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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경한 딸을 보며


BY 영롱 2006-08-30

 사흘 전 아이는 초경을 시작했다. 엄마가 빨랐다고 하고, 나도 빨랐기에 내 딸도 빠르리라고 각오는 햇지만, 무척 놀랐다.

 \"엄마! 나 생리해.\"

올 것이 왔구나 싶으면서도 아이보다 내가 더 당황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하나?\'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가 한참 지나갈 무렵 초경을 했다. 당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중학교 2,3학년이 되어야 초경을 했기에 나는 무척 빠른 편이었다. 한 반에 자기 나이보다 늦게 입학했고, 덩치도 큰 몇 명이 겨우 할까 말까한 생리를 제나이에  입학했고, 생일도 한참 늦은 데다가, 키도 작고, 영리하지도 못했던 내가 시작한 것이다.

 내 초경에 대한 기억은 두려움과 죄책감 뿐이었다. 어리숙하고, 말이없고, 뭐든지 조금씩 늦었던 내가, 갑자기 찾아온 이 불청객을 만났을 때의 당혹감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엄마는 한 술 더 떠서

 \"무슨 죄야. 무슨 죄. 여자가 무슨 죄야. 쯪쯪\" 하며 아주 길게 한 숨을 쉰다. 엄마는 내 초경을 아주 슬퍼하고 괴로워 했다. 그래서, 난 더욱 움추러 들었고, 더욱 말수가 적어지고, 내면으로 침잠했다.

 중 3이 지나도 생리를 안 하는 친구는,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해서 생리가 빠르다고 가끔 나를 부러워 하기도 했지만 내게, 초경은 두려움 이었고, 엄마의 긴 한숨만으로도  죄의식을 아로새기기에 충분했다.

 체육시간에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배가 아프다며 울었다. 자기 표현이 너무 미숙했던 나의 울음은 양호실에 가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끝내 생리통이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양호 선생님이 주신 소화제를 먹고, 누워있었다.

 교복 치마는 물론, 스쿨 버스 좌석까지 스며들던 생리혈은 지금 생각해도 스치스러움일 뿐이다. 어느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찾아온 초경은 내 사고에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쳤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가정 시간에 배운 여성의 몸에 대한 지식도 부정적인 생각을 돌리지는 못했다.

 아이가 초경을 늦게 하기를 바랐다. 초경을 하면 엄마들은 축하를 해 주고 선물도 사 준다는데, 슬퍼하던 엄마에 대한 원망이 가슴 저 편에 항상 깔려있었다. 엄마는 유난히 똑똑하고, 모든게 빨랐고, 명랑했던 두 살 터울의 동생과  나를 항상 비교했었다. 내 열등감의 근원은 아마 거기서부터 출발했는지 모른다고 살면서 가끔 엄마를 원망했다.

 최대한 환하게 웃어 주었다. 과장되다고 느낄 만큼 아이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생리대 사용법을 가르쳐 주며

 \"이렇게 조그만게 벌써 생리를 하네\"

 \"내 친구들 중에는 4학년부터 한 애도 있어.\"

 \"그 애들은 덩치도 크잖아.\"

 \"나도 커. 우리 반에서 내가 맨 뒤에 앉잖아.\"
그러고 보니 아이의 키는 부쩍 커서 나와 비슷하다.

 초경하는 아이를 보며, 여러 생각에 찹찹하다. 3대 독자 유복자 아버지에게 아들을 못 낳아 준 엄마는 맏달인 나의 초경에 한숨이 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렇게 생각해 보니 갑자기 그시절 엄마의  태도가 너무 이해가 간다. 우여곡절 끝에 낳은 사내아이는 돌도 되기 전에 죽고, 딸만 둔 죄로 가난한 집에서 평생 한숨 쉬며 살아야 했던 엄마, 결국 아버지는 다른 여자에게서 아들을 보고야 말았지. 부잣집 맏달이었던 엄마는 결혼과 함께 생전 해보지 못한 고생을 모두 해야 했다. 여자로 살아야 하는 비애를 엄마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내게 그렇게 표현을 했다.

 나 역시 표현은 안 했을 뿐, 속으론 딸아이가 안스럽고, 걱정이 된다. 큰 아이가 변성기가 와 목소리가 굵어질 때, 남자 형제가 없는 집에서 자란 나는 너무 신기해서 깜작 놀랐다. 아직 아가라고 생각해서 \"아가야! 아가야!\' 부르던 작은 아이가 어느듯 초경을 하고, 나는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삶은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인가 보다. 어제 같던 내 초경의 그 어둡던 기억은 이제 조기 폐경을 근심해야할 세월을 살고있다. 아무리 여권신장이 되었어도 여전히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자로 이 땅에 내 딸도 살아야 하고, 먼 후일 아기도 낳겠지.

 아이의 성장은 그렇게 기쁜일 만은 아님을 처음 알았다. \'어서 커서 이 젊은 엄마 좀 자유로워 보자.\' 아이 둘을 그렇게 멋모르고 키우면서, 어서 자라기만을 고대했는데, 자란 아이는 내게 눈물을 준다.

 그 옛날 맏달의 초경에 엄마도 나처럼 혼자 울었겠지?

\'삶은 이런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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