

글쎄유... 나는 오기만 하면 용케 휴일날 찾아오네유...

 

머리염색을 할려고 염색약도 따로 사왔는 디.

버스올려면 아즉 한 참 멀고

우짤까 ...

 

비닐 봉다리에 하얗게 이쁜이를 드러내놓고

바람에 휘날리는 모델이 새겨진 검정 몇 호인가 하는데.

 

어디 다른데도 다 쉴려나. 죄다 오늘은 미용실이 쉬는 날인가 벼..

나도 머리파마가 하고 싶은 데, 이 할머니는 하루바삐 염색을 하여

이번 주 누구 결혼식에 가야 한단다.

 

나도 잘 모르는 미용실 정기휴일을 말하기도 그렇고.

할 수없이 내 차에 모셔 여기저기 미용실 간판을 뒤적이고 다녔지만

진짜 죄다 쉬는 날인가 문이 열어 놓지 않았다.

뱅글 뱅글 잘 돌아가던 미용실 간판은 모두 멈춰 있었다.

 

아이구 ..할머니 천상 내일 하셔야 겠네유. 미용실 문 열어 논 데가 없는데유.

그려..그럼 우덜 동네 근처에 야메로 하는데 있는데 나 거기까진 태워다 줘 봐.

거기도 쉬면 내일 해버려야지 뭐.

 

나도 덕분에 이름만 들은 그 대추가 많이 난 다는 동네까지 가는 셈치고

가는 길 중간 중간에 작은 냇가를 잇는 다리를 두개 넘어 산하나 돌고.

이제 연두색으로 있다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사잇길로 두런 두런 거리면서

동네에 진입하니 꼭 육십년대에 느닷없이 타임머신타고 도착한 기분이다.

 

마침 그 미용사가 오전의 햇빛이 따뜻하게 고루고루 펼친데에 이제 막 딴  물고추를 널고 있었다.

 

아이그..나 머리 염색 좀 해 줘? 시방도 바쁜 겨?

미용사라고 해서 난  머리도 이쁘장하게 여기저기에 조금씩 브릿지도 하고. 이쁜 화장도 하고 있을 내 예상은 전혀 다른 곳으로 뻗었다.

 

우선은 할머니부터 머리 염색을 시켜놓고, 애기엄니는 좀 있다가 해유?

난 한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얼결에 할머니와 같이 파마를 하기 시작했다.

 

시내에 가니께 죄다 미용실이 쉰다는 거 아녀. 그려서 이 애기엄니도 마츰 파마하러 왔다가 나랑 만나서 같이 들어온 겨. 그니께 싸게 해줘? 잉.

 

그렇게 얼결에 난데없이 듣도 보도 못한 시골에 반은 보이고, 반은 거무튀튀한 반달경의 거울 앞에 보자기를 뒤집어 쓰고 앉아보니 이것도 싫지는 않다.

 

 내머릿결이 원체 건강해서 한 반나절은 있어야 머리가 나올 것 같다고 한다. 할머니는 한 두시간만 하면 되는 데, 그래도 나랑 같이 왔으니 기다려 준다고 하신다.

그렇게 금방 점심나절이 되니 미용사 아줌니가 국수를 삶아 먹자고 한다.

그제야 뒤를 돌아보니 세면대가 아닌 싱크대가 보이고, 원래 저런 색이었을 까 싶은 가스렌지가 시커멓게 있었다. 구텅이엔 양은 냄비가 있고, 그 위에 샤워꼭지가 대롤대롱 붉은 나일론 끈올 매달아 묶어 놓았다.

 

 국수를 먹고 난후 할머니 머리를 푸시는데, 머리헹굴 땐 어쩌나 나는 걱정 했었다.

그런데 할머니를 모시고 싱크대에 머리를 넣으라는 게 아닌가.

할머니도 자연스럽게 머리를 디밀고 가스렌지에 물 데워놓은 걸로 찬물은 샤워꼭지에서 쭉 빼어 알맞게 온도를 손을 맞추더니 바가지로 머리를 헹궈내고 샴푸을 한다.

 

린스까지 한 후  염색물이 뚝뚝 흐르는 수건을 두르고, 얼른 의자에 앉으시니 아이구 이렇게 개운한디....

 

 할머니의 어깨를 그제야 미용사가 주무른다. 머리도 가볍게 손끝으로 튕겨주시고,

파마가 아주 잘 나왔어요. 인제 한 일년 파마 안하셔도 찐하네요.

 

나는 은근히 걱정이다. 생전 듣도 보던 못하던 야메미용실에 와서 세면대가 아닌 싱크대에 머리 샴푸한다는것도 처음 본 일이고, 나의 머리도 내심 걱정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할머니 혼자 하라고 했을 걸 .

그렇게 나도 머리풀고 씽크대에 머리 디밀고 샴푸하고 린스하고 드라이 하고 거울을 봤는데.

 

생각보단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비록 조금 후진 미용실이라 괜히 걱정을 하긴 했지만.

나랑 할머니는 그렇게 처음 만난사람끼리 엉뚱한 곳에서 파마를 했다는 것도

참 재미있고.

 

집에 돌아오니 울 남편이 내 머리를 본다.

그 머리 어디서 했어?

왜?

나도 하게!

 

그려,,그럼 다음에 같이 가지 뭐!

 

그런데 울 남편은 양동이에 대야를 가져가야 되나.  안 그러면

난리법석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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