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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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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하더니 많이 바뀌었네~~


BY 은지~네 2006-09-05

너는 결혼 하고 나더니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점점 긍정적으로 되어 간다.’

친구의 말이다.

친구의 말이 전에는 뾰족 한것이 있어서

누가 조금만 말을 잘못하면 내가 팔짝팔짝 뛰었단다.

ㅎㅎㅎ 지금도 팔짝 뛰는데….

 

내가 결혼전에 우리 친정에는

고부 갈등이 꽤나 심했었다.

그런 속의 막내 였으니….

게다가 당시에는 드라마나 소설을 보아도,

고부간의 갈등에 관한 것이었고

그속에서 시어머니는 대부분 악역이었다.

 

당연히 나도 결혼전에는

시부모랑은 지낼수가 없는것이고

다른 시집 식구들과도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인줄 알았었다.

지금도 나는 우리 친정 어머님과 올케언니를 보면

가슴이 많이 아프고 속상하다.

각자 떼어 놓고 보면 좋은 분들인데....

지금이야 나도 나이를 먹을만치 먹었으니까

내가 보는 눈이 있지만,

그때는 결혼을 하면 싸우는 것인줄 알고

영역을 누가 침범 할까봐 전의 불태우던 시절이었다.

 

그런 선입관을 갖고 시집을 갔다.

그때 당시에 나의 시집은  없는 집이어서

같은것으로 갈등이 있을줄 알았었다.

더구나 우리는 둘이 버는 집이니,

시집에서 요구가 심할줄 알았었다.

그러나 막상 결혼 해서 보니...

주사가 심한줄 알았던 시아버님도

며느리앞에서는 조심 했었고

무서울것 같았고 고집이 세셔서

나의 생활을 일일이 참견 하시고 쥐고 흔들줄 알았던

시어머님께서도 의외로 별로 참견을 하시는것이다.

 

명절에 식구들이 모이게 되면

모두들 서로에게 덕담들을 늘어 놓으면서

하하호호 하면서 웃고 지내는 것이다.

싸울 전투태세를 갖추었던 나이지만

싸울래야 싸울 대상이 없었다.

남편 또한 술먹고 늦게 들어 오는 것,

그리고 주말이면 큰댁으로 가자고 하는것 빼고는

그다지 힘들게 하는 것은 없었다.

시어머님 앞에서도 연탄 집게를 당당히 들고 있는 남편이니

 

결혼 당시에 나의 오빠는 다른데서 자리가 들어 오면

참견을 하면서 싫어 하였다.

오빠와 나는 13살이 차이가 나는데

어려서부터 오빠는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나빠진다고 엎드려서는 책을 읽게 한다던가

공부도 가르쳐 주고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라서

예뻐 하였다.

그런던것이 결혼후에 오빠의 식구들이 생기는 바람에

표시를 할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오빠는 오빠였다.

매우 엄격한 자세를 보여 주면서...

 

아버지가 건강 하실때도 그랬지만

아프다가 돌아 가시고 난 후라,

혹시나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잘못 될까봐

항상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