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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머니 돌아가시던날....


BY sim0707 2006-09-13

결혼하고 8년이 지난 어느날 아버지로 부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목장일을 하고 애들을 당분간 근처 친가에 있게하고, 포천으로 향했다.

할머니 연세가 90 이시니, 별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지난 추석에 갔더니, 화장실에서 쓰러지셔서 몸져 누워계셨다.

그전까지는 워낙 소식을 하시는데다 건강하셔서 편찮으시지도 않았던 노인이시다.

슬하에 육남매를 두시고 손주들이 거의 출가해 증손까지 있으시니,

뵐때마다 애들이름을 다시 물으시곤하셨다.

 

포천에 도착하니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고모들 모두 계셨고,

사촌들도 하나씩 도착중이였다.

이렇게 서로 다 모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였다.

특히 울산에 사시는 고모네는 내가 결혼할때 뵙고 처음이라 남편은 우선 어른들께

인사하기 바빴고, 사촌형부는 군인이라 명절에도 잘 못만나는데, 정말 반가웠다.

저녁이되자 종종어른들이 오시기 시작했고, 영안실문밖에 국화근조환이 즐비해져갔다.

그도 그럴것이 육남매들의 친구며 회사에서 하나씩만와도 근조환은 여느집보다 많을터인데,

옛날부터 포천에선 내노라하는 양반종갓집이니 근조환이 수십개가 되었다.

손님이 넘쳐 영안실 두개를 써야할판이 되었다.

 

할머니는 일본에서 할아버지와 결혼을 하셨다.

일본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한국에와서  호롱불을 처음 보셨다고 했다.

6.25때 할아버지께서 북으로 북송도중 사살되고  시신도 간신히 찾았다고 했다.

그후로 종갓집 살림은 온전히 할머니의 몪이 셨다한다.

 

그런데, 종갓집 할머니치고 할머니께선 솜씨가 정말 없었다.

내가 어릴적 큰아버지댁에 일하시는분이 계셨던걸로 기억하는데, 그송씨아저씨는

내가 초등학교 무렵 고향으로 떠났었다.

늘 일하는 사람이 있던터라 할머니는 일을 해본적이 없으셨다.

할머니는 송편을 정말 못 만드셨다.

어려서부터 곱게 자라서 깔끔하게 단장만하실줄 아셨지 송편은

어린 우리들보다 더 밉게 만들었다.

한번은 사촌오빠가 못생긴 송편을 새댁이었던 언니가 만든거냐고 놀리니 언니는 화를내고

할머니께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버리셨다.

딸을 셋이나 낳고 아들을 낳은 엄마는 그래도 할머니가 신식이라 아들 못 낳는단 소리는 안들어 봤어 하시기도 했다.

내 기억으로도 할머니께서 며느리들을 시집살이 시키시는 분은 아니셨던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가족들 모두 상복으로 갈아 입었다.

아버지 사촌들께서도 상복을 입으셔서 상복 입은 사람이 정말 많았다.

70이 넘으신 큰아버지와 60이 넘엇고 병약하신 어버지는 손님들의 문상를 받기엔 너무 불편해 보였다.

보다못한 사촌오빠가 잠시라도 앉으시라고 의자를 내드렸는데, 종종 어른들께서

죄인이 어찌 앉아 문상을 받냐고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저녁이 되자 아버지는 위 수술을 받으신 분이라 점점 병환이 얼굴로 나타났다.

나는 주전자를 들고 상복을 입은체 운전을 하고 나가 설렁탕을 사왔다.

매운 음식을 못드시는데, 영안실 음식이 탈이 나신것 같아서 였다.

 

삼일째되는날 꽃상여에 할머닌오르셨다.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할머니도 드디어 떠나시는 것이다.

장사 내내 육촌 동생이 디카에 장면들을 담았는데, 산에 오르자 점심이 지나서도 절차가 다 끝나지 않았다.

오랫만에 모인 손주들은 사촌끼리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들고 하다 고모들에게 혼줄이 났다.

상복을 입고도 저렇게 철없게 구는것들이라고 야단을 쳐도 그때뿐 또,히히덕 거렸다.

드디어 할머니가 땅속에 누우셨다.

 유난히 발이 작았던 할머니, 백발이 무서워 애들이 하얀 할머니라고 부르던 할머니, 90이 넘도록 일이라곤 안해보셔서 곱디곱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할아버지 없이 살았을 외로운날들....

그런 많은 날들이 잠깐의 눈물로 기억되었다.

이런 대가족이 싫어 친가 없는 집으로 시집온 나는 살면서 대가족의 소중함 사촌들 육촌들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아직도 상여를 메고, 종종 어른들의 말씀이라면 그래도 따르는 큰집 사촌 올케언니들,

그리고, 70이 넘은 자식들이 90순 노모의 장례를 힘들게 치르는 모습들...

손주사위에게도 함부로 말을 놓지 않으셨던 할머니...

그 어떤 고단함보다 대 가족속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가던 많은 것들...

장례내내 그 많은 사람이 가족들이 함께 자고 일어나면서도 누구하나 얼굴찌푸리게 하지 않는 절재된모습들.

조상을 섬기고 윗어른을 섬기는건 바로 내자신을 섬기고 귀하게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할머니 돌아가신날 슬픔보다 가슴따스함이 느껴지던건 가족이 있어서가 아닌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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