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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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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때론 바보가 되고 싶다.


BY 진주담치 2006-09-06

오늘 살 끝에  닿는 바람은 어여쁜 아가씨의 커다란 눈망울같이

서늘함이 느껴진다.

그 서늘함에  옷깃을  여미고 돌아올 계절을  기대한다.

베란다 화분 속 동양란이 조심스레 꽃대를  들어 올리며

함초롱이 꽃잎을 열었다.  

 3줄기에서 피어난 여러개의 꽃송이에서  피워내는 그 향기가

내 콧끝에서 오래도록 머무른다.

온 집안을 온통 이 몽롱한 향기로 휘감아 나 역시 정신을 잃을 정도이다.

아, 이 향기는 참 신비롭다.   저 작은 방울에서 어찌 이런 향기가.

내 글 솜씨로는 이 향기를 표현해낼수 없구나.

 

나도 때론 공기처럼, 저 화분 속 난꽃처럼, 높은 산위의 소나무처럼

생각도 하지않고 그저 존재만 하고 싶다.

사고(思考)하지 않아도 향기를 내뿜고, 산소를 제공하고 안식을 주는 그런 존재.

가끔은 생각없는 그런 바보이고 싶다.

생각은 망상을 낳고, 욕심을 잉태하고, 탐욕을 키울 뿐이다.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때론 잊고 싶다.

 

나도 때론 눈 먼 바보로  살고 싶다.  앞을 못 보는 그런 장님이 아닌.

뒤에 숨은 이면(異面)을 못 본채 , 아니,무시한채, 그저 보여주는 것만 보는

그런 장님 말이다.

내심을 파악해보려고 하면 피곤해. 머리가 아프고  의심이 생겨.

그러면 믿음이 깨져서 가슴에 상처가 생긴단 말이야.

나는 눈이 멀어서 맹목적인  그런 사랑을 하면서 살고 싶다.

애인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내 사랑이 이용당하면 어때?   사랑은 주는데 의미가 있는거잖아.

사랑의 가치는 받는것이 아니라 주는것으로 그 효용은 끝나는것이야.

그 사랑이 독(毒)으로 내게 돌아온다해도 할수 없지, 뭐.

 

나도 가끔은 순서를 세지 못하는 바보로 살고 싶다.

은행에서, 버스 정류장에서,마트에서 새치기 당해도 그걸 알지 못하는 그런 바보말이다.

그들의 바쁨에, 서두름에 시간이 많은 내가 참아야지.

10분,30분,1시간 늦으면 어때.  

아직 내겐 평생 남은 시간이 수천, 아니 수만 시간도 더 있는걸.  그지?

늙은 부모가 기다리는군. 아이 혼자 두고 왔나봐.  이그,가스렌지에 찌게 올려놓고 왔군.

너그러운 내가 참아야지.

 

나도 가끔은 경기에서 져도  즐거운, 그런 바보로 살고 싶다.

골프칠때 라운딩 멤버가 파(par)나 버디(birdie)를 하며 환호성을 지를때

보기(bogey)나 더블, 트리플 보기(bogey)를 연거푸 해도 혼자 회심의 미소를 띠며

즐거운 그런 바보말이야.      똑같은 입장료내고  그 공기좋은 잔디에서 더 많이 치고 오면

내가 훨씬 이득이잖아.    쯧쯧. 저 사람은 80대의 탓수를 치고 즐거워하다니?

바보, 난 90타,100타를 넘게 쳤으니 저이들보다  얼마나 이득이야?  그지?

운동도 내가 훨씬 더 많이 했잖아? 

근데 비밀로 해야 해.  저이들도 이 비밀을 알고 모두 100타씩 치면 캐디언니가 몹시 힘들거든.

 

나도 때론 좁은 집에 살아도 우울하지 않고 항상 즐거운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얼마나 아늑하고 좋아?  우리가 엄마 뱃속에 있을때를 생각해 봐.

그 좁은 공간에서 쪼그리고 있어도 얼마나 행복하고 기분 좋았어.

엄마가 먹을것 다 주고 내 배설물까지 다 처리해 줬잖아.그지?

그리고 죽으면  어찌되는 줄 알아?

1평도 안되는 좁은 방에서 그냥 반듯하게 누워만 있어야 해.   돌아 누울 수도 없어,

그거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지, 뭐.

청소할 공간도 작으니 덜 힘들고, 비싼 돈 주고 사서  쪼들린다고 아이들한테 화내지

않아도 되고.           왜 사람들은 집,집하면서  몰려다니는지 몰라.

집이 좁으니 온 가족이 얼굴을 맛대고 밥먹고  밤에  무섭지 않아서 좋아.

근데 바보인 나는 아는데 사람들은 몰라.  신기해.

 

나도 때론  외국여행 한번도 안한게 기죽는다는걸 모르는 바보로 살고 싶다.

미국? 독일? 프랑스?   아, 이름들은 많이 들었어.

요즘은 할머니들까지 환갑,칠순 기념으로 여행하시니까.

근데 난 제주도두 갔더니 내겐 외국 같더라.  안면도도. 영종도도 말이야. 

 아, 울릉도도 있었군.

대한민국에 아직 내가 못 가본 도시도 많거든.    광주도 못 가봤고. 목포도 못 갔고.

포항도 못 가봤어.       그리고 영어도 잘 못해. 예전엔 영어를  좀 잘했는데

외국인만 보면 바보라  겁나서 입이 붙어버려.

근데 정말 독일은 좋아?    미국은  아름다워?   프랑스는 정말 패셔너블한 아가씨들이 많아?

그리스에는 정말 배가 많아?   사하라 사막엔  정말 어린 왕자가 있어?

난 몰라.   바보라서.   

 

나도 가끔은 살아있음이 고통이란걸 모르는 바보로 살고 싶다.

다 그런거지, 뭐  하는 말을 진심으로 믿으며 사는 그런 바보가 되고 싶다.

들꽃이 이쁘고 강인하단 것만 알고  처량함이  있다는걸 모르는 그런 바보가 되고 싶다.

사람에게는 증오와  탐욕. 슬픔이란 감정은 없고

희망, 사랑, 열정 ,즐거움.  이런 감정들만 있는 줄 착각하며 사는 그런 바보로 살고 싶다.

전쟁, 폭동, 살인이란 말을 아예 모르는 그런 바보로 살고 싶다.

 

 

치이, 

 근데 쓰고 보니  바보가 되려면 산으로 가야겠어.

도(道)만 연마하는 수도승 수준이야.   바보가 되는것도 힘들겠어.

 

어쩌지?   우리 남편은 혼자서 물 한잔도 안 갖다 먹거든.

밥도 밥솥에서 퍼서 먹을 줄 몰라. 내가 다 해 줘야 해.

내가 산으로 가고  나면 못 먹어서 마른 장작처럼 마르면 어쩌지?

우리 아들은 밥통(胃)이 블랙홀 같아서  엄청 먹을걸 빨아들이는데 누가 밥해주지?

우리 딸은 더해.    자기 옷도 못 빨아입어.   방 청소도 안해.

 아침에도 내가 깨워줘야 일어나.

 

 

에이,  그냥  속세에서  헛똑똑이로  사는게 나을거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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