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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폐기처분 되다


BY 라헬 2006-08-28

갑자기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하는 건. 식사준비가 끝날 때마다 사탕수수밭. 그 大地를 향해 장총을 쏘아대며 식사시간을 알린다는 것뿐.

큐바 예스! 양키 노!
평생 무기를 神柱 삼아 사회주의에 성실했던 그.
내가 가장 사랑했던 세상의 단 하나의 男性 체 게바라. 나처럼 안목 있었을까. 샤르트르 역시 지구상에 오직 사내는 체 게바라였다고 했으니. 그 사내역시 혁명의 근원은 카스트로였다.

피델 카스트로.
추억한다는 것은. 역사가 아니다
뜨거운 열정의 미래인 것이다.

나의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봄이 되면 산자락 한 귀퉁이 서툴게 일궈 쑥갓이랑 실파랑 심어두고.
여름이면 젖가슴까지 걷어 올려 샘가에서 땀을 씻다가.
가을이면 쓸쓸한 바람에도 눈물 떨구고.
또 그러다가
그렇게 그렇게 뒷산 소나무가지 쩌억 쩌억 부러지는 겨울이 와도.

뜯겨진 황토벽 침 발라 핥아먹다가.
그저 그렇게 오래된 나의 책들 머리맡. 발끝. 다 채여 가장 행복하던 날
그렇게 숨이 끊어져서 죽고 싶다는. 나의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귀찮게 하는 세상
내가 먼저 버리는 거겠지: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고래의 배를 가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밤새 내 어깨에 매달려 내게 잡혔는지. 아님 나를 업었는지도 모를 그 고래의 배를 가르는 순간. 주위에는 찰나의 정적이 흐르고
칼을 손에 잡은 사내만이 입으로 휴 하고 바람소리를 토해냈다.

엄청나게 큰 고래.뱃속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이미 바다에 있을 때 관장이나 한 듯. 깨끗이 비어있는 뱃속은
한낮에 학살되듯 깡그리 벌려졌다
  
바다는 언제나 무서운 존재였다.
내 나이 다섯 살에 그 바다와 헤어졌다.
어둡고 차가운 공포. 그렇게 나를 잡아당긴 배 밑으로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다들 죽었다고 했다지. 그렇게 건져온 계집아이를 안고 巫女에게로 달려간 어미는 아이의 배위에 뜨거운 조개가 지글거리며 거품을 토해내는 것을 바라보았다지.

아마. 내가 살아난 것은 그 조개의 효험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내 의식을 무서운 바다 안에 가둬놓기가 싫어서였다. 단순히 바다가 싫은 것은 아니었으며 더 이상 바다와 나의 관계는 회복불능상태로 지속되었다.

더 이상 바다는 없었다. 가끔 고래가 출현했던 바다에도 포경선이 사라졌고. 전설처럼 고래숨소리만 바다 위를 떠돌았다. 메로처럼. 아마 沈海 어딘가에 메로처럼. 들어 누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때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에서 본 것은 배 밑창이 아닌 고래였다.

배꼽 왼쪽으로 하얀 조개가 문신처럼 새겨졌다. 분명 아주 오랫동안 곪았다가 나은가 싶으면 다시 짓무르기를 수없이 반복했을테지. 일그러진 빗살무늬조개는 火印처럼 그렇게 찍혀져있다. 고래도 사라졌듯이 巫女도 자취를 감췄다.

왜 나는 그들을 혼동하는가. 설흔 아홉에 죽어버린 사내와 일흔다섯으로 살아있는 털복숭이 사내를 왜? 분명 그들은 라틴아메리카가 출산시키고 양육하였으며 결국 그 숨을 빨아들여 이제 한사내만 남기지 않았던가. 죽은 자에게 더 호의적이지 말자. 그가 내 세계에서 부초처럼 떠다니며 때로는 游泳하며 뇌세포를 마비시킨다 해도 이제 산자를 위해 고백을 해야 한다. 죽은 자를 잠시 기억저편에 가두어두고 오늘은 살아있는 신화를 쓰자. 라틴아메리카!!

화장실문이 닫혀질 때마다 안방에 불이 꺼질 때마다 난 고래에 깔렸다. 아니다. 고래가 아니고 고래잡이 배였을지도 모른다. 썰물 된 해변에서 다른 계집애들처럼 왼편에 동그마한 바구니를 끼지 않아도 되었다 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조잡한 밭둑에서 달그닥거리는 호미소리를 들어야했다. 바구니 속으로 조개들이 뒤집어진다. 동무들은 신들린 듯 모래를 할퀴고 그럴 때마다 내 뱃가죽에 붙은 조개가 흰 거품을 토해냈다.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 누웠다. 비치파라솔이 하늘보다 더 크게 흔들렸다. 키 큰 사내가 따갑게 달궈진 모래로 내 몸을 덮어온다. 발가락이 꼬무락거렸다. 다리에서 전갈이 기어가듯 전율이 일었고 모래를 퍼 올리는 그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손바닥보다 더 작은 천 조각이 세모꼴로 내몸 처럼 베시시 까분다. 배꼽이 킬킬거리며 여름 해랑 동침하겠노라며 꼴갑을 떨어대는데 그의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일그러진 빗살무늬. 그 하얀 조개무늬위에서 따라 그리듯 손가락을 서서히 움직였다. 부적? 문신? 뭐지? 조개로 지져낸 것 같아. 그의 의문 섞인 물음이 끝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몸둥이도 서서히 배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탕수수밭에서 혁명의 오줌을 갈기던 그는 행동하는 공산주의자를 꿈꾸었다. 의식 속에서만 생존하는 이념이 아닌 아메바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산주의자라면 비록 敵일지라도 과감히 도움을 마다않는 비이성적인 그를 피델 카스트로라 불렀다.

지구의 軸이 붕괴된 줄 알았다. 제국주의자들이 神의 이름으로 굳건히 따먹은軸은 세계를 가공의 식민으로 만드는데 성공하는 듯 했으며 정수리아래 검은 반점의 고르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외치면서 또 다른 지구의 한軸이 붕괴되는 줄 알았다. 기우였을까. 노한 그는 철창처럼 더 강한 맑시즘을 위해 피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었다. 이젠 조용한 포구에 닻을 내린 배들이 무섭지 않은 어른이 되어버렸다. 깡마른 눈빛에 바람이 자리하더니 이내 바다 속으로 꼬리를 감추었다. 발가락까지 동원하여 힘을 주었다. 이젠 안 빨려 들어가도 돼. 난 어른이 되어버려서 이따위 작은 물살 따위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게 되었어. 오만한 자의 웃음이 모래와 함께 물속에 잠겼다.

분명. 잘 버틴 줄 알았던 다리가 모래톱에 잘려나가듯 그렇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난 다시 늪처럼 음습한 배 밑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지만 더 이상 그곳에는 어둠이 존재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하는 건. 식사준비가 끝날 때마다 사탕수수밭. 그 大地를 향해 엽총을 쏘아대며 식사시간을 알린다는 것뿐. 이제 그녀의 이름이 생각났다. 그녀는 앙헬의 두 번째 여인 리나 루수 곤잘레스. 그녀는 피델 카스트로의 어머니였다.

대조되는 것은 절묘한 융합의 조건이기도 했다. 절대적 카리스마의 피델과 지적인 두뇌로 상대를 설득할줄 아는 게바라가 삽시간에 동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죽을 때까지 철저히 2인자일수 밖에 없었던 게바라. 그의 귀족적인 인품을 다혈질인 카스트로가 용서하지 못한 것일까. 외로운 혁명가. 그 별 하나가 라틴아메리카의 하늘에서 떨어지던 날. 내 꿈도 소리 없이 죽어갔다. 탕 탕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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