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동안 열이 올라있던 땅은 저녁 어스름과 함께 식고 쨍쨍한 햇볕에 의해 구석구석까지 덥혀져 있던 공기들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피부에 와 닿는 공기에 의해 내 마음도 가라앉는 그런 시간이다.
더위 탓에 열어둔 창문으로 아파트 곳곳의 생활소음이 들려온다. 달그락 달그락 그릇들을 정리하는 소리. 노는 아이들의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 또, 저녁 짓기가 한창인 어느 집에서는 구수한 찌개냄새가 올라오기도 한다. 차분히 현실이라는 감각을 느끼면서 생각해본다. 접시를 정리하는 여인, 저녁 짓는 여인,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는 여인들의 꿈은 무엇이었고 또 그 꿈을 이루고 사는지. 내겐 어떤 꿈이 있었고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지.
99년 겨울, 오며가며 서점에 들러 신간을 뒤적거리는 것이 취미인 나는 그 날도 전철역 앞의 대형서점엘 들러 코너를 옮겨가며 책을 보고 있었다. 우연히 잡지의 별자리 운세를 보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별자리 운세가 맞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서점에 들르면 별자리 운세를 챙겨보는 편.) 이번 달에 시작하는 취미는 평생을 두고 함께하게 될 것이라 쓰여 있었다. 그 달에 나는 ‘요가’를 신청해 두었다. 몸도 다스리며 마음까지 다스리는 운동에 관심이 많던 그 당시의 선택이었으나 너무 엄숙하고 재미가 없어서 며칠 나가고 며칠째 결석을 하던 중이었다. 그것일까? 평생을 두고 해나갈 취미생활이라는 것.
며칠 뒤 등록해둔 요가강좌의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등록해두고 나오지 않아 전화를 하게 되었다고. 며칠 뒤에 강좌에 나오시는 분들과 산행을 갈 것인데 함께 하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닥 내키지 않아 건성으로 들으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일 새벽시간에 요가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는지를 여쭈었다. 신청했던 강좌는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새벽에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강좌선생님의 스승님께서 하시는 요가센터가 평촌에 있다고 하셨다. 위치와 전화번호를 메모해둔 뒤 그곳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속으로 스트레스가 많고 푸는 방법도 잘 몰라 담아두기만 하는 성격엔 어떤 형태로든 그러한 수행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잠깐 체험했던 기수련으로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좋아지는 경험을 했던 나로서는 좋은 시작이 될 것을 예감했다.
그때 처음으로 만나 뵙게 되었다. 박남식선생님. 새벽에 센터를 찾은 대학생을 온화한 미소로 맞아주셨던 선생님이셨다. 고민상담도 해주시고 충고도 해주시고 때로는 말없이 들어만 주시기도. 수련생들을 위해 값나가는 반야로 녹차를 새벽마다 물을 데워 우려내주시던 선생님이셨다.
박남식선생님은 삶을 매우 자율적으로 이끌어나가시는 분이시다. 연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6년, 농민운동에 이어 생활요가 보급에도 앞장서시고 \'황금 아이를 낳는 여자\'라는 임산부 요가 책을 펴내셨는가 하면 8개월 간 티베트, 네팔, 인도, 파키스탄 등지로 명상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토대로 최근엔 ‘나비의 명상여행’이라는 책도 출판하셨다. 그 당시 새벽5시면 스스로 일어나셔서 새벽요가타임수업을 하시기도 하고 다른 선생님께서 하시면 말없이 맨 뒷줄에서 함께하시기도 했다.
그때부터 함께한 요가는 내 몸에 깊은 휴식을 주기도 했고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요가수련이나 명상을 통해 쇼핑을 하고 여행을 하며 얻을 수 있는 기쁨이나 즐거움 그 이상의 고차원적인 정신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로서는 평생을 두고 해나가야 할 일이 이것 말고 또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2006년 현재 나는 6개월 된 아가의 엄마이다. 임신기간엔 요가를 깊이 있게 공부하며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중간에 요가를 쉬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시작하게 된 걸 보면 그날의 별자리 운세가 맞으려나보다. 요즘은 요가가 붐이라 어디서든 요가간판이 참 눈에 잘 띈다. 그 당시 차편이 없어 참 힘들게 요가를 배웠던 나로서는 기뻐해야할 일이지만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6개월 공부하고 요가를 신체운동으로만 접근하여 가르치는 것을 보면 좀 꺼려진다. 요가는 헬쓰나 에어로빅과는 다르니까.
그래서 어릴 적,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지, 막연하게 대학교수나 약사가 되어야겠다는 그런 꿈보다는 요가를 통해 명상을 통해 ‘완숙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그런 꿈을 꾼다. 도를 닦아 신이 되겠다는 건 아니다. 앞으로도 누군가가 생각 없이 흘린 말들에 상처입고 돌아서서 화가 나기도 하고, 죽을 때까지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신경 쓰고 살겠지만, 또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노닥거리며 키득거리고 재밌어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겠지만 지금보다는 ‘완숙한 사람’이 되어 주변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나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20년쯤 뒤엔 나의 선생님처럼 삶을 자율적으로 이끌어나가면서 유머와 지혜로써 나를 꽉 채우고 살아나가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가지 욕심을 부리자면 글로써 세상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어떤 형태든 다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완성해나가는 작업은 내게 너무나도 큰 기쁨을 준다. 생각을 글로써 정리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것에 대해 공감하는 일. 그 모두가 내게 즐거운 일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글로 뱉어내는 작업을 하면서 세상과 만나고 싶다.
사실 그러한 꿈이 내 안에 있기에 6개월 된 아들을 안아주느라 팔목이 아프고 피곤하지만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아들 녀석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다시 못 올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기에게 정성을 쏟고 있느라 시간이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은 현재 할 수 있는 일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매일 매일의 육아일기를 쓰는 것이 그것.
요약하자면, 요가와 명상 그리고 그 외의 것들을 통해 나의 선생님과 같이 지혜로운 ‘완숙한 사람’이 되는 것, 그리하여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글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 이것이 나의 꿈이다.
박남식선생님의 network id 는 \'나비‘ 이다. 그래서 내가 주로 쓰는 network id는 ’꿈꾸는 나비‘. 나는 나비가 되기 위해 지금은 꿈꾸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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