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철이면 휴가문제로 고민을 해야 했다.
결혼한 그 해부터 여름휴가를 시댁식구 오형제와 그에 딸린 식솔들과 함께 해야 했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다리 밑에 삼십인용 텐트를 치고 대형 프로판가스통까지 대동한
그야말로 난민이 따로 없는... 지난 일이니 그게 좋게 여겨지지 그 당시에는
\"아니 뭐 할 게 없어서 황금같은 날들을 이리 보내는고?\" 했었다.
차차 사는 형편들이 나아지자 이박삼일을 모조리 매식을 한 적도 있었다.
그게 너무 편해서 앞으로는 그리 하자고들 했지만 또다시 난민생활은 계속 되었었다.
재작년에는 네째네가 제주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자고 했다.
우리는 비행기값이 아까워서 못 간다고 했더니 모든 경비는 일체 네째네가 낸다고 했다.
그 덕분에 제주도에서 삼박사일을 호텔에서 먹고 자고 점심만 밖에서 사먹었다.
신세 지고는 못사는 성미인 난 \"내년에는 모조리 내가 쏜다.\" 했다.
그리고는 사십팔년만에 오백년된 고가를 복원하고 귀향을 하신 친정집에서
이박삼일 환상적인 휴가를 보냈다.
덕분에 난 가기 전부터 대식구가 먹을 음식 장만하랴
가서는 입치레 하느라 부엌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그래도 다들 너무 좋았다는 그 말 한마디에 피로가 다 풀렸었다.
올해는 왠일인지 아무도 휴가 이야기를 안 꺼냈다.
다들 사정이 여의치 못해 각자 지내잔다.
네째네와 우리가 쏜 게 너무 과했었나 보다.
\'이게 왠 횡재여?\'
우리 식구는 다시 친정집을 찾았다.
관광객들이 구경오는 그 멋진 황토기와집에서 밤에는 대숯불 피워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고
낮에는 석천계곡에서 온종일 물놀이에 빠졌었다.
일급수에 사는 물고기들을 잡으며.
바위가 미끄럼틀이 된 곳에 살며시 앉기만 하면 물살에 쓸려 한참 떠내려가곤 했다.
그 재미에 빠져 엉덩이는 온통 타박상 투성이가 되어 앉기도 불편할 정도가 되었다.
작년에는 물이 무서워 들어가지도 못하던 작은 녀석도 구명조끼와 튜브를 낀 채
하루종일 그 미끄럼을 탔다.
큰 녀석은 얼마나 새까매졌는지 오늘 본 이가 \"아니 왠 연탄이여?\" 할 정도가 되었다.
두살부터 서울서만 살았던 난 방학이면 대구 외가에 가는 게 고작이어서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처럼 낭만이나 추억이 거의 없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외가를 떠올리기만 해도 즐거우리라.
|||1