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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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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의 나들이


BY 물안개(자운영) 2006-08-29

 

지루한 장마가 끝난다는 일기예보가 나오면서 친구가 펜션 하는 형님네가  외국 여행가며 집을 봐달라는데 장마 때문에 예약한 손님이 하나도 없으니 그곳에서 세상사 잠시 접어두고 우리들의 못다 했던 이야기들을 밤세워 풀어 보자 하였다.


어렵게 날자가 잡혀지고 기대가 부풀어 그 날만 기다리는데 어찌된 일인지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 하더니  떠나기로 한 날 아침 까지도 줄기차게 퍼부어 방송에선 이곳저곳에 물난리가 낫다고 야단이었다. 그렇게 약속이 취소가 되고 아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아 서로 전화만 주고받다 이럴게 아니라 찜질 방이라도 빌려 하루를 놀다오자 하고 다시 뭉치니 7명 이었다.


저녁에 올 생각으로 여벌옷도 없이 찜질 방 갈 준비만 하고 나갔는데 막상 모이니 양평으로 가는데 까지 가보자 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한강은 흙탕물이 넘실거리며 끝없이 흘러가고 전광판에는 양평으로 들어가는 옥천교가 범람하여 통제되었다고 계속 나왔다. 하지만 차는 여전히 양평을 향해 내 달렸다. 그만큼 우리들의 하룻밤 나들이는 가슴 가득 담겨져 있던 만학도 시절의 이야기꽃을 피워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 장사를 하는 친구, 이런저런 친구들이 가족들의 동의 하에 잡혀진 하룻밤의 나들이였다.


양평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우리들은 제지를 받았지만, 동네 주민이라 했더니 보네 주었다.  우리가 탄 차량이 트럭이고 경기도 번호판이라 놀러 가는 사람들이 아닌 듯해서 보네 주는 것 같다며 모두들 웃음이다. 트럭은 의정부에서 과수원을 하는 친구가 타고 나온 것 인데 앞뒤에 옹기종기 7명이 타고 있었다. 군데군데 도로가 침수되어 이러다 차가 물속에 잠기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산수유 산장이라 팻말이 붙은 진입로가 보이자 안도 하며 우중에 위험 하긴 했어도 오길 잘했단다.  산장엔 대문도 잠그지 않고 긴 나무 장대 하나만 걸쳐 진채 빈 집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도 없는 이천여 평의 집에  꽃잎은 제 맘대로 포개어 웅크린 채 울고, 능소화는 뚝뚝 떨어져 지천에서 나뒹굴며 울고 후~ 두둑 후~ 두둑 음률 따라 수중발레를 선보이는 잉어들을 보며 수련은 눈물을 머금고 희디힌 웃음만 담고 있다 여기저기 달려있는 갓난아기 볼처럼 예쁜 복숭아가 먹음직스러워 따서 먹어보지만 싱거워 버리고 이번엔 풋 처녀의 홍조 같은 자두를 먹어 보아도 오랜 장마에 맛이 없다.


여전히 비는 내리는데 우산도 접은 채 이곳저곳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당을 빙 둘러 서있는 돌절구 통은 한을 가득 품어 안고 묵묵히 하늘을 원망 하고, 세월 저 넘어 밤이면 시집살이 힘들어서 두두리며 설움을 삭혀야 했던 다듬이 돌들은 한쪽에 켜켜로 쌓여 이끼 만 무성하다. 우리네 조상들이 쓰던 생활용품, 농기구, 교실에서 쓰던 물품 까지 없는 게 없이 가지런히 정돈 되어 이집 주인의 취미 생활과 성격을 알게 해준다. 자기 맘에 드는 방을 골라잡아 밤에 자라는 친구 말에 중년 신사 방 앞에 서서 내가 이방에서 잠을 자겠다고 다툼이다.


구경을 마치고 식당으로 쓰이는 넓은 홀에 들어서니 두꺼운 괴 목 식탁과 초등생이 쓰던 나무 의자가 이색 적이다. 짐을 놓기 바쁘게 내가 점심 준비한다며 자진해서 주방으로 들어가는 속 깊은 친구들, 구수한 된장찌개에 정까지 담겨 있어 맛은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따끈한 커피 한잔을 받아 창밖 후줄근하게 비를 맞으며 굳건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 든다.


아직도 가슴은 덜 붉은 사랑이 싹트는데 비어 버리고 한 발짝 한 발짝 황혼으로 접어드는 나이가 되었을까? 내 이마에 그려진 나이테만큼 힘들게 살아낸 삶이 아니던가... 잠시, 세상을 적시는 빗소리에 젖은 마음도 흘려 보네며 이젠 그만 와도 좋으련만 휴~~우 한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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