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에위니아 끝에 들이닥친 중부지방의 엄청난 폭우로 인해 더이상 북한강은 소설이나 가요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서정미는 찾아볼 수가 없었어.온통 흙탕물이 되어 구비구비 경춘가도를 혼탁하게 에워싸 흘렀지.그런들 어떠하리 이미 복더위와 함께 휴가시즌이 겹쳐 한시간반이면 닿아야 하는 춘천을 서울에서 네시간 걸려 도착했으니 차창밖의 뜨거운 풍경은 더 짜증을 불러 일으켰어.
대성리를 지나고 조촐한 가평을 지나 남편이 근무하던 의암호곁을 지나면서 가슴속에서 천둥이 치기시작했지.삼악산을 왼편으로 끼고 덕두원 지방도로를 비좁게 달리면서 춘천호건너 아름답게 펼쳐진 시내를 바라볼때야 비로소 감탄사가 나왔지 뭐야.정말 예쁘다..저기좀 봐봐..우리춘천이야 우리춘천..봉의산 보이지?저 호수넘어 이쁜 도시좀 봐...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운전한 탓인지 남편은 별 감흥을 느끼지 않는표정이었지만 개의치 않았어.춘천이니까.
사실은 슬펐어.삼악산에는 3년전에 몹쓸병에 걸려 죽어버린 가엾은 나의 가장 친한 벗이 재가 되어 뿌려진곳이거든.그애랑 둘이 의암호를 뒤로하고 삼악산 자락에서 찍은 사진은 내 삶속에 가장 아름다운 화보집처럼 지금도 내 사진첩에서 자태를 뽐내는데...또 하나 슬픈것은 에머럴드보다 더 예뻤던 의암호가 폭우로 인해 흙탕물이 되어있는것이었지.그러나 하루이틀 지나면 차츰 이전의 아름다운 호수의 모습을 되찾겠지만 가버린 내 친구는 다시 올 수가 없는것.가슴이 시려왔어.그것은 차안의 에어컨의 차가움하고는 전혀다른 기운이었어..가슴이 시리다는 것.
올 휴가에는 첫근무지였던 춘천을 가보고 싶다고 남편이 그랬지.스물네살의 젊고 아름다웠던 내 남편은 춘천댐과 나란히 한 용산지서에서 새내기 경찰관으로 근무하였으며 이후 춘천을 거쳐 연고지인 광주로 내려왔는데 그곳에서 나를 만났으며 큰아이를 얻은후에 춘천을 떠나게 되었어.말하기 싫어.남편따라 남도로 내려가는 과정은.정말 그때의 심정을 다시 되짚기는 싫어.그리고 스물세해만에 남편과 나는 그때와는 다른 적절한 안정감이랄까?그러한 기분으로 춘천댐으로 향했어.
그대로였지.춘천댐도 그대로였으며.계곡아래 민물횟집들도 그대로였어.조금 달라진것이 있다면 더 볼것이 있었다는것과.향어,송어외에 산천어까지 있어서 이름도 예쁜 산천어를 시켜 별말없이 먹었어.맛있었어.송어보다는 더 담백했고,수제비를 뚝뚝 떼어넣은 매운탕은 일품이었어.맛있네?나는 과장된 몸짓으로 맛있음을 표현했어.더운날씨였으나 계곡의 시원한 물과 피래미들이 찰방거리는 통에 더위를 느낄수가 없었어.
우리가 나온 도로위로 군부대차량들이 줄을 지어 지나갔어.역시 춘천다웠어.오랫동안 볼수 없었던 풍경들.전방은 전방이었지.남편도 새롭다는 듯 그 차량의 행렬을 쳐다보았는데.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이 생소해보였어.머리는 희끗희끗했으며.얼굴빛도 붉은건지 검으스레한건지..오래전.깎아놓은 밤처럼 예쁘기만 했던 남편은 어느새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서 무릎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반바지를 입고도 내앞에서 벌러덩 누워 피곤함을 달래고 있었지.날씬하고 긴 목은 어디로 갔지? 날렵하게 뻗은 몸매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어.불룩나온배도 민망해 하지 않았는데 나는 자꾸 처음 만났을때 그 청년을 떠올렸어.참으로 잘난 내 남편을 내가 얼마나 사랑했던지.
오십을 넘긴 남편을 되잡아 스물넷의 청년으로 변신시킬 수는 없지만 내가 남편을 사랑했던 그 마음을 리콜하기란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노쇠한 코끼리가 상아를 묻으러 회향하는 것처럼 남편과 나는 기억을 더듬어 추억찾기에 나섰어.소양호를 지나면서 달팽이집이 있는가 두리번 거렸으나 없어진건지 이전했는지 눈에 띠지는 않았어.소양호 뒤로해서 봉의산 쪽으로 모교인 유봉여고로 향했어
도청과 한림대학교와 앞뒤하고 있는 유봉여고는 본래의 건물은 하얗게 그대로였으나 새로운 교실건물이 두채나 더 지어져있었어.학교운동장을 돌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일었어.맞은편에 강원고가 없어졌어.어머?강원고가 없어졌네?체육시간때면 몸은 앞을 향하는데도 눈길은 그쪽으로 힐끔힐끔 건너보내던 그 강원고가 거짓말처럼 없어져있었지.신기루처럼 까만 교복을입은 남학생들이 웅성웅성거렸다가 사라졌어.
허리를 주름잡아 잘룩하게 묶던 교복도 바뀌었는지 예쁜 여학생들이 입고나오는 교복도 처음보는것이었어.어머 교복 바뀌었어요??하고 물으니 원래부터 이거였는데요?하고 신기한듯 나를 쳐다보는 후배들.아..그랬구나.아줌마가 다닐때는 허리를 맸거든요..다시 차를 몰아 남편이 근무하던 곳들을 지나면서 우린 전혀 변하지 않은 춘천도심에 저으기 안심했어.그렇게 크게만 느껴졌던 중앙로터리.그리고 한달에 두편이상씩은 꼭 감상했던 육림극장은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었어.마치 중년이 되어버린 우리처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