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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내가 꿈꾸는 미래는


BY 생수 2006-08-28

내나이 서른 하고도 아홉이다.

나는 매일 꿈꾸며 사는 여인이다.

딸이라 구박받던 어린 시절엔 부잣집에 입양되는 꿈을,

대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사춘기 시절엔 야간대학을 다니는 꿈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졸이던 시절엔 아주똑똑한 아들을 낳는 꿈을,

너무나 힘들어 삶을 포기해야만 했던 시절엔 직장엘 다니는 꿈을,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노력을 했기에 나는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게 되었고, 아들도 낳았다.

지금 나는 유치원 교사다.

서른하고도 아홉인 나이에.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정덕희 교수님같은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행복과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나는 나를 믿는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아는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말한다.

\"너 처럼 난 절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아!\" 라고.

 

어렸을 적 나는 우등상을 놓친적 없는 똑똑한 아이였다.

그러나 우리집은 너무나 가난했다. 항상 병으로 고생하시던 아빠,

늘 새벽같이 일나가시며 어린 나를 깨워 아침을 짓게 한 엄마,

그런 내 환경이 싫어 늘 꿈꾸었다.

부잣집 양녀로 갔으면....

기회가 왔다.

절대로 우리가족 잊지 않을 거고, 하고 싶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성공한 사람되면 꼭 다시 찾을테니 제발 보내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러나 내 아빠는 굶어도 자식을 팔 수는 없다고 거절하셨다.

내 노력없는 일이었기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학교 마치기가 무섭게 논으로 밭으로 산으로 끌고 다니며, 어린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싫었다.

돌아가실때까지 내가 아빠를 원망하고 미워한 첫번째 이유다.

그러면서 의욕을 잃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공부를 안했다. 반발심에.

언니덕분에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했지만 대학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언니에게 더이상 짐이 될 수 없었기에.

직장을 다니고 동생들 학비를 책임지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결혼을 했다.

결혼 2년만에 아파트를 사고,

결혼 3년만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평온한 내 인생에 시비를 걸어 온 건 \'남편의 의처증\' 이었다.

죽고 싶을 만치, 아니 죽어야 할 만치 힘든 세월이었다.

그러나 죽을 수 없었다.

어떻게 살아온 내 삶인데,,,

환청과 환시 증세까지 보이던 남편을 피해 아이 둘을 데리고 이도시 저도시

헤매고, 숨어다니며 살면서도 나는 꿈꾸었다.

행복한 내가정을.

4년만에 남편의 의처증을 고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졸업했다.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따자마자 취직하여 지금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내 꿈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열심히 살아서 꼭 정덕희 교수님같은 사람이 되겠노라고.

죽을 만치 열심히 하려고 한다.

사랑하는 내 삶을 위하여.

오늘도 난 꿈꾼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생각을  이야기 하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