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꿈은 어쩌면 퍼즐조각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꿈을 완성하기까지 길을 찾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고 또,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만큼 인내심을 요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이루고 싶은 꿈을 생각하면 즐거워지고 행복한 마음으로 그 곳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나도 서두르거나 욕심 부리지 않고 즐기면서 내 꿈을 이루고 싶다.
나는 나무를 가꾸고 화초를 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내 퍼즐 그림을 구상하고부터 더욱 나무와 친해 졌다. 처음 과일나무를 심고 이 나무가 언제 자라서 과일이 열려 따먹게 되나 성급한 마음만 앞세우다가, 적절한 시기와 때를 기다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충분한 영양과 정성으로 돌봐야만 그의 상응하는 값을 얻는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몇 년 전, i m f의 회오리는 기업체나 사회 전반에 걸쳐 구조조정이니 명예퇴직이니 하여 중년의 가장들을 일터에서 내몰았다. 서슬 퍼런 구조조정의 칼날은 우리 가족에게도 밤잠을 설치게 했다. 수많은 가장이 일터를 떠나갔다. 날이 무디어 졌음인지 다행히 남편은 퇴사의 회오리는 비켜갔다. 한바탕 태풍의 혼란을 겪고 나자 모든 것이 애틋했고 감사하고 고마웠다. 가족, 친구, 이웃 남편의 주위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현실은 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획일화 되어가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을 나누고 베풀며 다함께 공유하며 행복해야 할 인생이었다.
사람에게는 위기가 닥쳐왔을 때,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트이는 법인지 비빌 언덕 같은 위안처를 갖고 싶었다. 퇴직을 하면 작은 집도 짓고 텃밭도 가꾸며 살아갈 곳에 터전을 마련해 두고 싶었다. 마지막 보루가 될 그곳에 농사일에는 문외한인 우리 가족은 무턱대고 단감, 대추, 밤, 매실, 등을 심고 어설픈 농부 흉내를 내고 다녔다.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심는 것이고 또 다른 희망을 키워가는 것이다.
깨알같이 작고 낮은 몸짓으로 피어나는 들꽃과, 자신의 영역에 뛰어든 침입자에게 항의하듯 튀어나오는 작은 곤충들까지 함부로 할 수 없는 소중한 나의 벗이기도 했다.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농원의 작물들은 그리 만만하게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자라주지 않았다. 온갖 잡초는 나를 비웃듯 번창하였고 채소는 영양실조 걸린 아이처럼 베슬베슬 말라갔다. 혹자들은 도회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쉬운 말로 ‘시골로 내려가 농사나 짓지.’ 하는 그 말이 얼마나 무지의 소치인지 깨달아 갔다. 가끔 텃세를 부리며 나를 당황하게 하던 촌로의 몽니도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 퍼즐 조각의 일부였다. 고구마, 토마토, 오이, 고추, 상추, 등 채소를 심어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내 밥상에 올리면서 자연이 깃든 소박한 풍요와 원초적인 만족을 얻는 것은 금전으로 사지 못하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이제 내 퍼즐 그림은 절반의 절반쯤 매꿰 가고 있다. 그림의 중앙에는 아담한 황토 집이 있고 대문은 따로 없다. 언젠가 제주도에 갔을 때 눈여겨 보아둔 것을 본 따 나무 막대기를 두 개쯤 걸쳐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건망증을 달고 다니는 내게 열쇠를 챙길 필요가 없어 안성맞춤이었다. 대문 옆에는 작고 예쁜 빨간 편지함을 걸어둘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길 들려진 나의 심성에 향수를 느끼게 하고픈 까닭이다. 걸쳐 둔 막대를 치우고 마당으로 들어서면 푸른 잔디가 이불처럼 마당을 덮고 있다.
개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마당 한 쪽에 진돗개 한 쌍을 데려다 놓을 생각이다. 마당 오른쪽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작은 화원을 꾸밀 것이다. 이름 모를 들꽃이며 채송화, 패랭이, 사랑초가 키 자랑을 하게하고 그 뒤로 매 발톱, 꽈리, 붓꽃과 접시꽃도 화사하게 서있게 할 것이다. 그리고 화원 옆에는 느티나무를 심어 그 아래 대나무로 만든 평상을 놓을 것이다. 그 평상에서 이웃과 친구를 불러 시원한 콩국수를 말아 나누어 먹고 싶다.
대문왼쪽으로는 텃밭을 일구어 사시사철 채소가 풍성할 것이다. 봄에는 매화가 달빛아래 은은하게 꽃비로 내릴 것이고, 가을이면 단감이 노을처럼 붉게 타오를 것이다. 황토 집에 들려 놀다 가는 이의 손에는 항상 빈손으로는 보내지 않을 만큼 푸성귀는 넉넉하게 가꾸어 둘 것이다. 마당을 등지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작은 자갈돌이 깔려 있고 윤기 있게 반짝이는 배불뚝이 항아리에는 장이 구수하게 익어간다.
포근하고 아늑한 황토 집에는 장식이나 가구를 거의 놓지 않을 작정이다. 거실에는 다리가 짧은 투박한 통나무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집을 찾아드는 길손을 맞아 차를 나눌 곳이다. 구수하고 아릿한 감잎차와, 향긋한 녹차, 향이 좋고 감미로운 쑥차를 준비해 놓고, 언제든지 누구라도 대문 없는 황토 집으로 와서 차를 들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서쪽으로 난 방에는 북쪽에 창을 내고 졸졸 개울물 소리와 밤하늘의 별빛이 그 방을 엿보게 할 것이다. 별과 바람과 자연의 내음을 불려 들인 그 방에서 지나온 연륜을 물감에 섞어 내 영혼을 밝히는 그림을 그리리라.
그곳에는 번듯한 문화생활도 안락한 공간도 필요치 않다. 지천으로 안겨오는 자연의 냄새와 햇볕과 물과 공기의 풍족함에 만족할 것이고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작은 것에 기쁨과 즐거움을 얻기를 소망한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퍼즐 그림의 완성이다. 내 인생 여정 길에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잘되고 좋은 꿈만 내 인생을 채워 주었던 것은 아니다. 나를 스쳐간 모든 사람들은 내 인생길의 동반자였으며 내 꿈의 일부였기에 그 사람들을 사랑한다. 아직 채워 넣어야 할 퍼즐 조각이 많이 필요하지만 조급하지 않게, 주어진 여건대로 억지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이루어 가리라. 내 꿈의 완성은 아마도 가족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었기에 꿈 꿀 수 있고 아픔을 삭이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지 않았나한다. 내게 퍼즐 그림을 제공하고, 평생을 내 가족을 위해 수고한 남편과 그곳에서 오래도록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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