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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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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이쁘다고 해줘라


BY 불토끼 2006-08-11

나와 남편이 함께 산 것은 1999년부터였으니 햇수로 벌써 8년째다.


8년차면 신혼도 애저녁에 지나고 권태기에 우울증에 때때로 바람까지...
이혼타령을 두어번은 하고 남았음직한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한 번도 별거나 이혼얘길 꺼내본 적이 없다.
심지어 홧낌에 집나간단 말을 한 적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이혼을 아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고려해본(고려했다기보다 상상해본) 이혼은
장에서 고등어를 이미 집어들고 돈까지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다른 사람의 장바구니에 조금 더 커보이는 고등어를 보며 저걸 살걸 그랬나?
하고 얼핏든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우리는 둘다 치른 값에 비해 굵고 싱싱한 고등어였을까 하고.
만약 남편과 내가 서로가 안보이는 칸막이에 들어있다 이 질문을 받았다면
옆에서 들을까봐 소리내서 말하진 못하고 서로가 손을 홰홰저으며
천만의 말씀이라 부인할 것이다.



나의 눈으로 남편을 보자면 나는 고등어값을 지불하고 꽁치를 산 격이라 생각한다.

우리 남편은 공부를 오래한 기간에 비하면 정말이지 형편없는 월급을 받는다.
벌어둔 돈도 없지만 재테크의 ‘재’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밤일을 잘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성격이 유들유들하지 못해 친구모임에 가도 재미가 없다.
키는 크지만 다리가 짧아 힙합바지외에 어울리는 바지도 별로 없는데
업친데 덮친 격으로 살까지 10킬로나 쪄서 뭘입어도 태가나지 않는다.
게다가 남들 다 따는 운전면허도 30이 넘어서야 땄다.


남편은 또 남편대로 나를 보며 본전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마누라라고 있는 것이 깨끌받지 못해 집안이 어수선하고,
요리하는 것에 취미가 없어 굶기기 일쑤며, 성격이 급해 늘 닥달이요 발광이다.
그뿐인가, 밤일을 할라치면 늘 점빵문을 닫는데다
월급이라고 쥐꼬리만큼 받아오는 주제에 늘 유세를 떤다.
운전면허? 자기와 진배없이 서른이 넘어서야 땄다.


‘서로 이렇게 잘난 것 없는 사람들끼리 만났으니
짚신도 짝이 있다고 마침 잘됐네, 둘이서 장단맞춰 살면.’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우리는 하나에서 열까지 너무나 틀려 맞출 장단이 없다.
남편은 글공부에 관심이 많아 책을 무지 사다 모은다.
뿐만아니라 요즘엔 정석수학보다 더 두꺼운 마오쩌뚱의 일대기 \'마오\'를 읽으며
내게 토론할 파트너가 되었으면 하지만 나는 그놈의 글공부엔 도통 취미가 없다.
있다가도 남편 등쌀에 없어질 판이다.

나는 남편이 P&C같은 데엘 가서 점잖은 옷을 좀 샀으면 하는데
그는 맨 아디다스같은데 가서 추리닝 나부랭이를 집어든다.
(그게 싸냐면 결코 싸지않다)

우리는 생리의 주기까지도 틀려 서로 원하는 시기가 맞물려본 적도 별로 없다.



성격도 천양지차다.

나는 성질이 급해서 누가 내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면
두 번째부턴 목소리가 커지고 세 번째에 가선 발광에 이른다.
그런반면 우리 남편은 나처럼 길길이 날뛰진 않지만 은근한 고집이 있어
한 번 안한다는 건 끝까지 안하는 노새고집이다.



이런 부부가 8년을 같이 살았다.

애가 있으면 새록새록 애 키우는 맛에 때문에 산다지만 애도 없는 사람들이.
돌이켜보면 우리가 이렇게 별마찰없이 8년을 함께산 건
이쁜구석이 없는 서로에게 이쁘다 이쁘다 해주었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이쁘다고 말문을 연건 그러고 보니 나였다.

내가 사물을 보는 눈은 좀 특이해서 이상한 구석에서 귀여움을 많이 발견한다.
예를들면 가지런한 말과 당나귀의 이빨을 보면 아주 귀여워서 뒤집어진다.
그리고 쏘세지같이 말랑말랑한 젖소의 코같은 거나 낙타의 헐렁한 아랫입술,
상체는 가늘고 하체는 튼실한 여자의 아톰같은 무다리 등등...


내 성격이 이렇다보니
여러모로 나와는 다르게 생긴 남편의 이상스런 외모가 귀여워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혼초에 좀 이뻐해줬는데 의외로 내 말에 남편이 얼마나 감탄하고 고마워하던지.
생전 태어나서 이성에게 이쁨을 못받은 남자처럼.
그리고 그 말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곧 내게 되돌아왔다.



‘어쩌면 팔다리에 털이 없고 이렇게 맨드리할까.’
모든 여자가 다 그렇지만 유독 나만 그렇다는 듯 이쁘다해줬다.

‘당신 그 파시리하고 붕뜬 그 머리스타일 정말 개성있어. 오노요꼬같아.’
내 머릿결 안좋은 걸 이런 식으로 좋아해줬다.

뿐만 아니라 내가 식탁보 잘라 뒤집어쓰고 다니는 머릿수건도 남들이 보면 주책맞다고 했을지언정 그는 잘 어울린다고 해줬다. 그러면 나는 그의 이쁜 구석을 찾아 얘기해줘야할 것 같은 의무를 느끼게 되고 그래서 주거니 받거니한 것이 벌써 8년이다.



우리가 늘 서로에게 이쁘다 해주는 것은 아니다.

욕하고 싸울 때도 많고 싸우고 말안할 때가 더 많다.
하지만 부끄러움과 구겨지는 자존심을 무릅쓰고 상대방에게 한 번만 이쁘다 해주면
모든 건 거품사라지듯 사라지고 만다.

참 이상한 건 별로 안이뻐도 일단 입으로 이쁘다고 뱉어내고 나면
이상하게도 정말 이뻐보인다.

그 현상은 내가 이쁘다 말하는 동안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서 그렇게 보이는건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말함으로써 상대방이 이뻐지려 노력해서 그렇게 보이는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건 이쁘다 해줘서 싫어하는 사람 세상에 없고 누구든 한번 이뻐해주면 나도 그 소릴 꼭 듣게된다는 것이다.



난 어떤 이와 남은 인생을 함께 할 결심이 섰거들랑 자주 이쁘다 말해주라 권한다.

그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너무 늦으면 사실 아무리 이뻐해줘도 뜬금없이 들리니까 효과가 적다.
적당히 미워도 일단 이쁘다고 한번 말해보라.
어쩌면 좀 이뻐보일 수도 있다.
이쁘단 말이 죽어도 안나올만큼 미우면 할 수 없다.
참고 살거나 갈라서는 수밖에.



결혼해서 오래 사신분들은 결혼생활의 신출내기인 나한테 같잖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겨우 8년산 주제에 오래산 것처럼 남한테 이래라 저래라한다고.
지가 뭘 안다고.

사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말을 덧붙이겠다.
내가 몇 년이나 몇 십년후(생각해보니 몇 개월 후가 될 수도 있겠다)
이혼이라도 하게되면 꼭 여길 다시 찾아와서 글을 올리겠다.

‘이뻐했줬음에도 불구하고
이혼하
게되는 이유’에 대해서.





여행을 다녀오느라 여길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는데
두주동안 확 바뀌었네요.
그동안 잘들 계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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